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독일 뮌헨에서 열린 ‘한-유럽 과학기술학술대회(EKC) 2023’에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1000명에 이르는 과학기술인이 모였다. 유럽 전역과 한국에서 뮌헨을 찾은 과학기술인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할 청정 기술과 이차전지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을 논의했다. 삼성전자와 한화시스템, SK이노베이션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도 참가해 단순한 학술 교류의 장을 넘어서 한국과 유럽의 과학기술 협력의 장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올해 EKC 2023을 준비한 재독한국과학기술자협회(재독과협)의 배동운 회장은 ‘EKC 2023′에서 시작된 유럽과의 과학기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회장은 한양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의 보흠루르대에서 기계공학으로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30년 동안 독일에 자리잡고 있는 대표적인 재독 과학기술인이다.

배동운 재독한국과학기술자협회 회장이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조선비즈 편집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독일에서 30년 넘게 생활한 배 회장은 한국이 독일과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강화하려면 일관성 있는 R&D 정책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종현 기자

국내 에너지 공기업과의 협력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배 회장을 지난 10월 27일 서울 중구 조선비즈 대회의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배 회장은 독일이 기초과학과 응용·산업 기술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내는 건 과학자의 자율을 존중하는 일관된 연구개발(R&D) 정책과 투자 덕분이라며 독일과의 국제공동연구를 강화하려면 한국도 이런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배 회장과의 일문일답.

-윤석열 정부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국제 공동연구를 강조하고 있다.

“국제협력은 당연히 중요하다. 국제협력을 많이 해봐야 세계적인 과학기술 트렌드도 알 수 있고, 협업을 통해 국내 과학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국제협력을 늘리라고 하면서 국내 R&D 투자를 줄인 것이다. 이건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유럽은 오랜 과학기술의 토양이 있다. 유럽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면 유럽의 과학기술의 토양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유럽의 어떤 부분이 다르다는 건지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독일의 경우 기초과학 분야에서 정부가 특정 R&D를 강요하지 않는다. 정부는 돈만 댈 뿐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연구기관인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보면 보통 40대에 디렉터로 임명된다. 이 디렉터가 퇴임할 때까지 30년 정도의 연구 기간이 주어진다. 이때 정부는 이 디렉터가 어떤 연구를 하든 개입하지 않고 꾸준히 재정적인 지원을 한다. 디렉터가 오랜 시간 연구 계획을 세우고 본인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풍토다.

그런데 한국은 정권에 따라 변동성이 크고 불확실성도 많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장기적인 연구가 어려운 게 한국의 실정이다. 한국이 유럽과 협력을 늘리려면 이런 유럽만의 문화와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유럽의 눈높이에 맞춰서 한국의 과학기술 풍토도 자리를 잡아야 유럽이 한국을 파트너로 받아줄 거라고 본다.”

-한국에선 연구자의 부정부패에 대한 우려가 크다. 최근에도 한국에선 지방대 총장의 연구비 부정수급 사례가 이슈가 됐다.

“연구자를 존중하고 최대한 지원하는 것과 연구비를 엉뚱하게 쓰지 못하게 감시하고 제재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독일도 연구자를 존중하지만 연구비 집행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체크한다. 연구자를 선별할 때 연구자의 도덕적인 부분도 검증할 정도다.”

-한국 정부는 국가 R&D 제도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33년 만에 예산 삭감에 나섰다.

“예산 집행이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찾아서 개선해야 한다. 이런 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비리가 있거나 도저히 가망이 없는 사업은 정리를 해야겠지만, 모든 사업을 무자르듯이 삭감하는 게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본다.”

-독일 산업계에서 일하면서 국내 기업과도 협업할 기회가 많은 것으로 안다. 국내 기업들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독일에 진출할 때 컨설팅을 해줄 일이 많다. 한국과 독일의 다리를 이어주는 일인데,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 시장은 굉장히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다. 문턱이 높다고 해야 한다. 인증부터 시작해서 한 기업이 유럽 시장에 처음 진출하려고 하면 최소 2~3년은 그 회사가 꾸준히 성과를 낼 수 있는 회사인지 지켜보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한국 중소기업들은 그 시기를 기다리지 못한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으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단기간만 지원을 해주고 금방 그만둔다. 국제공동연구나 국제협력에 고스란히 접목할 수 있는 이야기다. 독일은 정권과 상관없이 꾸준히 사업이나 제도가 유지되는데 한국은 정권따라 바뀌거나 중단되는 것들이 많다.”

-저출산 등의 이유로 연구 인력 부족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 해외 우수 연구인력 유치가 중요해졌는데, 해외 연구인력을 한국으로 유치하려면 어떤 유인책이 필요할까.

“연구자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이나 언어적인 부분, 생활적인 부분을 모두 해결해줘야 한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이민은 당연한 선택지가 되고 있다. 독일도 엔지니어 부족 문제가 심각한데,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이 문제를 풀고 있다. 많은 난민이 들어오면서 생기는 사회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장점이 더 많다고 본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이런 사회적인 합의가 중요하다고 본다.”

-EKC 2023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재독과협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과학기술 분야의 국제협력에서 EKC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 한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문턱을 많이 낮추려고 한다. 지금은 한인 과학기술인이 중심이지만, 앞으로는 현지 과학기술인들이 참여하는 커뮤니티로 발전시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