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외계 행성이 같은 궤도로 별(항성)을 돌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태양계에서 소행성들이 같은 궤도로 목성을 공전하고 있지만, 행성이 궤도를 공유하는 모습은 처음 발견됐다. 학계에서는 이번 관측이 사실로 확증되면 행성 형성 이론을 새로 써야 한다고 평가했다.
유럽남방천문대(ESO)는 20일 “지구에서 370광년(光年,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거리에 있는 별인 PDS 70을 같은 궤도에서 공전하고 있는 원시행성(原始行星)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 관측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에 실렸다.
◇트로이 목마처럼 다른 행성 궤도에 들어가
전파망원경 사진을 보면 가운데 PDS 70 별 주위로 원반이 보인다. 항성 주변에 우주 먼지와 기체, 소행성 등이 밀집된 형태이다. 이들이 뭉치면 행성이 된다. 그래서 원반 안쪽에 행성들이 있는 곳에 공간이 생긴 것이다.
별 바로 아래에 얼룩 같은 점이 보인다. 행성으로 진화하고 있는 원시행성인 PDS 70b이다. 그 오른쪽 옆에도 비슷한 얼룩이 보인다. 연구진은 행성을 이루는 물질들이 모여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질량은 지구를 도는 달의 2배에 이른다. 연구진은 두 천체가 같은 궤도로 별을 도는 ‘트로이 행성’이라고 밝혔다. 별 오른쪽 3시 방향에 있는 얼룩은 또 다른 행성인 PDS 70c이다.
태양계에서는 목성을 공전하는 소행성들이 궤도를 공유하고 있다. 바로 트로이 소행성군(Trojan asteroid group)이다. 목마(木馬)에 숨어 트로이 성에 침투한 그리스군처럼 같은 궤도를 공유하는 소행성들을 말한다. 트로이 소행성들은 태양과 목성의 중력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라그랑주 지점에서 별을 돌고 있다. 목성의 궤도를 공유하는 소행성은 약 1만 개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 숫자는 수백만 개에 달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태양계 밖에는 트로이 소행성처럼 별 주위를 같은 궤도로 도는 트로이 행성이 있으리라 예측했지만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공동 저자인 마드리드 천체생물학연구소의 호르헤 릴로-박스(Jorge Lillo-Box) 박사는 “트로이 행성은 신화 속 동물인 유니콘처럼 이론으로 존재하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전설의 유니콘을 실제로 찾은 셈이다. 논문 제1 저자인 스페인 마드리드 천체생물학연구소의 올가 발살로브레-루자(Olga Balsalobre-Ruza) 연구원은 “과학자들은 20년 전부터 질량이 비슷한 두 행성이 공전 궤도를 공유하는 트로이 행성이 될 수 있다고 이론적으로 예측했다”며 “이번에 처음으로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해발 고도 5000m에 있는 전파망원경인 ALMA(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집합체)로 PDS 70 별을 관측했다. 별을 공전하는 행성은 별과 달리 빛이 나오지 않아 직접 관측할 수는 없다. 연구진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행성을 추적했다.
먼저 행성 대신 별을 관측하는 것이다. 별 앞으로 행성이 지나가면 빛이 일부 사라지는 식(蝕) 현상이 발생한다. 별빛에 미세한 변화가 주기적으로 생기면 공전하는 행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중력 변화를 포착하는 방법이다. 별은 주변 행성의 중력에 영향을 받아 조금씩 움직인다. 만약 별이 지구 쪽으로 움직이면 파장이 짧은 파란색을 더 띠고, 멀어지면 파장이 긴 붉은색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외계 행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태양계 행성 만들어진 과정을 새로 쓸 수도
미국 카네기 과학연구소의 매튜 클레멘트(Matthew Clement) 박사는 이날 사이언스지에 “매우 멋진 발견”이라며 “추가 관측으로 확증되면 태양계의 진화 모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의 데이비드 키핑(David Kipping ) 교수도 “같은 궤도로 도는 행성들을 발견하는 것은 행성 형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과학자들은 태양계 형성 초기에 목성이 태양에 가까이 접근했다가 다시 멀리 이동하면서 태양계 외곽 해왕성 너머의 카이퍼대에 있는 소행성들을 자신의 궤도에 붙잡았다고 본다. 소행성은 태양 주변을 긴 타원 궤도를 따라 도는 작은 천체로, 45억년 전 태양계가 형성될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트로이 소행성이 목성의 라그랑주 지점에서 바로 형성됐다면, 목성과 같은 물질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번에 발견한 트로이 행성은 별을 둘러싼 먼지구름 원반이 비어있는 공간에 있다. 주변의 먼지구름이 뭉쳐지면서 형성됐다는 것이다. 목성의 트로이 소행성이 같은 방식으로 형성됐다면 목성과 구성물질이 비슷할 것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지난 2021년 목성으로 무인 탐사선 루시(Lucy)를 발사했다. 루시는 2027년부터 목성의 트로이 소행성 6개를 탐사해 이들이 카이퍼 대의 소행성과 얼마나 비슷한지 확인할 예정이다. 만약 트로이 소행성 중 일부가 목성과 유사하다면 이번 트로이 행성 발견도 더 힘을 얻을 수 있다.
참고자료
Astronomy & Astrophysics, DOI: https://doi.org/10.1051/0004-6361/202346493
European Southern Observatory(ESO), https://www.eso.org/public/news/eso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