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의대 쏠림 현상까지 겹치면서 이공계 분야의 인재 공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인구절벽에 따른 연구인력 부족을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해외 인재 유치다. 하지만 비영어권 국가인 한국은 여러모로 해외 우수 인재를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 해외 인재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려면 연구 환경과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선비즈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바다를 건너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연구자를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들이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들어보고 해외 인재 유치 과정에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난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얻어본다. [편집자 주]

많은 한국인들은 잦은 감기로 고생하거나 힘이 나지 않을 때마다 한의원을 찾는다. 보약을 한 제 지어먹으면 한동안 몸에 기운을 얻는다는 이들이 지금도 많다. 관절에 이상이 생기거나 인대가 늘어나 통증이 있을 때에도 침 치료를 받는 게 일상이다. 보건복지부가 국민 50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한방의료를 이용한 사람은 열 명 중 무려 일곱 명에 달했다. 서양의학이 지배적인 황에서도 한의학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한의학은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동양의 의학이다. 중국 한나라 때인 기원전 200년 무렵에 집대성된 가장 오래된 의서에서 시작됐다. 인체에 기가 흐르는 혈이 있다고 보는 ‘경락’과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음양’이 큰 이론적 바탕이 된다. 서구의학은 질병 원인을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외부적 인자에서 찾지만, 한의학은 ‘정기’라고 부르는 사람의 기운이 허약해는 현상에서 원인을 찾는다.

특히 한국의 한의학은 20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중의학과 달리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조선 후기 등장한 ‘사상의학’이 대표적이다. 사상의학은 사람마다 다른 기운을 갖는다는 철학에 뿌리가 있다. 한의학을 공유해온 중국, 일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창적인 면모를 갖추게 됐다. 한의학을 중국 한족을 의미하는 ‘한(漢)의학’에서 한국 민족을 뜻하는 ‘한(韓)의학’으로 표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한의학계는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한의학을 한국인의 전유물로 여기기보다는 전 세계에 알려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해외에서 대체의학 취급을 받는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를 확립하고 효능을 입증하는 작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선 한국한의학연구원을 중심으로 한의학 이론을 분석하고 연구방법론을 개발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호주 출신 제임스 플라워스(James Flowers) 경희대 기후-신체연구소 연구교수는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 누구보다 고민하는 연구자다. ‘브레인 풀(BP)′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온 플라워스 교수는 호주 웨스턴시드니대에서 중의학을 전공하고 호주 침구중의학협회에서 9년간 회장을 맡았다. 2012년에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로 건너가 한의학을 주제로 의학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의사였던 그는 왜 한의학에 빠졌을까. 조선비즈는 지난 9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캠퍼스에서 플라워스 교수를 만나 한국 전통의학에 반한 이유를 물었다.

9일 오후 제임스 플라워스 경희대 연구교수가 경희대 캠퍼스에서 한의학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호주에선 중의학을 전공하고, 한국에선 한의학을 연구하고 있다. 동양의학에 원래 관심이 있었나.

“개인적인 이유가 큰데, 외가가 중국계다. 증조부와 외삼촌이 중의사였다. 어릴 땐 관심이 없다가 나이가 들면서 가업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의학을 전공하게 됐다. 이후 중의사로서 임상가로 활동했다. 가족의 영향을 받아 웨스턴시드니대 중의학연구소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침구중의학협회 회장까지 지내게 됐다.”

중의학과 한의학은 무엇이 다른가.

“중의학과 한의학은 같은 문헌을 많이 참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차이가 크다. 한국은 조선 때 유학의 전통으로 인해 마음이 강조된다. 한의학은 병에 걸리지 않게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는 기운을 보호하는 쪽에 치료의 방점을 뒀다. 하지만 중국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외부의 질병 원인을 차단하는 데 집중하게 됐고, 특히 공산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의학을 전부 통제하고 표준화시켰다. 반면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보니 일정 수준의 표준화는 있어도 한의사 개인의 개성이 존중된다. 각 지역 차원에서의 치료로 많이 발전했다.”

–중의사로 활동하다가 한의학 연구자로 바뀐 계기가 궁금하다.

“중년이 지나면서 임상가가 아닌 연구자로서 새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구중의학협회나 동양의학회 활동을 하면서 한국 한의사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의학을 정립하면서도 주변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실제로 국제무대에서 한의사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의학 편에서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직접 연구를 해보니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다.”

–어떤 부분이 흥미롭나.

“한의학은 동아시아 의학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근대화 속도가 빠르면서도 전통적인 가치나 지식을 보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한의학은 한국인 사회의 의료체계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의학을 연구하고 임상하는 데에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에서도 한의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원래는 중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을까 고민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지금 경희대 한의대에 있는 김태우 교수를 만났다. 2010년부터 원광대 한의대 의사학교실에서 2년 반 동안 박사 과정을 거쳤다. 이후 존스홉킨스대 의대에서도 한의학을 주제로 201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어난 한의학의 변화였다.”

