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을 대규모 삭감한 가운데 기업들도 R&D 투자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들은 R&D 예산을 정부의 투자 의지를 가늠하는 지표로 삼고 있는데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 자체 R&D 투자심리도 위축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는 연구소를 보유한 국내 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2024년 R&D 투자 및 연구인력 채용 전망'을 조사한 결과를 3일 발표했다. 산기협은 2013년부터 매년 연구개발전망조사(RSI)를 실시하고 있다.
조사 결과 2024년 국내 기업들의 R&D 투자 RSI 지수는 97.1, 연구인력 채용 RSI 지수는 93.3으로 나왔다. RSI가 100 이상이면 투자를 늘린다는 의미이고, 100 미만이면 감소한다는 뜻이다.
특히 국내 민간 부문 R&D 투자를 이끌고 있는 대기업이 R&D 투자와 연구인력 채용 모두 전년대비 줄이겠다는 뜻을 보였다. 대기업의 경우 올해 R&D 투자 RSI 지수가 95.3으로 작년보다 6.2P나 감소했다. 연구인력 채용 RSI 지수도 94.7로 작년보다 1.1P 감소했다. 중견기업도 R&D 투자와 연구인력 채용을 모두 줄이겠다는 뜻을 보였고, 유일하게 중소기업만 R&D 투자를 늘리겠다는(102.9) 계획을 밝혔다.
산업별로 보면 연구인력 채용은 모두 분야에서 줄이겠다고 답했지만, 서비스(101.9)와 자동차(106.3) 분야는 R&D 투자는 늘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외에 다른 분야는 모두 R&D 투자도 줄인다는 계획이다. 특히 건선 분야는 R&D 투자 RSI 지수가 87로 유일하게 80대를 기록했다.
기업들이 R&D 투자를 줄이는 이유로는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56.5%)가 가장 컸다. 연구개발 자금확보 어려움(28.2%) 같은 이유도 있었다.
특히 정부 차원의 R&D 예산 삭감이 기업들의 R&D 투자에도 악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4년도 주요 R&D 예산을 약 13.9% 삭감한 21조5000억원으로 편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소폭 증액됐지만 대규모 삭감안이 확정돼 과학기술계의 충격이 크다.
실제로 R&D 예산 삭감이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에 끼치는 영향을 물었을 때, 과반수가 넘는 52.2%의 기업이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답했다. 건설(63.1%), 기계(60%), 자동차(67.5%) 같은 분야는 특히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답이 많았다.
정부가 강조하는 국제 공동 R&D에 대해서 기업들은 큰 관심이 없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기업의 75%가 국제 공동 연구개발 경험이 없다고 답했고, 국제 공동 연구를 희망하느냐는 질문에도 절반에 가까운 42%의 기업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협력대상을 찾기 어렵고, 특허를 놓고 분쟁 가능성이 큰 점 등이 국제 공동 연구개발에 나서지 않는 이유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