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과 생명과학 발전에 힘입어 마우스를 포함한 모델동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모델동물은 국내에서 실험이 허가된 척추동물과 곤충, 미생물이 모두 포함된 개념이다. 국내외에서 대부분 마우스를 사용하고 있으나 집쥐인 랫드(rat)와 영장류, 제브라 피시 등으로 점차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랫드는 대표적인 실험동물인 마우스보다는 10배 정도 큰 설치류 동물이다. 크기가 커 수술이 쉽고, 얻은 시료의 부피가 크다는 장점이 있다. 인간과 생체학적으로도 비슷해 연구 역사가 약 200년으로 길다. 그만큼 실험 효율이나 안전성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쌓여 있다.
무엇보다 랫드는 행동 양상이 풍부하고 기억 능력이 높아 신경과학 분야 연구에서 많이 쓰인다. 약물 등의 독성이나 중독, 행동 분석에서는 마우스보다도 더 많이 사용될 정도다. 현재 연구자들은 랫드를 활용해 심혈관 질환이나 암, 관절염, 천식과 같은 자가면역 질환, 우울증, 중독 등 정신 건강 장애까지 복합적으로 질환을 연구하고 있다.
랫드는 24년 전 게놈이 밝혀져 유전자 편집도 가능하다. 세계 최대의 랫드 저장소인 일본 교토대 국가생물자원프로젝트 랫드(NBRP-Rat) 센터의 마사히데 아사노 교수는 체외 수정 방식으로 특정 유전자를 변형한 랫드를 만들고 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일반적인 랫드보다는 작은 ‘미니 랫드’를 개발하기도 했다. 미니 랫드는 마우스보다 불안이나 통증에 대해 더 민감해 신경과학 연구에 적합하다.
인간과 가장 비슷한 동물인 ‘비인간 영장류’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비인간 영장류는 인간과 골격이나 신경계가 비슷하다. 때문에 인간 질병이나 복잡한 신경계 연구에 사용한다. 대표적인 국립 영장류 센터인 독일 영장류센터에서는 영장류로 감염병과 신경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영장류는 마우스, 랫드와는 달리 사회적 행동을 살피는 데 쓰이기도 한다. 박수현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시각을 이용해 세상을 이해하는 점에 착안해 영장류가 얼굴이나 신체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챌 때의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그 결과 영장류가 얼굴이나 풍경을 볼 때 뉴런이 각각 다르게 반응하는 것을 확인해 인간의 뇌 작동 원리를 예측했다. 이 외에 이종장기이식에 대한 반응을 미리 영장류에서 시험하기도 한다.
최근 동물 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려는 움직임에 맞춰 설치류와 영장류를 보다 작은 동물로 대체하는 움직임도 있다. 푸른색에 흰 줄무늬가 있는 제브라 피시가 대표적인 대체 동물이다. 이미 싱가포르 과학기술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제브라 피시 자원은행을 보유하고 있고, 국내에도 제브라 피시 연구자원 거점은행(KZRC)이 설립됐다.
제브라 피시는 몸체가 투명해 실시간 이미지로 관찰이 가능하다. 유전자 조작이 쉽고 성장도 빨라 대규모의 스크리닝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심혈관 질환이나 안과 질환, 패혈증에 대한 연구 플랫폼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수현 고려대 의대 교수는 화학 물질 노출과 질병 발생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기 위해 제브라 피시피를 사용하고 있다. 제브라 피시는 신경 발달 과정과 생리적 기능이 인간과 비슷해 추후 치료제를 식별하는 모델 시스템으로 쓰일 수 있다.
마우스뿐 아니라 랫드, 영장류, 제브라 피시까지 다양한 모델동물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제경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연구 주제에 따라 적합한 동물 모델이 다르다”며 “다양한 모델 동물을 연구해 데이터가 쌓이면 100번 실험할 것도 1~2번으로 실험 횟수를 줄여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팬데믹 때 마우스로 전임상 연구를 했듯 돌연변이 바이러스나 코로나19처럼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미래 감염병인 ‘질병X’가 등장할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모델동물 자원을 확대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가 마우스 표현형 사업단은 19일 서울 영등포구 페어몬트 앰배서더 호텔에서 독일 영장류 센터와 모델 동물자원·정보 교류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영장류 분야에서 각국이 수집한 자원정보를 공유하고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