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극자외선(EUV) 장비로 반도체 연구를 진행하는 모습./송복규 기자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업무를 돕고, 완전 자율주행차가 등장해 운전대를 조작하지 않아도 목적지까지 간다. 도로가 복잡하면 하늘을 자율주행으로 날아다니는 에어택시를 타도 된다. 완벽한 스마트공장이 들어서면서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최근 가파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로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이다.

인류가 꿈꾸는 미래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각 분야의 기술도 문제지만, 모든 첨단기술의 주춧돌인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저전력, 고성능이라는 반도체 기술의 궁극적인 목표에 다가서기 위해 기업은 물론 정부와 학계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 기술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를 전략무기 수준으로 관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겸 연구부총장은 극한 스케일(Hypersacle)과 극한 물성(Hyperfunction), 이종집적(Heterogeneous)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잡고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앞 글자를 따서 ‘H3′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 교수의 연구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반도체 혁신연구센터로 지정받았고, 지금은 ‘CH3IPS’를 이끌고 있다. 안 교수는 10년 안으로 3개 주제에서 각 10배씩, 총 1000배의 성능 향상을 만들어낸다는 목표를 잡았다. 안 교수의 청사진에 고려대와 연세대, 포스텍,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자들도 합심해 ‘드림팀’을 꾸렸다.

안 교수는 반도체를 ‘인공 뇌’라고 표현했다. 현재 사용하는 인공 뇌는 10~300톱스(1초에 1조회의 연산을 수행하는 시스템 처리장치의 연산 수행 속도 단위)의 성능을 보이는데, 모든 기술이 인프라에 연결되기 위해선 5000톱스는 달성해야 한다. 조선비즈는 반도체 성능 개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하는 안 교수를 지난달 16일 서울 한양대에서 만나 미래를 위한 생존법을 들었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겸 연구부총장./한양대

–혁신연구센터로 ‘CH3IPS’를 기획한 계기가 궁금하다.

“연구센터를 만들면서 미래 반도체 산업에 경쟁력을 가지려면 무엇이 제일 핵심적인지 먼저 따져봤다. 극한 스케일은 반도체 소재를 얼마나 작게, 극한 물성은 반도체 소자의 구조를 가지고 어떤 성능을, 이종집적은 패키징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만드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최근 AI 분야를 보면 결국엔 엔비디아의 칩을 가져와 한국의 데이터를 집어넣을 뿐인데, 진정한 의미에서 AI 연구개발이 되려면 반도체가 해결돼야 한다. 첨단기술 시대가 온다고 하지만, 뇌에 해당하는 반도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현재 반도체 기술의 한계는 무엇인가.

“문제는 소비 전력이다. 반도체 소재나 공정 소재, 시스템 기술로 퍼포먼스는 올리되 소모 전력은 낮추는 핵심 기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런 원천기술이 사실상 없다. 일단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반도체 소형화와 집적화에 집중하는 극한 스케일 한 그룹, 고성능 소자를 연구하는 한 그룹, 이종집적으로 시스템을 통합하는 한 그룹을 모았다. 구체적으로는 원자 제어기술이나 25년 이상 연구한 극자외선(EUV) 패터닝 기술을 활용할 예정이다.”

–반도체 성능 1000배 향상을 달성하면 일상에 어떤 변화가 있나.

“얼마 전까지 첨단기술이 대부분 스마트폰에 들어갔다면 이제는 모빌리티로 옮겨가고 있다. 가장 와닿는 건 자율주행이다. 아직은 사람이 운전에 개입하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아직 신뢰도와 정확도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율주행이 나오기 위해선 인프라와 센서가 완전히 연결돼 신뢰도와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로봇이나 거대언어모델(LLM)도 마찬가지다. 결국, 모든 첨단기술의 신뢰도와 정확도를 확보하기 위해선 반도체 성능이 1000배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극자외선(EUV) 장비로 반도체 연구를 진행하는 모습./송복규 기자

안 교수가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연구시설에는 한 대당 5000만원에서 30억원에 이르는 장비들이 들어서 있다. 기성품을 사들여온 것도 있지만, 대부분 반도체 장비업체에 의뢰해 연구에 최적화해 만든 장비들이다. 연구시설은 실험하는 박사와 석사, 학생들로 북적였다.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구축한 청정실과 연구시설은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ASML의 최고경영책임자(CEO)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도 다녀갔다. 특히 네덜란드는 안 교수와의 협력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2년에는 마르크 뤼터(Mark Rutte) 네덜란드 총리까지 방문했다. 모두 연구센터에 구축된 EUV 장비를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온 것이다. 안 교수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 당시 반도체 관련 발표를 맡기도 했다.

연구센터는 스케일 측면에서는 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미만의 5개 원자층, 물성 측면에서는 126비트 3차원 양자점(量子點, Quantum dots) 적층 소자 개발을 목표로 한다. 프로세싱인메모리(PIM)와 중앙처리장치(CPU)를 ‘광전 인터커넥트’로 연결하는 이종집적에도 도전한다. 안 교수는 혁신적인 반도체 기술로 반도체 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에너지 소모량도 낮춘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내 반도체 기업과도 협력하고 있다고 들었다.

“2019년부터 한양대 산학협력센터 지원사업으로 ‘극자외선 노광기술 산학협력센터(EUV-IUCC)’를 운영했다. 당시에는 8개 기업과 협력하면서 연구를 진행했는데, 지금은 ASML과 에프에스티(036810), 에스앤에스텍(101490), 대한광통신(010170) 등 협력기업이 32개로 늘었다. 이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과 개발하는 기술을 잘 섞어서 협력하면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 걸로 생각하고 있다.”

–'CH3IPS’의 또 다른 목표도 있나.

“미국도 한국 연구혁신센터와 비슷하게 ‘ERC’라는 제도를 1970년대부터 운영하고 있다. 10년 동안 정부에서 센터를 만들어 연구를 지원하는데, 놀랍게도 아직 살아남은 센터가 60여개에 달한다. 거의 90% 정도가 지원이 끝나고도 남아 있는 거다. 하지만 한국을 보면 지원이 끝나고 남는 센터가 3분의 1도 안 되는 거 같다.

‘CH3IPS’의 또 다른 목표는 지속 가능성이다. 인력 측면에서는 박사를 연간 약 20명씩, 석사를 연간 40명씩 배출하는 게 목표다. 또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장비들도 새로 들어온다. 기술이전이나 기술 창업, 협력기업 유치과 같은 방법으로도 지속 가능한 연구센터를 만들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