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남성은 사냥하고, 여성은 과일과 버섯을 딴다. 원시사회를 그린 영화나 책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성(性) 분업 가설이 잘못된 신화로 밝혀졌다. 미국 워싱턴대 인류학과의 카라 월-셰플러(Cara Wall-Scheffler) 교수 연구진은 지난 7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전 세계 수렵채집사회 10곳 중 8곳에서 여성도 사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조사한 63개 사회 중 50개 사회에서 여성이 사냥했다는 증거를 발견했으며, 그중 87%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사냥이 식량을 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문화권에서는 여성이 100% 사냥에 참여했다.
이상희(李相僖·57)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는 최근 소셜미디어에 “워싱턴대의 논문은 2019년 제가 대학원생과 같이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나온 책에 실은 논문을 읽은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라고 글을 올렸다.
이 교수는 앞서 국내 언론에도 성 분업 가설이 틀렸다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 그때 인터넷에 ‘남자는 사냥하고 여자는 채집했다는 기본 상식도 모르는 X이 무슨 학자’라고 비난하는 댓글이 올랐다. 이 교수는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하도 화가 나서 열심히 그 주제로 글을 썼는데 이제 결실을 보게 된 것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ㅎㅎ#복수는 길게’라고 올렸다. 과학적 증거로 확실하게 악성 댓글에 복수했다는 말이다.
이상희 교수는 ‘한국인 1호 고인류학 박사’로 잘 알려진 학자이다. 그동안 고인류학 연구 논문 50여편을 발표하면서 저술을 통해서도 대중에게 고인류학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지난 2015년 국내에서 발간한 ‘인류의 기원’은 8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올해는 최신 고인류학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인류의 진화’를 출간했다.
◇”正史와 野史 구분이 없어지는 시대”
–최근 여성 사냥꾼을 밝힌 논문처럼 기존의 관념을 이렇게 뒤집는 결과들이 계속 나오는 것 같다.
“정설이 역동적으로 항상 바뀌고 있다. 지난 10년은 지적 완고함이 깨지는 시기였다. 예전 같으면 미친 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상한 소리로 치부됐을 주장이 지금은 한 번 더 생각을 해보는 분위기이다.”
–6월에는 머리가 침팬지 크기지만 손과 발은 오늘날 사람과 흡사한 미스터리 고인류인 호모 날레디(Homo naledi)가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나 사촌 격인 네안데르탈인보다 최소 16만 년 전에 무덤을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매장은 이승에 대한 개념을 가져야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두뇌 용적이 1400cc인 네안데르탈인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고차원적인 일을 400~600cc에 불과한 고인류가 했다니 충격이었다. 물론 그 주장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그렇지만 많은 학자가 예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가설들을 더 많이 연구하는 변화를 반영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갑자기 전에 없던 발굴 결과물들이 엄청 쏟아진 게 아니라는 말인가.
“발굴은 전처럼 꾸준히 하고 있고, 결과를 새롭게 보는 시각들이 좀 더 자유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예전에 묻지 않던 질문을 던지고 발굴을 하는 흐름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의 구분이 사라진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뇌 키운 건 육류 아니라 곤충일 수도”
–그렇다면 고인류학에서 최근 가장 급격하게 생각이 바뀐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두뇌 크기이다. 정설은 이렇다. ‘사람만이 큰 두뇌를 가지고 있다. 사람만이 동굴벽화를 그리고 추상적 개념을 안다. 따라서 큰 두뇌가 있어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인간이 포함된 호모 속(屬)이 나오기 전에 출현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도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교과서에서는 ‘도구의 인간’이란 뜻의 호모 하빌리스부터 도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학자 중에는 이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진정한 호모 하빌리스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도구를 만드는 데 반드시 큰 머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도 호모 속보다 작기는 하지만 두뇌 용량이 계속 커졌다. 절대적 크기보다 변화가 중요한 셈이다.”
–200만년 전 첫 직립보행을 한 호모 에렉투스가 석기로 동물을 사냥하며 육식을 시작하고, 이로 인해 두뇌가 커졌다는 정설도 흔들린다고 들었다.
“호모 에렉투스가 뛰어난 사냥꾼이라는 사실은 동물의 뼈 화석에 V자로 난 흔적 위에 U자 흔적이 난 데서 알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가 뾰족한 석기로 고기와 내장을 얻은 후에 다른 짐승이 와서 이빨로 찌꺼기를 먹은 흔적이다.”
–사냥꾼 호모 에렉투스를 입증하는 증거가 있다는 말 아닌가.
“호모 에렉투스 시대는 고인류의 두뇌 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때였다. 두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고기에서 얻었다면 동물 뼈 화석의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호모 에렉투스 이후로 그 수는 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호모 에렉투스는 어떻게 두뇌가 커질 수 있었을까.
“당시 동물 뼈 화석 중에는 U자 흔적 위에 V자 흔적이 난 것도 다수이다. 호모 에렉투스가 다른 짐승이 남긴 찌꺼기도 먹었다는 말이다. 고인류가 곤충을 먹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오늘날 곤충을 식량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듯, 고인류도 곤충에서 두뇌를 키울 열량을 얻었다는 주장이다.”
◇”인류는 일방통행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교과서에서는 고인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시작해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을 거쳐 마지막으로 가장 뛰어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배웠다. 지금은 이런 단선적 진화가 아니라고 한다.
