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인공지능(AI) 자회사 딥마인드는 2020년 단백질 구조 예측 모델 '알파폴드'를 발표했다. 단백질의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수개월이 필요했던 것과 달리 염기서열 정보만 입력하면 순식간에 구조 예측 결과를 내놓는다. 압도적인 성능과 간편함으로 단백질 구조 연구 자체가 불필요해질 것이라는 시각도 나올 정도다.
생명과학 연구에 필요한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개발한 공로로 2017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요아힘 프랑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AI가 실험을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랑크 교수는 AI시대에도 여전히 단백질 구조 연구를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과학은 결국 실험으로 증명해야 하는 학문"이라며 "시뮬레이션만으로는 과학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완전한 오해"라고 강조했다.
프랑크 교수는 18일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열린 '초저온 전자현미경동 개소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단백질 구조 예측 AI가 최근 주목 받고 있으나 여전히 기초과학, 의약품 개발을 위해서는 직접 실험으로 증명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프랑크 교수는 자크 뒤보쉐 스위스 로잔대 교수, 리처드 헨더스 영국 분자생물학MRC실험실 프로그램리더와 함께 2017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이들의 연구 덕에 단백질 같은 생체 분자를 급속 냉동해 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프랑크 교수는 단백질 구조 예측 모델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초저온 전자현미경 기술이 발달하면서 X선을 이용한 단백질 구조 연구가 감소한 것과 달리 AI 모델을 발전시키려면 초저온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연구가 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알파폴드가 혁신적인 도구는 맞지만 여전히 찾지 못한 수많은 단백질 구조가 남아 있다"며 "알파폴드로 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결국 실험적인 방법으로 찾아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AI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프랑크 교수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그가 도전하고 있는 연구 주제는 '시간 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으로 멈춰진 순간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분자 구조를 볼 수 있는 기술이다. 이미 논문으로 관련 기술을 발표했고 연구자를 위한 가이드북도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생체 분자는 끊임 없이 모양을 바꾸면서 기능을 활성화하는데 이를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단백질 의약품의 효능이 분자 구조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앞으로 제약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기술로 주목받는다.
프랑크 교수는 "기존 기술은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고 충분히 성숙했다"며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로 확장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으나 그만큼 흥미와 보람도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프랑크 교수는 한국에서도 머지 않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노벨상은 이미 한참 전에 이뤄진 연구를 바탕으로 수여하는 만큼 1980년대에 산업화가 이뤄진 한국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은 게) 당연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권위가 아닌 연구만을 믿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벨상을 받기 전부터 이미 현미경 기술의 석학으로 평가 받던 그도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구 아이디어를 수정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프랑크 교수는 "각자 아이디어를 갖고 다른 사람과 끊임 없이 논의하고 끊임 없이 연구 계획을 보완했다"며 "실제로 내가 맞은 것보다 틀리게 생각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