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양자컴퓨터 기술을 보유한 기업인 구글과 IBM이 일본과 손을 잡았다. 이들 기업은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를 미국 시카고대와 일본 도쿄대에 지원해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다른 유수의 대학을 제치고 도쿄대가 구글과 IBM의 양자컴퓨팅 연구 중심지가 된 비결은 뭘까.
다케다 슌타로 일본 도쿄대 응용물리학과 교수는 25일 강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분원에서 열린 제18회 아슬라 심포지엄에 참석해 “구글과 IBM에 이미 양자컴퓨터 부품을 납품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일본 산업 생태계 덕분”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국제 협력을 강화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양자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일본은 탄탄한 기초과학을 기반으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초기만 해도 국제 협력보다는 내부 생태계를 다지는 데 집중했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기초과학 연구에 나서는 일본만의 문화도 양자컴퓨터 분야 기술 개발에 도움이 됐다는 게 다케다 교수의 설명이다.
다케다 교수는 “일본은 양자역학 연구에서 전통적인 강자 중 하나”라며 “다만 경제가 점차 안좋아지면서 기업과 정부의 투자가 끊겼고 양자컴퓨터 기술도 침체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일본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해외 연구진과의 협업이었다. 국제협력을 강조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대학과 기업의 협력을 강화했다.
다케다 교수는 “도쿄대를 중심으로 대학과 기업이 힘을 모아 양자컴퓨터 산업 생태계를 만들었다”며 “다양한 부품 산업이 발전하면서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꿈꾸는 기업도 일본을 주목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일본은 최근 양자컴퓨터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다시 시작했다. 초전도 양자컴퓨터에 집중하는 한국과 달리 실리콘, 광 기반 양자컴퓨터 기술도 함께 육성하고 있다. 세 가지 기술(플랫폼) 모두 각기 장단점이 있는 만큼 분야별 전문가 그룹을 중심으로 골고루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다케다 교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새로운 방식의 광 기반 양자컴퓨터 작동 방식을 소개했다. 하나의 광자를 만들고 양자 상태를 측정하는 기존의 방식 대신 연속적으로 방출하는 빛을 이용하는 것이다. 다케다 교수 연구팀은 루프형 광 기반 양자컴퓨터라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그는 “기존 기술보다 성능을 높이고 소형화도 쉬울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컴퓨팅 규모를 키우는 데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케다 교수는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는 “이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과 협력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장치를 만드는 연구는 일본의 연구소, 기업과 하더라도 이론 분야에 강점을 가진 한국과 협력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본 대학이 기업과 손을 잡은 이유가 뛰어난 공학자가 많기 때문이었다면, 이론물리 분야는 한국의 연구기관과 협력으로 채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케다 교수는 “일본도 양자컴퓨터 분야의 젊은 과학자들이 미국 기업으로 진출하면서 인력 유출 문제가 커지고 있다”며 “인력 유출을 막으려면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이 적극적으로 협력해 산업 생태계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