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가 개발한 양자점-유기발광다이오드(QD-OLED)로 만든 TV 제품. 양자점은 기존 기술보다 다양한 색을 쉽게 낼 수 있고 선명해 디스플레이 산업의 게임체인저로 불린다./연합뉴스

올해 노벨 화학상은 모운지 바웬디(Moungi Bawendi·62)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루이스 브루스(Louis E. Brus·80)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 알렉세이 에키모프(Alexey Ekimov·78) 전 나노크리스탈 테크놀로지 연구원 등 3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양자점(quantum dots)을 발견하고 상용화의 포문을 연 공로를 인정 받았다. 김성지 포스텍(포항공대) 교수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3명의 과학자들은 나노 크기의 반도체 결정을 합성하고 그 물성을 연구하는 업적을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양자점은 반도체를 나노 크기의 입자로 만들어 같은 재료로도 여러 색의 빛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기존 디스플레이로 사용되던 발광다이오드(LED)보다 다양한 색을 낼 수 있어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차세대 소재로 주목을 받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에서는 양자점 기술을 ‘게임체인저’로 보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퀀텀닷의 재료가 되는 무기물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쓰이는 유기물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수명도 길고 색의 선명도도 훨씬 우수한 편이다.

양자점 디스플레이인 QLED의 가장 큰 장점은 하나의 재료로도 크기를 달리해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 사용되던 기술은 원하는 색을 내는 재료를 찾아야 했다. 실제로 LED 기술은 파란색을 내는 재료를 발견하지 못해 한동안 상용화되지 못하다가 일본 과학자들이 1992년 고품질의 질화갈륨 박막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이후에야 산업계에서 쓰일 수 있게 됐다. 파란색 LED 재료를 발견한 과학자들은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에 비해 QLED는 기술 개발 속도가 매우 빠르다. 1980년대 양자점이 처음 발견된 이후 30여년 만인 2015년에 양자점 기술이 적용된 SUHD TV가 처음 출시됐고, 지금은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QLED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2016년 열린 ‘제9회 국제퀀텀닷컨퍼런스’에는 당시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의 장혁 부사장이 참석해 “지금까지 새로운 소재의 개발이 TV 화질의 혁신을 이끌어 왔다”며 “TV디스플레이 부문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색 표현이 가능한 퀀텀닷을 적용한 삼성 SUHD TV가 화질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바웬디 교수도 참석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QLED 기술은 계속 발전했고, 지금은 양자점을 이용한 디스플레이 기술은 국내 기업이 선도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전 세계 양자점(QD)-LCD TV 시장의 57.5%를 차지하고 있다. 17.5%를 점유한 2위 기업 역시 국내 기업인 LG전자다.

양자점 기술을 이용한 디스플레이 구현 방법을 설명하는 그림./삼성디스플레이

양자점이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입자의 에너지 밴드갭이 달라지면서 흡수한 빛과 방출하는 빛의 파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을 활용하면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도 응용이 가능하다.

김상욱 아주대 교수는 “최근에는 양자점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태양전지, 광감지기, 바이오이미징 기술에도 활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며 “양자점 연구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가 성공적인 상용화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자점은 빛을 방출하는 특성뿐 아니라 흡수하는 특성도 우수해 태양전지 분야에서 차세대 소재로 주목 받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양자점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반도체 입자를 사용하지 않는 만큼 고전적인 의미의 양자점이라고 볼 수 없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양자점 기술 중 하나로 인정 받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양자점 태양전지는 현재까지 개발된 태양전지 중 가장 높은 효율로 태양 빛을 전기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자점의 빛을 흡수하는 능력은 광감지기 기술에도 활용된다. 미세한 빛을 탐지해 이를 감지하는 방식으로 최근에는 자율주행 기술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김 교수는 “근적외선 파장의 빛을 탐지해 외부의 상황을 영상으로 만들고 이를 자율주행에 활용하는 방식”이라며 “최근 양자점 연구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의료 분야에서도 양자점의 활용도는 높은 편이다. 신체 영상이나 약물의 움직임을 추적하기 위해 사용되는 조영제는 유기물로 이뤄져 안정성이 낮은 편에 속한다.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은 디옥시리보핵산(DNA)이나 항체에 결합해 약물의 움직임을 추적해 효능과 부작용을 평가해야 하지만 신체에서 쉽게 분해된다는 문제를 양자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다. 양자점은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나노입자인 만큼 안정성이 뛰어난 편에 속한다. 다만 아직 인체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4일(현지 시각)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모운지 바웬디(Moungi Bawendi·62)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루이스 브루스(Louis E. Brus·80)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 알렉세이 에키모프(Alexey Ekimov·78) 전 나노크리스탈 테크놀로지 연구원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왼쪽부터) /각 대학

국내에서는 서울대와 바이오벤처인 바이오그래핀이 2020년 그래핀 양자점을 이용해 염증성 장질환을 치료하는 기술을 검증하기도 했다. 당시 연구진은 장염에 걸린 생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그래핀양자점을 치료제로 사용해 생존률을 5%에서 5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다양한 분야에서 양자점을 활용하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김 교수는 “LED처럼 양자점에서도 아직 파란색 빛을 내는 기술은 성숙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파란색을 내는 양자점을 강화하는 것이 현재 연구자들의 가장 큰 목표”라고 설명했다.

양자점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인 자율주행 센서에서는 빛이 약한 안개가 끼거나 야간에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다. 김 교수는 “투과성이 우수한 근적외선·단적외선 파장인 1000~1500㎚의 흡수율이 높은 양자점을 개발하려는 연구가 최근 가장 주목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방출된 광자의 색상은 양자점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더 큰 점은 빨간색(620~750nm)에 가까운 더 긴 파장을 방출하고 작은 점은 스펙트럼의 파란색 끝(440~470nm)에 더 가까운 짧은 파장을 방출한다. /나노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