“20세기 중반까지 그랬다. 후반에는 나뭇가지처럼 뻗어가는 진화도를 그렸다. 공통조상에서 두 개 이상의 자손으로 진화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다시 새로운 진화도가 나왔다. 가지가 얽히듯,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도 유전자 교환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교수가 호모 사피엔스와 사촌격인 동시대의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이 서로 피를 나눴음을 증명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 의학상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페보 교수가 훌륭한 것은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부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1997년부터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분석했다. 처음엔 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 몇천개를 해독했다가 1999년에는 몇만개를 봤다. 그래도 호모 사피엔스와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0년에 30억개 염기 전체를 해독했더니 그중 4%까지 오늘날 인류에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전 10여년 연구를 부정하고 고인류들이 서로 피를 나눴다고 생각을 바꿨다.”
–단선적이고 일방통행식인 인류 진화는 없었다는 말인가.
“이번 책에도 썼듯, 인류의 진화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앞으로 행진하는 모습도, 곁가지와 본가지로 갈라져서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되는 모습도 아니다.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갈라지는 강줄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는 고인류 연구의 새로운 寶庫”
–페보 교수가 고인류 연구로 노벨 의학상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를 연구하면 질병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보 교수는 지난 2021년 네안데르탈인에서 물려받은 유전자 3개가 코로나 중증 위험을 22% 낮춘다고 밝혔다. 많은 세금을 들여서 하는 연구가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려면 그런 정당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해독한 고인류 유전정보는 모두 유럽 중심이다.
“지문(指紋)이 법의학에서 중요한데 대조할 데이터베이스가 순전히 유럽인만 있다면 말이 되겠는가. 고인류 화석도 그런 셈이다. 아시아 고인류에 대한 정보는 매우 부족하다.”
–최근 아시아 고인류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고 들었다.
“2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출현하고 70만년 전부터 아시아로 퍼졌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아시아에서 나온 화석의 연대가 그랬다. 그런데 최근 210만년 전 고인류 화석이 중국에서 나왔다.”
–아프리카와 중국 양쪽에서 인류가 기원했다는 말인가.
“호모 속이 아프리카에서 나와 빠르게 아시아로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중국에 가서 따로 호모 속으로 진화했을 수도 있다. 중국의 고인류 연구가 발전하고 국제 학계와 활발히 교류하면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밝혀질 수 있다.”
–동남아시아도 인류 진화에서 중요한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류가 이주할 때는 자원을 얻기 쉬운 해안선을 따라갔을 것이다. 그 점에서 동북아시아인의 기원도 동남아시아로 볼 수 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과거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과 같은 인종주의이다.”
–호빗이 살았던 곳도 동남아시아라고 들었다.
“2003년 인도네시아에서 나온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1m 키에 두뇌 용적도 380cc에 불과해 영화에 나온 호빗족(族)이라고 불렸다. 지난 2021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동굴에서 현생 인류가 4만5000여년 전에 그린 멧돼지 그림이 발견됐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 벽화이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두뇌 용량이 침팬지보다 적다. 그래도 침팬지 크기 두뇌를 가진 호모 날레디가 인류 최초로 매장을 했듯,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처음 동물 벽화를 그린 고인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본 많은 것들이 특별하지 않다고 봐야 하는가.
“그렇다. 인간이 다른 영장류보다 더 특별한 것도 아니다. 예전엔 영장류 공통조상에서 고릴라가 먼저 갈라지고 다음에 침팬지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인간이 진화했다고 봤다. 지금은 인간이 먼저 갈라지고, 그 뒤 침팬지에서 또 보노보가 나왔다고 본다. 침팬지로선 우리가 더 원시적인 영장류인 셈이다.”
◇”유골 아닌 흙에서 인류 진화 단서 나올지도”
–고인류 연구는 페보 박사의 유전자 해독처럼 최신 과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최신 성과는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고인류의 뼈 화석만 찾았다. 그것도 두개골에만 관심을 뒀다. 동물 화석만 나오면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최근 뼈 한 점 없이 동굴의 흙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DNA를 추출했다. 고인류 배설물에 담긴 DNA를 찾아낸 것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연구는 무엇인가.
“북한에서 30만년 전 고인류 화석을 찾았다고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학계 인정을 받을 만한 고인류 화석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동굴 유적은 많으니, 흙에서 고인류의 유전자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국내 학계와 공동 연구나 집필을 해볼 생각도 있다.”
–한민족의 기원이 북방계이다 남방계다 논란이 많다.
“그건 신석기시대 이후 농경을 하면서 한 곳에 정착한 뒤의 고대사이다. 반면 구석기시대 고인류는 정착해 살지 않았으므로 한민족과 관련이 없다. 사실 1000년을 넘으면 조상의 의미는 없다. 부모의 부모를 다 따지면 20대째 조상은 104만 명이 훌쩍 넘는다. 지금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의 조상은 5000년 전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이다.”
–한민족의 실체가 없다는 말인가.
“한민족은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인 개념이다. 누가 한민족에 속하는지 조상과 자손의 관계에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생물학적 조상 중 특정한 사람을 조상으로 인정하고 다른 이는 제외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결정된다.”
–이 교수의 책 덕분에 국내에서도 고인류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많다. 고인류학자가 되려면 어떤 공부가 필요할까.
“재미없는 답이겠지만 닥치는 대로 많이 읽고 쓰는 공부를 해야 한다. 고인류는 자료가 많지 않아 상상력이 중요하다. 수학이나 유전학만 잘 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자체가 다방면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대해 궁금하다면 정말 많이 읽어야 한다.
☞이상희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 인류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소고켄큐다이가쿠인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내고 2001년 UC리버사이드 교수로 부임했다. 지난 2004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3만년 전 인류 사회에서 노년층이 급증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문화가 태동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주역은 할아버지, 할머니였다는 증거를 찾은 것이다. 이 교수는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장, 인문사회과학대 부학장을 거쳐 현재 교수의회 의장직을 맡아 대학 교육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