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카네기멜런대와 노스웨스턴대, 노트르담대 연구진이 화학 반응을 자율적으로 학습한 뒤 새로운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는 AI를 개발했다. 그림은 AI가 실험하는 모습./미국립과학재단(NSF)

팔라듐 촉매반응은 의약품과 전자부품용 화합물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화학반응이다. 탁솔과 같은 항암제, 모르핀과 같은 진통제, 각종 소염제, 항암제, 천식 치료제를 비롯한 합성 약품은 물론 제초제와 유기LED(발광다이오드)에도 사용된다. 자연계의 유용한 천연물질 중에는 탄소로 이뤄져 있는 유기화합물이 많은데, 화학자들이 이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과정에서 탄소와 탄소를 결합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리처드 헤크 미국 델라웨어대 교수와 네기시 에이이치 퍼듀대 교수, 스즈키 아키라 일본 홋카이도대 교수는 2010년 팔라듐 촉매 반응을 발견하고 산업에서 활용하는 길을 연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팔라듐 촉매 반응은 지금도 다양한 화합물을 만드는데 활용되고 있어 활용 범위가 넓다. 최근 미국 과학자들이 인공지능(AI)에게 팔라듐 촉매 반응을 가르쳐서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하는 방법을 찾게 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카네기멜런대와 노스웨스턴대, 노트르담대 연구진은 20일(현지 시각) 다양한 화학 반응을 학습하고 새로운 실험을 수행할 방법을 제시할 AI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협력과학자(Coscientist)’으로 불리는 이 AI는 복잡한 분자를 합성하는 실험 방법을 4분안에 제시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화학자 AI를 학습시킬 데이터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과학적 성과인 ‘팔라듐 촉매 반응’에 주목했다. 팔라듐 촉매를 이용해 탄소와 탄소를 잇는 반응을 통해 고분자와 약물과 같은 복잡한 분자를 만드는 기술이다. 부산물이 거의 없고 반응속도도 빨라 현재 제약 개발 과정이나 산업 분야에 널리 쓰이고 있다. 새로운 탄소 결합을 만드는 반응은 거의 대부분 팔라듐 촉매를 사용할 정도다.

그래픽=손민균

연구진은 문서 데이터에서 의미와 패턴을 추출하는 대형언어 AI 모델이 연구자가 하는 일을 그대로 할 수 있게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화합물의 공개 정보를 스스로 찾거나 실험실 로봇 장비를 제어하고, 실험 결과를 분석해 개선에 반영하게 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훈련한 AI에 팔라듐 촉매 반응을 학습하도록 명령했다. AI는 스스로 위키피디아와 미국 화학회(ACS), 영국 왕립화학회(RSC)에서 참고 자료를 찾아 학습했다. AI는 연구진이 제공한 화학 물질로 수행할만 한 실험을 단 4분 만에 내놨다. 또 AI가 직접 로봇을 제어해 액체 시료를 가열하고 흔들어 섞는 식으로 실제 실험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 AI는 로봇을 제어하는 코드에 오류가 있었지만 사람 도움 없이 스스로 오류를 발견하고 코드를 수정하기도 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게이브 고메스 카네기멜런대 교수는 “인간이 발명한 복잡한 화학 반응을 기계가 계획하고 설계하고 실제 실행한 것은 처음”이라며 “팔라듐 촉매 반응처럼 이미 다양한 산업에 쓰이는 개념을 익힐 수 있는 만큼 앞으로 활용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AI는 사람과 달리 24시간 내내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하며 지속적으로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에 입증한 AI의 능력을 활용해 새로운 발견 속도를 높이고 실험 결과의 재현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메스 교수는 “새로운 현상과 새로운 반응,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일하는 수단을 가질 수 있다”며 “다만 AI의 능력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규칙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3), DOI: http://dx.doi.org/10.1038/s41586-023-067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