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2500만년 전 오소리 크기의 포유류가 덩치가 3배나 큰 초식 공룡을 사냥하는 모습의 상상도./Michael Skrepnick

공룡과 포유류가 엉킨 채 화산재에 갇혀 화석이 됐다. 당연히 덩치 큰 공룡이 작은 포유류를 사냥하던 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모습은 정반대였다. 포유류가 자기보다 3배나 큰 공룡을 사냥하다가 화산재에 갇힌 것이다.

캐나다 자연사박물관의 조던 말론(Jordan Mallon) 박사와 중국 하이난 직업과학기술대의 강 한(Gang Han) 교수 연구진은 19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1억2500만년 전 백악기에 살았던 육식성 포유류인 레페노마무스 로부스투스(Repenomamus robustus)가 초식 공룡인 프시타코사우루스 루지아투네시스(Psittacosaurus lujiatunensis)를 공격하다가 화산재에 갇힌 채 화석이 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체 청소 아니라 살아있는 공룡 사냥

공룡과 포유류가 뒤엉킨 화석은 2012년 중국 랴오닝성의 한 농부가 루자툰 화석층에서 발견했다. 이곳은 화산재에 묻힌 수천 마리 동물의 화석이 나와 ‘공룡 폼페이’라고 불린다. 당시 크고 작은 공룡들이 우거진 숲과 호수, 개울을 돌아다닌 것으로 추정된다.

두 발로 다닌 초식공룡인 프시타코사우루스는 트리케라톱스(Triceratops)의 조상이다. 레페노마무스는 오소리 크기의 육식 포유류이다. 과학자들은 화석을 통해 레페노마무스가 어린 공룡을 잡아먹고 공룡의 사체를 청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포유류가 다 자란 공룡을 공격하는 모습은 이번에 처음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당시 초식 공룡의 몸무게는 약 10.6㎏이고 포유류는 그 3분의 1 정도인 3.4㎏으로 추정했다. 포유류가 덩치가 3배나 큰 공룡을 사냥했다는 것이다.

초식공룡과 오소리 크기의 포유류가 엉켜 있는 화석. 부분 확대 사진을 보면 포유류가 발로 공룡의 머리를 제압하면서 갈비뼈를 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막대 길이는 10 cm이다./Gang Han
1억2500만년 전 화석을 토대로 오소리만 한 크기의 포유류 레페노마무스(Repenomamus)가 초식 공룡인 프시타코사우루스(Psittacosaurus)를 사냥하는 모습을 복원했다. 화석은 포유류가 앞발로 공룡의 입을 제압하고 입으로 갈비뼈 부분을 물고 있는 모습이었다./Michael Skrepnick

연구진은 두 동물의 엉킨 뼈를 자세히 분석해 생전 모습을 확인했다. 포유류는 앞발로 공룡의 입을 잡고 입으로 갈비뼈를 물고 있었다. 뒷다리는 공룡과 얽혀 있었다. 말론 박사는 포유류가 공룡 위에서 취한 자세는 공격자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공룡의 뼈에 이빨 자국이 없다는 것도 이 포유류가 공룡의 사체를 뒤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말론 박사는 “지금까지 덩치가 큰 공룡이 작은 포유류를 잡아먹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며 “놀랍게도 이번 화석은 때때로 작은 포유류가 큰 공룡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미국 매칼레스터대의 레이먼드 로저스(Raymond Rogers)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지에 “고생물학자들이 꿈꾸는 표본으로 고대의 행동과 생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과 같다”며 “진품이라면 100만분의 1 확률로 발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말론 교수의 해석에 대해 회의적인 연구자도 있다. 캐나다 맥길대의 한스 라르손(Hans Larsson) 교수는 영국 뉴사이언티스지에 “공룡의 무는 힘이 강했기 때문에 입안에 포유류의 발이 들어갔다면 바로 잘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포유류의 발이 멀쩡하다는 것은 화산재에 묻힐 당시 이미 둘 다 죽었거나 묻히는 동안 넘어지면서 그 자세가 됐다는 것이다.

