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10일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열고 ‘탄소중립・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제1차 국가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제시한 것이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우선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40%를 감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탄소 배출이 많은 10개 산업 부문에서 탄소배출을 줄여나갈 예정이다. 이 중 하나인 건물 부문에서만 2018년 521만t의 탄소를 배출했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350만t까지 줄여야 한다. 목표 감축률이 32.8%에 이른다.

건물 부문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친환경 건축 기술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가는 자재를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건물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외에도 태양광·풍력·수소 같은 친환경 에너지를 저장하고, 사용하기 쉽도록 인프라도 만들어야 한다.

김병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은 이달 9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친환경 건설 기술을 통해 탄소배출 감축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병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은 “건물과 인프라를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운영하려는 경쟁은 이미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이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친환경 건축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기연은 1983년 설립돼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국내 유일의 건설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그간 건물과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안전 기술 확보를 이뤄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건물이 단순히 개인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기후 변화라는 위기를 극복할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건기연은 건설 기술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단계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김 원장은 “개원 40주년을 맞아 건설 분야에서 탄소중립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산·학·연·관 협력 체계를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며 “탄소 배출 저감과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9일 경기 고양에 있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정부가 건물 부문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건축물의 성능을 높이고, 운영을 효율화해 탄소중립 달성을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건물에서 배출되는 탄소는 발전, 산업, 수송 부문보다는 적은 편이다. 그러나 건축 자재, 에너지 효율화, 도로 인프라처럼 건물은 다른 부문들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 이를 고려하면 건축 기술을 고도화해서 감축할 수 있는 탄소량은 더 많아진다.”

-친환경 건축 기술에는 무엇이 있나.

“가장 효과적인 기술은 건설 자재의 성능을 높이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슈퍼콘크리트가 있다. 슈퍼콘크리트는 일반적인 콘크리트보다 강도가 훨씬 강한데, 단순히 고층 건물을 짓는 데만 도움되는 것이 아니다. 슈퍼콘크리트를 이용하면 철근의 사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철근을 1t 만들 때 탄소는 약 253t 가량이 배출된다. 이외에도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건물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거나,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 기술도 있다.”

-슈퍼콘크리트가 실제 건물에 적용된 사례도 있나.

“2017년 울릉도에 지어진 리조트에 슈퍼콘크리트가 사용됐다. 철근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무철근 건물로는 세계에서 첫번째 사례다. 덕분에 건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탄소도 대폭 줄였다. 콘크리트를 만들 때도 탄소가 발생하는데 슈퍼콘크리트를 활용하면 사용량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강원도에 있는 춘천대교도 슈퍼콘크리트를 이용해 지었는데, 이런 방식을 통해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흰 건축물의 부드러운 곡선이 검푸른 울릉도 새벽 바다, 가파른 절벽과 대조를 이룬다. /사진가 김용관

김 원장은 슈퍼콘크리트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4월 과학기술훈장 혁신장을 수상했다. 슈퍼콘크리트는 일반 콘크리트보다 강도와 수명은 4~5배에 달하지만 비용은 절반 수준이다. 슈퍼콘크리트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튀르키예 같은 해외 건설 현장에도 사용되고 있다. 국내 건축물로는 처음으로 슈퍼콘크리트가 적용된 울릉도 힐링스테이는 단순한 숙박 시설을 넘어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울릉도의 대표 명소로 자리잡았다.

-환경연구기관장협의회에서 회장도 맡고 있다.

“환기협은 건기연을 비롯해 20개 연구기관이 협력해 국내 친환경 기술 개발 현황을 공유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단체다. 협력 주제는 5개 분과로 나눠 다양한 기관들이 친환경 기술 현황 분석과 개발 방안 마련에 협력할 예정이다.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이행 방안에 맞춰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 운영 계획은 올해 말 정도에 공개될 예정이다.”

-친환경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기관 간의 협력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정부가 지정한 12대 국가전략기술이다. 건기연은 첨단모빌리티, 차세대원자력, 우주항공·해양, 수소, 인공지능 등 5개 분야의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기관들과 협력해 연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기연은 수소 저장과 운송에 필요한 인프라 기술 연구를 하고 있다. 수소는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이를 잘 활용하려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내부적으로도 수소 클러스터 조직을 따로 만들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1월 29일 오후 대전 유성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원자력연구원을 방문해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SMR을 비롯해 5개 분야의 국가전략기술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환경과 관련 있는 다른 분야도 있나.

“원자력 발전소는 건기연이 이전부터 연구하던 분야다.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국민들이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식하려면 안전 기술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오염물질의 유출을 막는 방사선 차폐 기술과 설계 기술로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참여하고 있고, 원자력 발전소를 해체한 이후 오염을 제거하는 제염 기술도 확보하고 있다. 이외에도 인공지능(AI)을 이용한 건물 운영 에너지 효율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친환경 기술 개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한 전략도 필요하다.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려면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5년을 꾸준히 연구하면 국내에서 알아주는 성과를, 10년을 투자하면 세계에서 알아주는 성과를 낼 수 있다. 15년을 집중하면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한 가지 연구 주제에 오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정부가 바뀌고 원장이 바뀌더라도 연구원들이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있다.”

김병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은 "건축 분야에서 스타트업 양성과 신기술 도입을 지원해 변화하는 건축 산업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친환경 기술이 실제 산업에서 활용되려면 기업의 참여도 중요하다.

“건설 기술은 기초과학이 아닌 공학의 영역이다. 아무리 좋은 논문을 쓰고 세계적인 기술을 만들더라도 현장에서 쓰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산업에서 신기술이 개발되고 활용되려면 중소기업, 스타트업이 튼튼해야 한다. 그런데 건축 산업은 검증된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 만큼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건설 분야 중소기업·스타트업 지원도 이뤄지고 있나.

“2018년 ‘스마트건설지원센터’를 만들어 건설 분야 창업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에는 두 번째 센터도 완공해 현재까지 48개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제법 성과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이들 기업은 약 269억원 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에는 정보통신기술(ICT)·드론 같은 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국내 건설 기업과 협력할 수 있도록 ‘스마트건설 얼라이언스’도 만들 예정이다. 다양한 건설 신기술이 현장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원장으로서 임기가 1년 가량 남은 상황이다.

“남은 임기동안 직원들의 처우와 환경 개선에 집중할 계획이다. 연구기관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다.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처우 문제가 지적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건기연은 직원들의 인건비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술,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