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버섯인 알광대버섯(Amanita phalloides). 전 세계 독버섯 사망자의 90% 이상이 이 버섯 때문이다./iNaturalist

과학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버섯에 대한 해독제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사람 세포와 동물 실험에서 해독제 효능이 확인돼 연구가 계속되면 수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과 호주 과학자들은 1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미국에서 의료용으로 허가받은 염료인 인도시아닌 그린(indocyanine green)이 알광대버섯(학명 Amanita phalloides)의 독성을 크게 줄이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48시간에 죽음 부르는 독버섯

알광대버섯은 모양이 주름버섯이나 달걀버섯 같은 식용 버섯과 비슷하지만 알파-아마니틴(α-amanitin)이라는 치명적인 독을 분비한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서기 54년 알광대버섯을 먹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도 1740년 같은 버섯을 먹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파-아마니틴은 독성물질인 아마톡신의 일종이다. 세포가 전령리보핵산(mRNA)을 만들지 못하게 해 신체에 혼란을 일으킨다. mRNA는 DNA의 유전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합성하는 설계도이다. 새로운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세포라는 기계가 멈춘다. 알광대버섯을 먹으면 6시간 뒤부터 구토와 설사가 일어나며, 치료를 받지 않으면 간과 신장에 손상이 가 48시간 안에 사망에 이른다.

문제는 이렇게 치명적인 독버섯에 대한 해독제가 없다는 것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수백명씩 독버섯을 먹고 죽는대, 사망자의 90% 이상이 알광대버섯 때문이다. 중국에서만 2010~2020년 알광대버섯 중독 환자가 4만명 가까이 발생했으며, 그중 788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지금은 위 세척 말고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실정이다.

중국 중산대의 왕 치아오핑(Qiaoping Wang) 교수와 호주 시드니대의 그레고리 닐리(Gregory Neely) 교수 연구진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로 인체에서 어떤 유전자가 알광대버섯 독을 돕는지 추적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유전정보를 담은 디옥시리보핵산(DNA)에서 특정 유전자만 골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 복합체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해독제를 찾는 방법은 2019년 상자해파리 독에 대한 해독제를 찾는 연구에서 이미 효력을 인정받았다.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로 인체 세포의 유전자를 하나씩 잘라보면서 알파-아마니틴 독소를 주입했을 때 세포 수명이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했다. 만약 특정 유전자가 제거됐을 때 세포의 수명이 더 길어지면 해당 유전자가 독소를 돕는다고 볼 수 있다.

독버섯인 알광대버섯(Amanita phalloides)은 식용 버섯인 흰주름버섯(왼쪽), 흰달걀버섯(오른쪽)과 생김새가 비슷해 중독 사고를 부른다./농촌진흥정

◇의료용 염료가 독성 단백질 차단

실험 결과 STT3B이라는 단백질을 만드는 인체 유전자가 알광대버섯의 독성 단백질이 입체 형태로 접히고 당분을 흡수하도록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 용의자를 찾았으니 남은 건 검거이다. 연구진은 미 식품의약국(FDA)이 허가한 약물 3200여종 중에 STT3B 단백질을 차단하는 것이 있는지 컴퓨터 시뮬레이션(모의실험)으로 분석했다.

최종적으로 인도시아닌 그린이 STT3B 단백질을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1950년대 미국 코닥이 개발한 인도시아닌 그린은 병원에서 간이 손상된 환자에게 쓰는 진단용 염료이다. 혈액에 인도시아닌 그린을 투여하고 간이 얼마나 제거하는지 분석해 간 기능 손상 정도를 파악한다. 눈 혈관 진단에도 쓴다.

연구진은 인체 세포에서 인도시아닌 그린이 알광대버섯의 독성 단백질을 차단하는 것을 확인했다. 생쥐에게 알광대버섯을 먹이고 4시간 안에 해독제를 투여하면 간과 신장 손상이 줄고 생존율을 높였다. 알파 아마니틴을 투여한 쥐는 90%가 죽었지만, 인도시아닌 그린으로 치료하면 사망률이 50%로 줄었다. 하지만 버섯을 먹인 지 8~12시간에 투여하면 효능이 감소했다. 연구진은 독성 단백질이 유발하는 조직 손상은 회복 불가능하므로 가능한 한 일찍 해독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 막스 플랑크 육상 미생물연구소의 헬게 보데(Helge Bode) 박사는 이날 네이처에 “정말 환상적인 결과”라며 “알파 아마니틴은 자연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합물 중 하나”라고 밝혔다. 20년 동안 알광대버섯을 연구한 미국 위스콘신대의 앤 프링글(Anne Pringle) 교수는 뉴욕타임스지에 “놀랍도록 멋진 논문”이라며 “인도시아닌 그린이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생쥐 실험도 했다는 점에서 좋은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중산대 연구진은 앞으로 인도시아닌 그린이 독성 단백질을 차단하는 과정을 더 자세히 규명하고, 인체 안전성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번처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와 컴퓨터 약물 모의실험을 병행하면 다른 독소에 대한 새로운 해독제도 신속하게 찾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참고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3),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3-37714-3

Nature Communications(2019), DOI: https://doi.org/10.1038/s41467-019-096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