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의대 쏠림 현상까지 겹치면서 이공계 분야의 인재 공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인구절벽으로 인한 연구인력 부족을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해외 인재 유치다. 하지만 비영어권 국가인 한국은 여러모로 해외 우수 인재를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 해외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한국 연구 환경과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문화적인 차이도 극복해야 한다. 조선비즈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바다를 건너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연구자들을 소개하는 새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들이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들어보면서 해외 인재 유치의 해결책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편집자 주]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글로벌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화장품 시장 규모는 3575억달러(약 482조3000억원)였다. 여기에 매년 6%가량 성장해 2027년에는 5083억달러(약 686조7133억원)까지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이 커지는 만큼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화장품 산업을 갖추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같은 대기업은 물론 화장품 생산 전문기업인 코스맥스, 콜마도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다. 과학계에서도 한국 화장품의 기술력은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올해로 한국생활 4년차를 맞은 마르타 곤살베스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첨단소재 기술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이 포르투갈을 떠나 한국을 찾은 것도 한국 화장품 산업, ‘K-뷰티’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포르투대에서 분자생물학·기초화학을 전공한 그는 리스본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다음 행선지로 한국을 택했다. 식물이 만드는 항생물질을 연구하던 중 화장품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화장품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나라를 찾던 중 한국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곤살베스 연구원은 “프랑스, 일본처럼 화장품 산업이 발전한 다른 나라도 있었지만 한국의 문화와 기술력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며 “연구 지원이 풍부하고 자율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2019년 한국에 들어온 그는 올해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도 여전히 한국에 남아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다음 목표는 한국 화장품 기업에 취업해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로 전 세계 화장품 시장을 누비는 것이다. 지난 9월 25일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포르투갈 출신의 마르타 곤살베스 성균관대 박사 후 연구원은 한국의 화장품 기술을 배우기 위해 2019년 한국을 찾았다. 그는 박사 과정을 마친 후에도 여전히 한국에 남아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다음 목표는 한국 화장품 기업에서 일하며 세계 무대를 누비는 것이다./수원=이병철 기자

-지금 하는 연구를 소개해 달라.

“화장품의 성능 시험에 사용할 수 있는 인공피부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화장품 연구에서 동물 실험을 금지하는 규제가 자리잡았다. 인공피부는 사람의 피부를 모사해 동물을 사용하지 않고도 화장품이 효과를 낼 수 있는지, 화장품이 얼마나 잘 발리는지 연구하는 대체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슷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기존 연구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기존 연구와 가장 큰 차이는 세포 없이 온전히 고분자 소재로만 이뤄진 인공피부라는 점이다. 세포를 3차원(3D)으로 배양해 만든 인공피부는 좋은 모델이지만 가격이 비싸고 시험 결과는 부정확한 면이 많다. 반면 고분자만을 사용한 인공피부는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피부의 주름이나 탄력 같은 물리적 성질을 표현할 수도 있다. 주름이나 모공을 가리는 화장품의 성능 시험에서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그래도 결국 사람 세포를 사용한 인공 피부를 개발할 필요도 있다.

“지금 연구의 최종 목표도 고분자와 세포를 모두 사용한 하이브리드 인공피부를 개발하는 것이다. 피부의 물리·생물학적인 특성을 모두 모사해 동물 실험을 화장품 산업에서 완전히 퇴출하는 기술이 될 거라고 기대한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를 소개해 달라.

“2022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다공성 고분자 직물에서 물방울이 어떻게 흡수되고 증발하는지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런 특성은 기능성 의류에서 중요하다. 몸에서 난 땀은 쉽게 흡수하고 배출해야 하는 반면 외부의 수분은 흡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런 특징은 사람의 피부도 마찬가지다. 체온 조절을 위해 땀을 내보내야 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은 막아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연구했나.

“핵심은 물방울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직물에 흡수되고 증발하는지 눈으로 관찰하고 증발 특성을 계산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연구를 위해 포항가속기연구소의 X선 분광기를 이용해 실제 물방울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이미지로 확인했다. 직물 표면에 있는 구멍에 물방울이 흡수됐고 동시에 증발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당시 연구를 통해 X선 분광기가 수분의 증발을 연구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을 증명했고 이를 화장품과 인공피부 연구에도 적용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르타 곤살베스 성균관대 박사 후 연구원이 연구하는 고분자 기반 인공 피부. 인간 세포를 배양해 만드는 일반적인 인공 피부와 비교해 저렴하게 화장품의 커버력을 시험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인간 세포와 고분자를 모두 활용한 하이브리드 인공 피부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수원=이병철 기자

-한국에서 화장품 기술을 연구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포르투갈에서 식물이 만드는 항생물질을 연구하던 중 화장품 분야에 적용해 볼 기회가 생겼다. 화장품 기술에 흥미를 느꼈고 유학을 결심했다. 당시는 ‘K-뷰티’가 유럽에 막 진출하던 시기다. 이전까지 유럽에는 마스크팩도 보기 힘들었는데 한국 화장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은 뛰어난 화장품 기술을 갖추고 있고 한국에서 공부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성균관대에서 공부하던 연구원과 인연이 있어 성균관대로 진학을 결정했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도 한국에 남기로 결심한 이유는.

