의료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면 노화 자체를 막을 수 없지만, 건강 수명을 늘리는 방식으로 노쇠는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Pixabay

한국이 초고령화 단계로 진입을 앞두고 있어 노인뿐 아니라 전 세대를 아울러 ‘노쇠(frailty)’를 예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화(aging)가 나이가 들면서 전보다 기력이 떨어지는 정도에 그친다면, 노쇠는 노화나 질병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신체 기능이 심하게 저하된 상태를 의미한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지난달 31일 경기도 성남시 한림원회관에서 ‘노쇠와 근감소증’을 주제로 제219회 한림원탁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의사부터 영양 전문가,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자까지 참석해 노쇠를 예방하고 건강 수명을 늘릴 방법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노쇠의 주요 원인으로 근육의 양과 힘이 감소하는 ‘근감소증’이 꼽힌다. 근육량 감소와 함께 근력과 보행속도도 떨어지면서 연쇄 반응을 보인다. 근감소증은 치매와 같은 인지장애, 당뇨, 암과 생존율과도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통상 신체기능 저하 순서는 근감소증으로 시작해 노쇠, 노인 증후군으로 이어져 사망까지로 본다.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면 노화 자체를 막을 수 없지만, 건강 수명을 늘리는 방식으로 노쇠는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쇠의 전 단계 ‘근감소증’ 치료제 개발 활발

한국은 2025년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내년엔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6%를 기록한다. 2070년엔 46.4%로 국민의 절반이 고령인구가 된다.

2030년이 되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34개국이 된다. 고령화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전 세계에서 ‘노쇠’를 막기 위한 방법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이유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같은 억만장자들도 노화와 노쇠 치료제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는 노쇠의 전 단계인 근감소증의 원인을 연구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시도가 각광받고 있다. 노쇠에 들어서서 진단하고 치료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에 노쇠의 전 단계인 근감소증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권기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사람마다 근감소증의 원인은 다르지만, 노화에 따라 근육 성장이 더뎌지고 위축이 늘어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며 “줄기세포의 분화를 촉진하거나 단백질의 합성 돕고, 근육을 분해하는 신호 전달을 막는 3가지 방법으로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헬스케어 기업 헬신(Helsinn)이 이 분야에서 주목받는 기업이다. 헬신은 체중 감소와 식욕 부진을 개선해 노쇠를 치료하는 아나모렐린을 일본에서 임상 시험하고 있다. 현재 임상 2상, 3상에서 허가받아 환자에게 직접 투여할 수 있다. 권기선 책임연구원은 “근감소증 치료를 위한 타깃을 전략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안티에이징은 성장률이 큰 만큼 글로벌 항노화 치료제 선점을 위해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일부 기업은 회춘인자를 기초 단계부터 연구하거나 조직재생을 위한 저분자 물질 또는 줄기세포 개발, 유전자 치료나 AI를 활용해서 건강 수명을 늘리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그래픽=손민균

◇근감소증 막으려면 ‘운동과 영양’ 가장 중요

전문가들은 근감소증 치료제 개발도 중요하지만 개인과 국가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장원 경희대 의과대학 교수는 근감소증 관리를 위해서는 운동과 영양, 우울증 치료, 사회적 활동, 불필요한 약을 빼는 ‘약물 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인에게는 사회적 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욱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약만으로는 노쇠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운동을 동반하지 않으면 약으로는 근감소증을 치료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운동은 유산소와 근력 운동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유산소 운동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30대 때부터 근력운동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복근이나 등 근육 같은 큰 근육 위주로 운동하고, 하체에 주로 근감소증이 오기 때문에 대둔근과 대퇴, 허벅지와 같은 하체의 큰 근육을 써서 운동해야 한다. 송 교수는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다면 지속하고, 고령자는 들 수 있는 무게의 60~70%까지만 드는 대신 빈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근력 운동을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영양 관리도 필수다. 김일영 가천대 의대 교수는 “운동만 한다고 해서 근육이 많이 늘지는 않는다”며 “연구를 통해 운동 없이 영양소를 챙겨 먹으면 4시간 정도는 근육량이 유지되다가 떨어진다는 것을 관찰해 근육량과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운동과 영양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홍섭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는 구강 노쇠를 막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인지적, 사회적, 심리적, 신체적인 노쇠를 다 더해서 노쇠라고 하는데, 이중 구강 노쇠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구강 기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전체 노쇠나 장애, 사망률을 높인다. 이전 연구에서 구강 내 세균 감염이 반복되거나 염증이 생기면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었다. 고 교수는 “구강 노쇠와 관련된 교육과 훈련이 모두 중요하다”며 “건강검진에 구강 기능검사를 도입하고 건강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 자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x_4J2sbQKn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