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수조에서 꺼내 살아있는 우럭(조피볼락) 모습. /유튜브 캡쳐

광어와 함께 양대산맥 자리를 지키는 ‘국민 횟감’ 우럭(조피볼락)에 약물 내성 세균을 없애는 성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그리드 뷰로우 독일 레겐스부르크대병원 임상미생물학 및 위생연구소 박사후연구원 연구진은 25일 한국의 대표 어종인 우럭 몸속의 ‘BPI’라는 단백질을 이용해 유전질환인 낭포성 섬유증을 더 쉽게 고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낭포성 섬유증은 몸속에서 점액을 만드는 세포에 이상이 생겨 평소보다 두껍고 끈적한 점액이 나오는 병이다. 폐와 위, 대·소장이 끈끈한 점액에 막히면서 소화기와 호흡기에 이상이 생긴다. 증상이 심해지면 패혈증과 장기 부전까지 발생해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현재 낭포성 섬유증 치료에 가장 방해가 되는 건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이라는 몸속 세균이다. 녹농균은 각종 병에 시달리느라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 몸에서 자라는데 다양한 항생물질에 저항하며 약물에 대한 내성을 만들어낸다. 환자 몸에서 녹농균을 없애거나 그 힘을 약하게 하는 건 낭포성 섬유증 치료 과정에서 핵심 단계다.

연구진에 따르면 BPI라는 단백질은 녹농균을 포함해 약물 내성을 만드는 각종 세균을 퇴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낭포성 섬유증 환자 몸에서도 BPI가 생성되지만 몸의 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BPI가 제 역할을 못하는 탓에 녹농균을 이기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연구진은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동식물이 몸속에서 스스로 BPI를 만든다는 점에 포착하고 사람 몸에 넣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내성균을 없애는 BPI를 추려냈다. 그 결과 생쥐와 일본산 생굴, 한국의 우럭(Korean Rockfish)이 최종 후보로 뽑혔다. 우럭은 물이 깊지 않은 육지 연안의 암초 지대에 주로 서식하며 한국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이다.


한국산 우럭에서 뽑은 BPI가 녹농균을 잡아내는 모습을 현미경으로 촬영한 자료. 녹색 점이 녹농균인데 생쥐 BPI, 일본산 생굴 BPI 등 대조군(Control)은 115분동안 녹농균을 거의 잡아내지 못한 반면 한국산 우럭 BPI는 105분 만에 녹농균이 거의 잡힌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회색 사진에서는 짚신벌레처럼 생긴 녹농균이 축구공 모양의 한국산 우럭 BPI 공격을 받아 색이 옅어지고 크기가 작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대조군 쪽 녹농균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연구진은 낭포성 섬유증 환자 몸에서 빼낸 녹농균과 생쥐, 일본산 생굴, 한국산 우럭에서 추출한 BPI를 한 곳에 두고 각 BPI가 얼마나 빨리, 많은 녹농균을 없애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한국산 우럭에서 뽑은 BPI가 1~3시간 만에 거의 모든 녹농균을 퇴치했다.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에게서 뽑은 BPI와 수준이 비슷했다. 같은 시간 동안 생쥐 BPI는 녹농균을 절반 정도 없앴고 일본산 생굴 BPI는 녹농균을 거의 잡아내지 못했다.

뷰로우 연구원은 “우럭에서 뽑은 BPI가 이 정도 능력을 지닌 건 아마 이 우럭이 사는 바다에 녹농균이 많이 살고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한국산 우럭과 함께 살고 있는 생물들은 BPI를 비롯해 모두 나름의 방어 수단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에게서 추출한 단백질을 이용해 낭포성 섬유증을 전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한국산 우럭의 BPI를 이용해 약을 만들어 인간에게 쓰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데니스 누르자디 독일 슐렉스비히홀슈타인 의대 교수는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은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우럭에서 뽑은 BPI에 실제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지난 18일 소개됐다.

참고자료

eLife, DOI: https://doi.org/10.7554/eLife.86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