제임스 플라워스(James Flowers) 경희대 한의대 연구교수가 2021년 홍콩 익스프레스에 기고한 글. 플라워스 교수는 이 글에서 한국 한의사가 코로나19 치료에 기여한 사례를 소개했다./홍콩 익스프레스

플라워스 교수는 자신이 한의사보다는 ‘역사학자’에 가깝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존스홉킨스대 시절 경험을 살려 주로 일제강점기 당시 한의사의 역할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다기보다는 서방국가가 한의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시작한 연구다. 한의학을 단순히 중의학의 일부로 여기는 시각과 오해를 풀고 싶다는 게 플라워스 교수의 바람이다.

한의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플라워스 교수의 노력이 빛을 본 경우도 적지 않다. 플라워스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당시 홍콩 매체 ‘홍콩 익스프레스(Hong Kong Express)’에 한의사들이 코로나19 치료에 뛰어든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플라워스 교수는 한국이 세계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잘 이겨낸 나라로 꼽히는 것 뒤엔 한의학의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9일 오후 제임스 플라워스 경희대 연구교수가 경희대 캠퍼스에서 한의학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한국에선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한의사 직업군과 한의사 개인의 역할을 영어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하는 책을 쓰고 있다. 서구권 독자들은 주로 한의학이 중의학의 작은 버전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은 20세기 근대화를 거지면서 중의학의 위상을 굉장히 낮췄는데, 한국은 오히려 한의학이 결속되고 보존됐다. 이 과정에서 한의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는 걸 알려주는 게 목적이다. 중국이나 일본을 보면 서구의학과 전통의학이 서로 배타적이다. 한국은 근대화에 역행하지 않으면서 전통적인 것을 함께 가져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례를 보여줬다.”

–홍콩 익스프레스에 코로나19를 치료하는 한의사들을 소개하는 글을 기고했다.

“글을 기고하기 전 홍콩 익스프레스에서 코로나19에 한의학이 소용없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내가 기고한 글은 그 기사를 반박하는 글이다. 당시 존스홉킨스대에 있을 때였는데, 의학기술에 가장 자신감이 넘쳤던 미국조차 코로나19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에 방문할 일이 있어서 와보니 통제나 봉쇄가 없었다. 내 기준으로는 한국이 미국보다 대처를 잘 하고 있었다. 같은 아시아 국가인 대만도 국경이 폐쇄된 상태였는데, 한국이 유독 코로나19의 영향이 적었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의료체계가 잘 돼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주기적으로 한약을 복용하고, 한의학 치료를 병행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의학은 사람의 기운을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리 예방하는 차원에서 한약을 많이 복용한다. 이런 점이 분명 한국이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데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본다. 또 한의사들이 서울과 대구에 직접 원격의료센터를 설립해 의료 과부하를 해소한 것도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다.”

–한의학계가 ‘한의학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한국에서는 한국한의학연구원을 중심으로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부분 한의학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증명하는 데에 집중된 것 같다. 다만 이런 방식은 한의학이 서구의학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한의학의 독보적인 내용을 강조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독보적인 내용이라면.

“한국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K-콘텐츠’라는 것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한의학을 다른 국가 국민에게 잘 설명해주고 전달하는 것에 더 초점을 둬야 한다. 지금의 한의학은 환자를 돌보는 일에서는 많은 성과가 있지만, 소통하는 능력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의사 개인이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K-콘텐츠가 발전한 것도 결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예일대나 하버드대, 존스홉킨스대 같은 명문대를 보면 중의학 부서가 무조건 있다. 중국 정부에서 엄청난 지원을 쏟아부어 전 세계적으로 기반을 다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인문학과 과학, 의학을 접목하는 연구소를 만들고 싶다. 동아시아 의학과 역사, 문화를 두루 연구하고 영향력을 갖추는 기관이 됐으면 한다. 이 기관은 단순히 학술적인 저널이나 저서만 만드는 게 아니라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한다. 일반 대중을 넘어 국제사회와 소통하고 후학을 양성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드는 게 목표다.”

제임스 플라워스 경희대 연구교수는

1994년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중의학 학사·석사

2005년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중의학연구소 연구이사

2009년 호주 시드니공대 글로벌연구학 석사

2009년 국제아시아전통의학연구협회 사무총장

2010년 원광대 한의대 박사

201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박사

201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박사후연구원

2020년 경희대 연구교수

주요 연구성과

Asian Medicine(2022), DOI: https://doi.org/10.1163/15734218-12341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