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적합하게 유전자가 교정된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원숭이가 2년 넘게 생존했다. 사람의 장기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이종장기이식 기술의 상용화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바이오벤처 e제네시스(eGenesis)와 하버드의대 공동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유전자를 교정한 돼지 신장을 원숭이에게 이식해 758일 생존했다는 연구 결과를 11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이종장기를 이식한 실험 중 가장 긴 생존기간이다.
연구팀은 유카탄 미니돼지의 유전자 69개를 세 차례에 걸쳐 교정해 이식 후 거부반응을 최소화하고 사람이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제거했다. 거부반응을 유발하는 다당류 항원 글리칸 유전자 3개를 제거한 뒤, 돼지 레트로바이러스 유전자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사람과 비슷한 형질로 전환하는 7개의 유전자를 넣어 불필요한 혈액 응고 등 면역체계 거부를 줄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실험은 사람과 특성이 비슷한 시노몰구스 짧은꼬리원숭이(마카크원숭이) 20마리 이상에 유전자 교정 돼지 신장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유전자 교정뿐 아니라 신장 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투여해 거부반응을 최대한 줄였다.
인간 유전자가 추가된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원숭이는 총 15마리다. 이 중 다섯 마리는 1년 이상 살았고, 한 마리는 2년 이상 생존했다. 신장 바이오마커 분석을 한 결과, 이식된 장기는 원래 신장과 똑같은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인간 유전자가 추가되지 않은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일곱 마리는 모두 50일을 넘기지 못했다.
글리칸 유전자를 제거하고 인간 유전자를 추가한 돼지 신장을 이식한 원숭이의 생존 기간 중간값은 176일, 최장 기간은 758일이다. 글리칸 유전자만 제거한 신장을 받은 원숭이의 생존 기간 24일보다 훨씬 길다. 연구팀은 논문을 작성한 시점에도 한 마리가 673일째 생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종 장기 이식은 부족한 장기 기증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되고 있다. 특히 돼지는 사람과 장기 크기가 비슷한 만큼, 유전자 교정 기술과의 융합으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한국 장기 이식 대기자 수는 4만446명으로, 평균 대기시간은 5년 4개월에 달한다. 이종이식 기술이 상용화되면 부족한 인간 장기 대신 동물 장기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번 실험에서 유전자 교정을 담당한 진 원닝(Wenning Qin) e제네시스 이사는 “인간이 아닌 영장류에서 유전자 조작 장기가 안전하고 생명을 유지한다는 원칙을 증명한 것”이라며 “앞으로 이종장기이식에 대한 임상 승인 여부를 고려하는 미 식품의약국(FDA)에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전자 교정을 많이 한 것에 비해 효과가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메건 사익스(Megan Sykes) 미국 컬럼비아대 면역학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유전자 변형을 훨씬 적게 했을 때보다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았다”며 “추가 유전자 변형으로 생산이 더 어려워지고 규모를 확대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6594-4
Nature,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3-031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