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2000년 우주 개발 기업인 블루 오리진을 창업했다. 베이조스 뒤로 보이는 것은 뉴 셰퍼드 발사체이다/블루 오리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Zeff Bezos)도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달 탐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반세기 만에 추진하는 유인(有人) 달 탐사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서 베이조스의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Blue Origin)이 스페이스X에 이어 두 번째 달착륙선 개발업체로 지정된 것이다. 베이조스까지 참여하면서 기업들의 달 탐사 경쟁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나사는 19일(현지 시각) “블루 오리진을 달 탐사 아르테미스 5호 임무를 위한 우주인 착륙 시스템 개발사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나사는 블루 오리진의 블루문(Blue Moon) 착륙선이 달 궤도에 있는 우주정거장인 게이트웨이와 도킹(결합)하고 달을 오갈 수 있도록 설계와 제작, 시험 과정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2029년 아르테미스 5호부터 참가

이번 계약 규모는 34억달러(한화 4조 5186억원)이다. 블루 오리진은 2029년으로 예정된 아르테미스 5호에서 블루문에 우주인을 태우고 첫 시험 비행을 할 계획이다. 그 전에 한 차례 달 착륙 무인 시험 비행도 계획돼 있다. 빌 넬슨(Bill Nelson) 나사 국장은 “블루 오리진이 아르테미스 우주 비행사를 달 표면으로 데려다줄 나사의 두 번째 공급업체로 발표하게 돼 기쁘다”며 “우리는 유인 우주 비행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는 민간과 해외 협력 관계로 가능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중단된 유인 달 탐사를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으로 재개했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이름이다. 지난해 아르테미스 1호가 무인 우주선을 싣고 성공적으로 시험 발사됐으며, 내년에는 아르테미스 2호에 우주인 4명이 탑승해 달 궤도를 선회 비행한다. 이어 2025년 아르테미스 3호로 여성과 유색인종 두 명의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킬 계획이다. 이때 착륙선은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스페이스X가 개발한 스타십으로 결정됐다.

달 탐사에 뛰어든 기업들./조선DB

나사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유인 착륙선 개발사를 추가하면 참여 기업 사이에 경쟁이 생겨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사 마셜우주비행센터의 달 착륙선 프로그램 책임자인 리사 왓슨-모건(Lisa Watson-Morgan)은 이날 “나사의 임무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달 착륙선 설계가 두 가지가 되면 달 착륙의 성공을 더 보장할 수 있다”며 “이러한 경쟁적 접근 방식은 혁신을 촉진하고 비용을 절감해 달 경제를 육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루문 착륙선은 장차 화성 탐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나사는 전망했다. 블루문은 단순히 달 탐사만 목적으로 개발된 것은 아니다. 나사는 아르테미스 5호가 나사의 달 탐사 임무를 지원하는 동시에 달을 화성 탐사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한 임무도 지원한다고 밝혔다. 달은 대기가 없고 중력이 약해 화성으로 우주선을 발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로켓부터 우주선, 착륙선까지 새로 개발

나사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위해 우주발사체(로켓)와 유인 우주선을 새로 개발했다. 지난해 시험 비행에 성공한 아르테미스 1호의 발사체인 스페이스 론치 시스템(Space Launch System, SLS)은 높이가 98m로 자유의 여신상(93m)보다 크고, 무게는 2500t에 이른다. 로켓을 밀어 올리는 힘인 추력은 400만㎏으로 아폴로 시대의 새턴V 로켓보다 15% 세다. 나사는 2014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30억 달러(약 30조원)를 투입했다.

SLS 로켓 상단에는 오리온 유인 우주선이 실린다. 최대 4명이 탑승할 수 있다. 오리온 우주선은 발사 후 상단 로켓과 분리돼 독자적으로 달로 간다. 오리온은 지난해 첫 시험 발사에서 달 궤도를 돌다 임무 26일째인 12월 11일 미국 샌디에이고 앞 태평양으로 귀환했다. 당시 시험은 우주인 대신 마네킹을 싣고 진행됐다.

오리온은 2025년부터 달 궤도 우주정거장까지 우주인을 데려갈 예정이다. 다음은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의 달 착륙선이 맡는다. 오리온이 게이트웨이와 도킹하면 우주비행사 두 명이 불루문으로 이동한다. 나사는 아르테미스 5호 우주비행사들이 블루문을 타고 달 남극에 착륙해 일주일 동안 과학, 탐사 활동을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페이스X의 달 착륙선 ‘스타십’ 상상도./스페이스X

◇베이조스, 자비 부담까지 제안하기도

베이조스는 어릴 때 아폴로 우주선 발사를 보고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블루 오리진은 그 꿈을 실현할 수단이었다. 하지만 베이조스의 달 탐사 참여는 쉽지 않았다. 나사는 지난 2021년 4월 아르테미스 달착륙선 개발 사업자로 스페이스X를 단독 선정, 29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당시 입찰에서는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 방산기업 다이네틱스가 삼파전을 벌였다. 세 회사 모두 2020년부터 나사의 지원을 받아 설계 작업을 진행했다.

애초 나사는 의회에 달착륙선 개발 예산으로 33억달러를 요청했지만 8억5000만달러를 받는 데 그쳤다. 예산이 달리자 나사는 스페이스X만 마지막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자 베이조스는 “나사는 원래의 경쟁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반발했다.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의 달 착륙선은 각각 장점이 있다. 스페이스X의 스타십은 50m 높이 일체형 우주선으로 대형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블루 오리진의 블루문 착륙선은 높이가 16m로 스타십보다 작다. 하지만 베이조스는 “블루문이 아폴로 달착륙선처럼 여러 부분으로 나뉘는 모듈형이어서 우주로켓에 맞춰 형태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연료로 수소를 사용해 장차 달의 얼음에서 분리한 수소를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베이조스는 자비 부담까지 제안하며 달 탐사에 의지를 보였다. 그는 2021년 7월 빌 넬슨 나사 국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블루 오리진은 앞으로 3년간 아르테미스 달착륙선 개발비로 받을 돈을 최대 20억달러까지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베이조스의 적극적인 구애가 2년 만에 결실을 맺은 셈이다.

블루 오리진의 뉴 글렌 로켓 발사 상상도./블루 오리진

우주개발 경쟁에서 일론 머스크에 계속 밀리던 제프 베이조스는 올 초부터 반격의 기회를 얻었다. 나사는 지난 2월 화성 자기권 무인(無人) 탐사선을 제프 베이조스가 세운 블루 오리진의 뉴 글렌(New Glenn) 로켓으로 발사하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나사는 2024년 말 화성 자기권 탐사선인 ‘에스케이페이드(ESCAPADE)’ 2기를 뉴 글렌 로켓에 실어 발사하기로 했다. 뉴 글렌은 높이 98m, 지름 7m의 2단형 로켓으로,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존 글렌의 이름을 땄다. 액체산소와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쓴다. 지구 저궤도에는 45t 무게의 탑재체를 쏘아 올릴 수 있으며, 달이나 화성 같은 심우주는 13t까지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우주에서 펼쳐질 머스크와 베이조스의 진검 승부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