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R&D 예산안은 전년대비 16.6% 삭감된 25조9000억원이다. R&D 예산이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9%에서 3.9%로 줄었다. 33년 만의 예산 감축에 과학기술계가 큰 혼란에 빠졌지만, 수십 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예산안 앞에서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위한 예산이 삭감됐고, 이 와중에 어떤 예산은 왜 늘었는지 제대로 아는 국민은 없다. 조선비즈는 국회 예산안 심의 시즌을 맞아 내년도 R&D 예산안에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된 건 어떤 부분인지, 늘어난 예산 중에 낭비성 예산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편집자 주]

올해 6월 기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25개 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학생연구원, 박사후연구원 등 비정규직 인력은 총 7141명이다. 전체 연구 인력이 2만3370명인 것을 감안하면 10명 중 3명이 학생 연구원인 셈이다. 단순히 교육의 차원을 넘어 실제 출연연 연구 생태계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셈이다.

그런데 내년도 R&D 예산안이 전년 대비 16.6% 삭감되면서 이런 비정규직 학생 연구원의 인건비 확보가 어려워졌다. 학생연구원 등은 주요사업비나 외부 수탁과제 내에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기에 연구 규모가 감소하면 그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따라서 인건비를 확보해 연구 활동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다. 과학계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관별 연구개발적립금 등 자체 재원에서 인건비를 충당해 출연연 학생 연구원과 비정규직 인력 규모를 줄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스카이홀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출연연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과기정통부는 2024년 예산안에서 확보하지 못한 학생연구원과 박사후연구원 등의 인건비를 각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자체 재원에서 충당하도록 할 계획이라 밝혔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그런데 과기정통부의 계획이 과연 잘 지켜질 수 있을까. 국회에 따르면 25개 출연연은 2020년부터 작년까지 적립한 연구개발적립금의 63.3%를 이미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평균 연간 1170억1500만원에서 741억400만원을 사용했다.

국회 관계자는 “기관별 적립금을 활용해 부족한 재정을 보충할 수 있으나, 이미 연구개발적립금의 사용 용도가 정해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생 인건비로 쓰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출연연의 연구개발적립금은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기관 고유연구나 기관목적사업, 교육훈련 사업, 기관발전 사업에 활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관 목적 사업은 연구 인프라 확충이나 법령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이며, 기관 발전 사업은 연구 성과확산을 위한 기술창업 등을 뜻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적립금을 사용하는 방안은 근본적인 해결 방안으로 보기 어렵다”며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편성된 전략연구단 사업 재원 등의 활용 방안을 논의해 인건비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연연과 주요 연구중심대학 역시 같은 인식이다. 적립금을 이용해 학생들의 인건비를 충당하는 건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 나온다. 한 과학기술원 관계자는 “당장 내년에는 적립금을 써서 부족한 예산을 채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후년이나 3년 뒤까지 쓸 만큼의 적립금을 쌓아둔 곳은 없다”며 “땜질식의 대책이 아니라 확실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2025년에도 R&D 예산은 27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올해 수준인 31조1000억원을 회복하는 시점은 2027년으로 4년 뒤에나 가능하다. 출연연이 모아 둔 쌈짓돈으로 이 시기 부족한 학생 인건비를 모두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장은 “출연연의 적립금을 비정규직의 인건비로 사용하려는 것은 현실의 어려움을 단기간 모면하려는 방법”이라며 “예산 문제의 진단도 처방도 잘못된 모양새”라고 봤다. 그러면서 “원래의 목적이 있는 연구개발적립금은 그대로 두고, 인건비와 같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예산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