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비영리단체 ‘5대 환류대연구소’ 연구진은 전 세계 바다에 171조개 이상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있다고 추정했다. 무게로만 따지면 총 240만t으로 80억명의 지구 인구로 나누면 1인당 2만1000개가 넘는다. 그러면서 해양 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 쓰레기가 10년 새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플라스틱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해양을 떠도는 플라스틱도 크게 증가한 것이다.
유엔 회원국은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국제 협약인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준비하고 있다. 재활용으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화석연료로부터 만들어지는 플라스틱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 골자다. 플라스틱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것을 고려한 조치다.
전 세계가 플라스틱과의 전쟁에 나서기 전인 30여년 전에 플라스틱 생산 방법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국내 연구자가 있다. 박테리아로 플라스틱을 만들고 분해까지 하는 기술을 만든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겸 연구부총장이다. 지금은 플라스틱을 석유화학 기반의 공장에서 만드는데 이 교수는 박테리아 공장을 만들어 플라스틱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박테리아로 만드는 플라스틱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걸까. 시작은 박테리아의 대사회로를 유전자 단위에서부터 개량하는 것부터다. 우리가 원하는 물질을 만들도록 유전자를 한두 개 자르거나 복제하는 것이다. 원하는 박테리아를 보다 빠르게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최적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대사과정을 공학적으로 활용하는 ‘대사공학’에 합성생물학과 시스템 생물학, 진화공학의 도구가 모두 필요하다. 이 교수는 30여년 전 관련된 모든 분야를 엮은 ‘시스템대사공학’을 처음으로 만든 뒤 지금까지 해당 분야의 권위자로 자리하고 있다.
이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시스템대사공학을 기반으로 바이오기반의 고분자를 생성해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만들고 세계 최초로 가솔린도 만들었다. 최근엔 자동차나 전기, 섬유, 의료 산업 등의 분야에서 쓰이는 나일론 등의 폴리아마이드 성분을 바이오 방식으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외에 나일론의 기초 재료가 되는 숙신산과 생분해성 플라스틱, 바이오 연료, 천연물 등을 생산하는 균주를 개발하기도 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자연환경에서 완전히 생분해돼 미세플라스틱 발생의 우려가 없다.
박테리아를 키울 때는 먹지 못하는 폐목재나 나뭇잎, 옥수수대 등의 바이오매스를 분해해 얻은 포도당을 먹이로 쓴다. 이런 장점 덕분에 시스템 대사공학은 다양한 화학물질이나 연료, 고분자 등을 친환경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하는 기술로서 기후변화나 플라스틱 등 여러 환경 문제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6년 10대 떠오르는 기술로 시스템 대사공학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2023년 12월 미생물을 활용한 플라스틱의 생산과 분해까지 할 수 있는 최신 기술을 정리해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 교수는 “연구 성과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데에는 농도와 생산성, 수율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결과를 낸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막상 생분해 비닐을 만들더라도 가격이 비싸면 쓰지 않는다”며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수익성이 없으면 상용화가 어려운 만큼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대사공학 분야와 함께 이상엽 교수 연구실도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연구자로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교수는 여느 연구자보다 연구에 열의를 보였다. 이 교수는 “현재 기후위기 대응과 인류의 건강을 큰 주제로 삼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연구 목표는 무빙 타겟”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때그때 다른 연구를 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이 교수는 반도체에 바이오 센서를 올리는 것이나 퀀텀닷 같은 최신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시스템 대사공학에 적극적으로 접목해 최적화를 앞당길 기반을 마련했다. 실험 대신 AI로 목표로 하는 화합물을 생산하기 위해 미생물의 어떤 유전자를 삭제하거나 발현을 억제할지, 혹은 과발현해야 할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실험으로만 최소 2년 걸렸던 과정이 AI를 활용하면 단 일주일로 줄어든다. 이 교수는 “실험을 통해 얻은 피드백을 계속해서 AI에 입력해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며 “지금은 연구자들이 놓쳤던 부분을 AI가 발견해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 연구실을 거쳐간, 그리고 함께 연구하는 학생과 연구원들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이 교수 연구실은 40~45명 규모로 고분자팀과 케미컬팀, 천연물팀, 그리고 컴퓨터 모델링팀까지 각 팀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연구하고 있다. 각자 다른 주제로 연구하기도 하고, 가끔 교집합을 만들어 교류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20년 전부터 도입한 이 시스템으로 성과를 효율적으로 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과정을 거쳐 졸업한 석박사생만 110명이고, 그 중 35명 정도가 국내외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모두 이 교수의 ‘재산’이다.
이 교수는 30년 간 쌓인 연구 노하우를 바탕으로 연구 주제를 다각화할 계획이다. 이 교수에게 끊임없는 연구 아이디어의 원천을 묻자 “공학은 사람들과의 실생활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분야로, 기후 위기나 고령화 사회 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한다”며 “우연히 찾는 문제도 있다”고 답했다. 한 예가 폴리에스터나 나일론의 원료인 숙신산을 대사공학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이 교수는 잡지를 보다가 소의 되새김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배출되는 가스가 메탄이 아닌 이산화탄소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원료삼아 박테리아로 숙신산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숙신산 연구는 상용화를 위한 기업들의 관심이 크다. 이 교수는 “관련 특허가 100개 정도 묶여 있는 상황이라 상용화가 쉽지 않다”면서도 “거미 실크나 아미노산과 같은 성과는 상용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갈수록 환경 이해도나 기후위기 등 문제가 커지는 만큼 살아생전에 큰 것들이 상용화가 돼 환경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며 “꾸준히 연구 성과를 누적해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겸 연구부총장은
1986년 서울대 화학공학 학사
1987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화학공학 석사
1991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화학공학 박사
1994년~현재 KAIST 생명공학과 교수·특훈교수
2000년~현재 KAIST 생물공정연구센터, 생물정보연구센터 소장
2008~2013년 KAIST 생명과학기술대학장
2013년~현재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창립 이사)
2013~2014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다부처특별위원회 위원장
2013~2015년 KAIST 연구원장
2014~2017년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
2017~2021년 KAIST 4차산업혁명지능정보센터 소장
2017~2021년 KAIST 연구원장
2019년 현재 한국공학한림원 상설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