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의 침팬지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어른 침팬지가 어린 침팬지를 공격하려는 순간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물러난다. 자칫하면 싸움으로 번질 수 있었지만, 어린 침팬지가 싸우기 싫다는 의사를 전달하며 순식간에 긴장이 풀어진 덕이다. 어린 침팬지는 싸우기 싫다는 의사를 이빨이 보이게 웃는 얼굴과 '끽끽' 거리는 소리, 몸을 두드리는 손짓을 모두 동원해 표현했다.
침팬지의 의사소통 방식이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복잡하고 체계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잔나 클레이 영국 더럼대 심리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동물 행동학'에 "침팬지의 의사소통 방식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표현을 섞어 쓰는 방식으로 발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유인원이 사람처럼 사회생활을 하며 소통 방식을 발달시키는 만큼 사람의 의사소통 방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 전망이다.
◇나이 들수록 복잡한 의사 전달 하는 침팬지
연구진은 잠비아 북부에 있는 침푼시 야생동물 보호소에서 침팬지들의 소통 방식을 관찰했다. 관찰 대상 침팬지의 나이는 11세 이하로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총 28마리였다. 연구진은 이들 침팬지가 어떤 방식으로 다른 침팬지와 소통하는지 분석했다.
연구진은 침팬지들이 상황에 따라 어떤 표현을 사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행동 양식을 9개로 나눠 관찰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총 390개의 영상을 촬영해 이 중 950개의 의사소통 표현을 확인해 침팬지의 표정, 발성, 몸짓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침팬지는 나이에 관계 없이 주로 하나의 신호를 이용해 의사소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점차 나이가 들수록 표정·소리·몸짓을 함께 사용해 복잡한 표현을 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었다. 침팬지도 사람처럼 지능이 발달하고 사회생활 경험이 쌓이면서 다양한 표현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여러 표현을 함께 사용하는 소통 방식은 공격적이거나 다른 침팬지와 노는 상황에서 자주 발견됐다. 가령 어린 침팬지는 나이 든 침팬지가 공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빨을 드러내는 표정과 몸을 두드리는 행동을 동시에 보이며 자신이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나타냈다. 또 또래 침팬지와 놀고 싶을 때는 공격의 의사가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몸짓과 표정을 활용하기도 했다. 침팬지가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표현해 위험한 상황을 피한다는 것이다.
클레이 교수는 "무리 생활을 하는 침팬지들이 사회관계를 통해 상황적 맥락과 표현법을 학습한 결과"라고 말했다. 마치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며 다양한 상황의 맥락을 표현하고 파악하는 방법을 배우듯 침팬지도 그렇다는 것이다.
◇침팬지 연구로 사람 언어의 기원 밝힐 수도
과거에는 침팬지의 소통 방법이 단순하다고 여겨졌다. 여러 표현을 함께 사용해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사람의 문화나 언어처럼 체계가 필요하지만 침팬지는 의사소통 체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리처드 번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는 2011년 침팬지의 소통이 나이가 들수록 더 단순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연구진은 우간다의 부동고 숲에서 침팬지 무리를 관찰했다. 723종류의 상황에서 나타난 504개의 표현을 분석해 내놓은 결과다. 세인트앤드루스대 연구진은 단순한 표현법이 의도를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실제로 다양한 행동을 함께 사용했을 때 의도가 잘못 전달되는 상황도 관찰했다.
클레이 교수는 "유인원은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만큼 이들의 의사소통 방식을 연구하면 사람의 언어와 행동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언어와 의사소통 체계는 어떻게 진화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생물학적인 기능보다는 문화적인 맥락이 중요한 만큼 현재 남아 있는 자료로는 연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침팬지 같은 영장류의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하면 초기 인간이 어떻게 소통했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클레이 교수는 "침팬지가 위험한 상황에서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의도를 명확하게 하는 것처럼 인간들도 무리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언어 체계를 발달시켰을 수 있다"면서도 "다만 아직 영장류의 의사소통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만큼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Animal Behaviour, DOI: https://doi.org/10.1016/j.anbehav.2023.03.020
Animal Cognition, DOI: https://doi.org/10.1007/s10071-011-04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