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기업인 클라임웍스는 아이슬란드 남부에 거대한 공기청정기를 만들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공기청정기가 공기 질을 개선하는 기계라면, 클라임웍스의 장치는 지구 전체의 공기 질을 개선하는 기계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인 뒤에 단단한 돌로 만드는 기술이다. 자연에서도 암석이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클라임웍스는 수천 년은 걸리는 자연계의 순환 기능을 몇 달 안에 할 수 있도록 앞당겼다. 클라임웍스는 이산화탄소 포집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기업가치만 22억달러(약 2조8859억원)를 인정받았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돌로 바꾸는 21세기판 연금술에 도전하는 한국 기업이 있다. 지난 4일 전라남도 강진의 환경산단에 있는 로우카본(LowCarbon)을 방문했다.
로우카본의 입구에 들어서자 클라임웍스가 아이슬란드에서 운영하고 있는 직접탄소포집(DAC) 플랜트와 비슷하게 생긴 ‘집중형 포집장치(DACCS)’가 보였다. 로우카본 관계자는 “하루에 500㎏의 탄소를 포집한 후 격리할 수 있다”며 곧 미국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DACCS는 로우카본만의 습식 이산화탄소 포집제 KLC와 외부 공기를 반응시켜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만을 KLC로 포집한다. 이렇게 포집된 이산화탄소와 KLC를 KLC-S라고 하는데, KLC-S 용액을 콘크리트 혼합 과정에 주입하면 탄산칼슘 같이 안정적인 탄산염 형태가 생성된다. 이처럼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안정적인 탄산염 형태로 콘크리트 내부에 장기간 격리하는 것이 DACCS의 원리다.
연구동에 들어서자 로우카본이 설치한 탄소 포집 제품들이 탄소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여주는 거대한 통합관제실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로우카본 탄소 포집 장치와 운용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앱을 통해 휴대전로도 실시간 현황 파악이 가능하다고 했다. 로우카본 관계자는 “이 정도 수준의 통합관제실을 갖췄다는 것만으로도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로우카본은 탄소 포집 실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DACCS 설비에 대한 실증을 진행할 계획이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기술을 탄소제거기술(CDR) 또는 직접 탄소 포집(DAC)이라고 부른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급부상한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의 하나다.
전 세계적으로 CCUS 기술이 각광받으면서 기술 개발과 사업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탄소 포집은 넷제로 도달에 적잖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지만 여전히 극복할 문제가 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직접 포집을 통해 공기 중에서 탄소 1t을 제거하려면 1200kWh가 필요하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이런 변화에 무뎠다. 로우카본은 DAC 기술을 가지고 사업에 뛰어든 거의 유일한 국내 기업이다.
로우카본측 설명에 따르면, DACCS는 한 달에 이산화탄소 15톤을 포집하는 모듈의 경우 23kW의 전력을 소모한다. 하루 24시간 연속가동시 월 1만6560kWh의 전력을 소모하는데, 한전이 공급하는 전력만으로 가동한다면 전력소모량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7.9톤이다. 즉 한 달에 15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데, 전기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는 7.9톤이 배출되는 셈이다. 다만, 신재생에너지로 DAC 설비를 가동하면 전력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7.9톤보다 더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로우카본은 향후 포집 비용을 더 줄이고 경제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로우카본의 DACCS는 설치 위치에 제한이 없다. 지중에 이산화탄소를 매립하는 기존 CCS의 경우, 땅 속 지질 여건에 따라 CCS 설비 위치가 영향을 받아 땅이 좁은 한국에선 적합하지 않았다. 로우카본 DACCS 기술은 지상에서 CCS를 진행하기 때문에 설치 위치에 제약이 없어 산간오지나 무인도·도심지·농경지 등에도 설치가 가능하다.
반면 클라임웍스의 경우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포집·분리·정제해 지중 현무암질에 주입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 경우 공정상 열에너지와 적합한 현무암지대가 필요하므로 설비들이 모두 북유럽 화산지대인 아이슬란드에 있다. 즉, 화산지대·현무암지대·지열발전 가능지역 등 설치상 여러 제약사항이 있으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포집단가를 낮춰야 하기에 설비 규모가 커야 한다. 이 역시 설치 위치에 제약이 없고 모듈식으로 규모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로우카본이 돋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로우카본은 현재 강진 산단에 DACCS를 구축하고 있으며, 올해 말 시운전을 거쳐 내년초부터는 DACCS 설비를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로우카본은 또 석탄 등에 함께 뿌리기만 해도 이산화황 배출이 크게 줄어드는 ‘전처리 탈황제’도 개발했다.
강진 로우카본 본사에서 만난 이철 대표는 전 세계가 탄소 규제에 발맞춰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데 한국만 동떨어져 있다고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산업계의 부담을 이유로 한국 정부만 탄소 배출 규제에 소극적이다보니 DAC를 비롯한 CCUS 산업이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처럼 규제와 함께 CCUS 산업 진흥에 적극적이다. IRA는 탄소 배출과 관련해 엄격한 요건을 충족한 기업에 막대한 지원금을 지급해, 미국 기업들뿐 아니라 미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과 여타 국가의 기업들도 기후시장에 참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유럽연합(EU) 역시 CBAM(탄소국경조정제·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에 부과하는 징벌적 무역 관세)을 도입하는 등 미국의 뒤를 따르고 있다.
이철 대표는 “당장은 탄소 규제에 따른 기업이나 산업의 비용 부담을 의식해 느슨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며 “하지만 불과 몇 년 후에는 미국과 유럽에 진출하는 수출산업이 탄소배출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금 당장 준비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산업은 ‘탄소 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우카본은 일단은 미국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국내에서는 관련 업계와 학계 전문가를 모아 한 목소리를 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로우카본은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의 수소운영위원회(H2 Steering Committee)에 참여했고, 올해는 플로리다주에서 청정 수소 허브를 구축하기로 했다. 지난 4월에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방한해 로우카본과 청정 수소 허브 구축 서명식을 하기도 했다.
이철 대표는 “텍사스주의 경우, 석유 산업이 굉장히 발달했지만 수소 허브 기지로서도 도약하고자 한다. 이에 엑손 모빌 등 관련 산업체들이 포함된 수소운영위원회를 만든 것”이라며 “여기에 한국 기업으로서는 유일하게 이사로 참여했다는 것은 로우카본의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로우카본은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더리버사이드 호텔에서 제1회 GCCUS(글로벌 CCUS) 학회총회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학회에 모인 CCUS 기술들을 융합해 기후 위기 솔루션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전문가와 전문지식을 모아 정확한 기술 수준과 그에 맞는 법안을 준비하기 위한 협의체의 성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