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8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철회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는 출연연의 기관 운영비인 경상비를 두 차례 증액하고도 사용을 금지했다. 가이드라인 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기 위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뉴스1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운영비 부족으로 냉·난방비도 제대로 내지 못할 처지다. 출연연이 운영비로 쓰는 경상비를 작년 말부터 두 차례에 걸쳐 증액했지만 정작 쓰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승래 더불어민주당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출연연의 기관운영비로 쓰이는 경상비가 작년 12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총 184억원이 증액됐다.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 25곳을 소관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이사회를 열고 출연연 운영비 증액 요소를 ‘특이소요’ 명목으로 반영해 경상비를 증액했다. 경상비는 전기료, 인건비, 세금을 비롯해 기관 운영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예산 항목이다.

두 차례에 걸친 이사회에서는 증액이 필요한 기관운영비 265억3500만원과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이행에 따른 삭감분 84억2300만원을 고려해 총 184억1200만원의 예산을 증액했다. 인건비 상승과 제세공과금, 전기료를 비롯한 개별 기관의 운영비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조치였다. NST 관계자는 “인건비와 전기료 상승으로 인한 필수 예산을 현실적으로 고려해 특이소요로 반영했다”고 말했다.

추가 예산이 배정되면서 출연연은 기관 운영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정작 늘어난 예산을 쓰지 못하면서 기관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출연연 관계자들은 늘어난 예산이 ‘그림의 떡’이라고 말한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증액된 예산을 사용하지 말라는 과기정통부의 지침이 있어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있다”며 “꼭 써야 할 돈은 계속 나가고 증액 예산은 사용하지 못해 허리띠를 졸라 매 최대한 절약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산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침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 출연연은 냉·난방비 절약을 위해 에어컨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의 출장도 막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연구 장비 운용에 쓰이는 전기료를 내기 위한 연구비의 비중을 늘리면서 연구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출연연들은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이 경상비 사용을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본다.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에 내리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출연연은 올해 경상비 예산의 3%를 절감해야 한다. 기재부는 각 부처가 이 가이드라인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를 평가하는데, 과기정통부가 이 평가 때문에 출연연의 예산 집행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연구회 이사회에 기재부가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기재부도 출연연 경상비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정한 것 아닌가”라며 “필요한 예산을 쓰라고 만들어줬는데 평가 때문에 쓰지 말라는 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영향이라는 시각도 있다. 출연연이 경상비를 집행하지 않고 이월할 경우 연구개발적립금으로 쌓인다. 이 돈은 출연연의 학생 인건비로 쓸 수 있다. R&D 예산 삭감으로 석·박사급 학생 연구원의 고용 불안이 이슈가 되자 출연연의 경상비를 학생 인건비로 더 쓸 수 있게 집행을 막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기정통부는 이에 대해 다음달 초에 기재부가 증액 예산을 절감 목표에 포함할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며 특이소요를 인정할 지 여부를 기재부와 계속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증액한 예산을 평가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면 출연연의 운영비 부족 문제가 다소 해결될 수 있지만, 증액한 예산을 절감 목표에 반영하기로 하면 출연연의 운영비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출연연 관계자는 “내년에는 경상비 절감 목표가 5%로 더 높아졌고 그 이후에도 계속 예산 삭감이 이뤄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R&D 예산 삭감으로 연구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기관 운영의 미래까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