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를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 필스너 우르켈. 체코는 독일과 함께 맥주의 주 원료인 홉의 대표적인 생산지다./이종현 기자

애주가들에게 슬픈 소식이다. 몇 십 년 뒤에는 맥주의 대명사인 독일과 체코에서 만들어진 맥주를 맛보기 힘들어질 지도 모른다. 기후변화 탓이다.

프라하 체코생명과학대학의 마틴 모즈니 교수와 영국 로담스테드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10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기후변화의 여파로 유럽 지역의 홉 생산량이 2050년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동안 기후 변화가 홉 생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생산량을 제시한 연구 결과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홉은 유럽과 아시아의 온대 지역에서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솔방물 모양의 꽃이 맥주를 만드는데 쓰인다. 독일 바이에른 공국이 1516년에 반포한 맥주 순수령에 따르면, 맥주는 물과 보리, 홉으로만 만들어야 한다. 최근 기술이 발전하면서 홉을 쓰지 않고 맥주를 만들기도 하지만 이런 맥주는 ‘순수’한 맥주는 아닌 셈이다.

홉은 맥주의 핵심 재료다. 맥주의 쌉싸름한 맛을 좌우하는 것도 홉에 들어 있는 알파산의 영향이다. 문제는 홉이 재배 환경에 민감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홉은 보통 북위 35~55도에 속하는 지역에서 재배한다. 맥주의 대명사인 독일과 체코가 이 위치에 속한다.

◇홉 생산량도 줄고 맛도 없어진다

그런데 바로 이 지역이 기후변화에 직격탄을 맞았다. 국제 공동 연구진은 독일과 체코, 슬로베니아의 홉 재배 지역을 살폈다. 유럽 전체 홉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독일에서는 할러타우(Hallertau), 슈펠트(Spalt), 테트낭(Tettnang), 체코에서는 자텍(Zatec), 슬로베니아에서는 첼레(Celje) 지역을 비교했다.

우선 연구진은 1971~1994년의 홉 생산량과 1995~2018년의 홉 생산량을 비교했다. 그 결과 1995년 이후에 대부분 지역에서 홉 생산량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첼레 지역의 감소율이 19.4%로 가장 컸고, 슈펠트가 19.1%, 할러타우가 13.7%, 테트낭이 9.5%였다. 자텍 지역만이 큰 변화가 없었다.

홉의 맛을 좌우하는 알파산 함유량에도 변화가 있었다. 모든 지역에서 알파산 함유량이 0.46~1.86% 감소했다. 감소율이 가장 큰 지역은 첼레였고, 할러타우와 테트낭, 슈펠트, 자텍도 두 자릿수로 알파산 함유량이 줄었다.

연구진은 유럽의 대표적인 홉 생산지의 생산량 변화를 추적했다. 연구 대상은 독일에서는 할러타우(Hallertau), 슈펠트(Spalt), 테트낭(Tettnang), 체코에서는 자텍(Zatec), 슬로베니아에서는 첼레(Celje) 지역이다./마틴 모즈니

연구진은 “1995년부터 2018년까지 홉 생산량이 1971년부터 1994년의 평균 수확량을 넘긴 적은 슈펠트에서 한 번, 첼레에서 두 번이 전부였다”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오르면서 1970년과 비교해 2018년에 홉 재배 시즌의 시작이 13일 앞당겨진 영향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95년 이후 첼레에서는 홉 재배 시작일이 31일, 자텍에서는 22일, 할러타우와 슈펠트에서는 16일, 테트낭에서는 13일 빨라졌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2021년부터 2050년까지 기후 예측 모델을 적용해 이들 지역의 홉 생산량과 알파산 함유량이 어떻게 변화할 지를 예측했다. 그 결과 2018년까지의 데이터에 비해 홉 생산량은 4.1~18.4%가 감소하고, 알파산 함유량도 20~30.8%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생산량이 가장 두드러지게 감소하는 지역은 독일 남부(테트낭)과 슬로베니아 남부(첼레)로 예상됐다.

연구진은 다른 시뮬레이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독일, 체코, 슬로베니아를 제외한 다른 유럽 지역과 영국의 홉 생산량, 알파산 함유량도 역시나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유럽 전역에서 전통적인 홉의 생산량과 품질이 악화될 것이 예상된다”며 “홉의 재배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기후 변화는 보리·물에도 악영향

기후변화가 맥주 생산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연구는 이전에도 있었다. 앞선 연구들은 홉과 함께 ‘순수 맥주’의 3요소를 이루는 물과 보리에 집중했다. 중국 베이징대 연구진은 2018년 네이처 플랜트에 발표한 논문에서 2099년 세계 맥주 생산량이 2011년 대비 20%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대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전 세계 보리 생산량이 같은 기간 15% 감소하면서 맥주 생산도 줄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현재 보리 생산량의 17% 정도가 맥주를 만드는데 쓰인다. 보리 생산량이 줄고, 이로 인해 보리 가격이 올라가면 맥주 생산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동시에 맥주 가격도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내놨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국가는 호가든과 스텔라로 유명한 벨기에로 생산량이 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봤다. 독일(-31%)과 영국(-20%), 러시아(-18%)의 맥주 생산량 감소폭도 크다.

기후변화로 물이 귀해지는 것도 문제다. 글로벌 주류 회사인 디아지오는 지난 6월 전 세계에서 운영하는 양조장 가운데 43곳이 물 부족 지역에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디아지오가 매년 주류 생산에 사용하는 물은 175억리터(L)에 달한다. 한국 국민 전체가 이틀을 쓸 수 있는 양이다.

기후변화로 가뭄이 심해지고 양조장이 물을 구하기 힘들어지면 당연히 주류 제조도 어려워진다. 특히나 맥주는 90%가 수분이기 때문에 물 부족으로 인한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 디아지오가 생산하는 대표적인 맥주 브랜드는 기네스다. 디아지오의 친환경최고책임자인 마이클 알렉산더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가뭄을 이길 수 있는 양조장은 없다”며 “대비책은 세웠지만 갈수록 빨라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Nature Communications, DOI : https://doi.org/10.1038/s41467-023-414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