사이언스지는 미국 애리조나대의 아드베이트 주카르(Advait Jukar) 교수를 포함해 여러 과학자는 화석 발굴과 연구실 이전 사이에 공백이 있다며 진품이 아닐 가능성도 제기했다고 전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지역에서 화석 위조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이빨은 공룡의 갈비뼈에 고정돼 있었고 퇴적물이 흐트러지거나 다시 채워진 흔적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한 교수는 화석을 둘러싼 퇴적물이 화석층에서 나온 퇴적물과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중생대 쥐라기에 익룡이 오징어를 사냥하는 모습의 상상도(위). 오징어 화석의 머리 부분에 길이 19㎜ 익룡 이빨이 박혀 있어 익룡이 오징어를 사냥했음을 알 수 있었다(아래)./독일 보훔대

◇공룡시대 개미 사냥 모습도 화석에 남아

공룡시대 동물의 사냥 순간이 담긴 화석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2020년 독일 보훔대 연구진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화석에서 하늘을 날았던 파충류 익룡(翼龍)이 오징어를 사냥하던 순간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2012년 독일에서 1억5000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에 살았던 오징어 화석이 발굴됐다. 28㎝ 길이의 오징어는 다리가 짧고 몸통에 딱딱한 뼈 구조가 있어 갑오징어의 조상으로 추정됐다. 놀랍게도 오징어의 몸에 19㎜ 길이의 익룡 이빨이 박혀 있었다.

연구진은 익룡이 하늘을 날다가 물로 돌진해 먹잇감을 무는 데 성공했지만, 필사적인 몸부림에 이빨이 부러지면서 허탕을 쳤다고 추정했다. 실제로 X선으로 조사해보니 이빨이 오징어의 외투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생전 몸통에 박혔음을 알 수 있었다. 익룡이 죽은 오징어를 물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무리 서툰 사냥꾼도 미동도 하지 않는 먹이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배제됐다.

미국 뉴저지 공대 연구진은 2020년 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미얀마에서 발굴한 호박(琥珀)에서 9900만년 전 지옥개미가 어린 바퀴벌레를 문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호박은 나무 수지가 굳어 단단해진 보석이다. 개미가 막 바퀴벌레를 무는 순간 나무에서 송진이 떨어져 둘 다 갇힌 채 화석이 된 것이다.

호박에 갇힌 9900만년 전 지옥개미와 복원도. 바퀴벌레 애벌레를 물고 있다. 아래에서 본 모습을 복원한 그림(오른쪽 아래)을 보면 지옥개미가 턱(갈색)을 위로 올려 머리의 뿔(파란색)과 같이 먹잇감을 붙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미국 뉴저지 공대

곤충의 사냥 모습이 담긴 호박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멸종한 지옥개미가 사냥하는 모습이 담긴 호박은 처음 발견됐다. 지옥개미는 개밋과(科) 아래 ‘하이도미르메신(Haidomyrmecine)’ 아과(亞科)에 속한다. 공룡이 돌아다닌 중생대 백악기(1억4600만년에서 6600만년 전)에 살았다. 아과의 이름은 죽음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인 하데스를 뜻하는 그리스어 ‘하이도스’와 개미를 뜻하는 ‘미르미카’를 합쳐 만들었다.

이름대로 호박 속의 지옥개미는 마치 죽음의 신이 드는 커다란 낫과 같은 턱으로 바퀴벌레를 물고 있었다. 오늘날 개미와 차이가 있다면 턱이 좌우로 움직이지 않고 아래위로 물린다는 점이다. 호박 속 개미의 턱은 이마에 나 있는 뿔과 함께 바퀴벌레를 붙잡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100년 전에 지옥개미 화석을 처음 발견했다. 이후 지금까지 수직으로 움직이는 턱과 뿔을 가진 지옥개미 16종이 확인됐다. 과학자들은 턱의 모양을 볼 때 뿔과 함께 먹잇감을 붙잡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호박 화석이 이 가설을 처음으로 입증한 것이다.

참고자료

Scientific Reports(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3-37545-8

Scientific Reports(2020),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0-57731-2 .

Current Biology(2020), DOI: https://doi.org/10.1016/j.cub.2020.06.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