“인공 피부에 대한 연구를 박사 과정 후반에 시작했다. 연구를 마무리짓고 싶었다. 최종적으로는 화장품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 동시에 내 개인적인 역량을 더 키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연구 환경도 한국에 남기로 결정한 큰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경험해 본 한국 화장품 연구는 어땠나.

“다양한 첨단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도움이 된다. 다양한 기업과 협업할 수 있는 환경도 한국이 가진 매력이다. 우리 연구실에서도 한국 화장품 기업과 공동 연구를 이미 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산업에 적용하는 데 매우 유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르타 곤살베스 성균관대 박사 후 연구원(왼쪽에서 세 번째)은 올해 초 박사 과정을 마친 이후에도 한국에 남아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마르타 곤살베스

-한국과 포르투갈의 연구 환경을 모두 경험했다. 어떤 차이가 있나.

“정말 큰 차이가 있다. 포르투갈은 과학에 대한 지원이 결코 많지 않다. 포르투갈 과학계의 큰 문제 중 하나다. 반면 한국은 풍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연구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물론 한국은 그만큼 많은 성과를 요구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포르투갈에서는 굳이 많은 논문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오랜시간 충분히 연구하고 하나의 연구가 완성되면 논문을 내는 문화다. 포르투갈에서 연구하는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이런 차이를 더 크게 느끼고 있다.”

곤살베스 연구원은 최근 세계화장품학회(IFSCC)가 수여하는 ‘메종 지 드 나바르 젊은 과학자상’을 받기도 했다. 2년에 한 번 씩 전 세계의 젊은 연구자 1명을 선정해 주는 상이다. 화장품을 주제로 연구 에세이를 작성하고 평가받는 방식으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에세이 주제는 무엇이었나.

“최근 화장품 산업계에 주목 받는 ‘클린 뷰티’를 주제로 했다. 클린 뷰티는 일반적으로는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화장품을 말한다. 아직 한국에서는 클린 뷰티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로는 이미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클린 뷰티의 역사와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를 분석하는 에세이를 제출했다.”

-클린 뷰티가 앞으로 화장품 산업의 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환경과 자연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은 비건 화장품이 화장품 시장을 강타했고, 이제는 소비자의 건강까지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클린 뷰티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어 각국의 규제 기관에서는 제대로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해 규제 기관이 발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올리브영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에 새롭게 마련된 '클린 뷰티 존'.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제품을 의미하는 클린 뷰티는 화장품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CJ올리브영

-포르투갈은 한국과 지구 정반대편에 있다. 타지 생활이 힘들지는 않은가.

“공부와 연구를 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일상 생활에서 언어 장벽을 넘는 게 힘들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외국인으로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박사 과정 중에는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에 잘 정착하고 있다.

“주변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연구실 동료들이 큰 힘이 됐고 지도교수인 원병묵 교수의 조언도 많이 들었다. 지금은 어느정도 한국말에도 익숙해져 한국에서 관광도 다니면서 즐겁게 지낸다. 제주도, 부산, 강원도로 여행도 다니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콘서트도 즐기고 있다. 지난달에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도 해 이제는 한국에 완전히 정착해 살 계획이다.”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한국 화장품 기업에 취직해 산업계에 진출하고 싶다. 안타깝게도 포르투갈은 연구 환경이 한국만큼 좋지 않다. 한국 화장품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무대에 진출하고 싶다.”

마르타 곤살베스 성균관대 박사 후 연구원은 올해로 한국 생활 4년차를 맞고 있다. 최근에는 연구뿐 아니라 한국 곳곳을 여행하고 문화를 즐기며 한국 정착을 준비하고 있다./마르타 곤살베스

마르타 곤살베스 성균관대 박사후연구원은

2016년 포르투갈 포르투대 분자생물학·기초화학·세포생물학 학사

2018년 포르투갈 리스본대 농업공학 석사

2020년 UKC2020 최우수 논문상

2023년 성균관대 나노과학기술학과 박사

2023년 IFSCC 메종 지 드 나바르 젊은 과학자상

2023년~현재 성균관대 박사후연구원

주요 연구성과

Scientific Reports(2022), DOI :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8-022-04877-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