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다음 달 24일 3차 발사를 앞두고 있다. 앞서 1~2차 발사 때는 각각 가짜 위성과 우주기술을 검증하는 시험 위성을 실었지만, 이번 누리호 3호는 실제 임무를 하는 차세대소형위성 2호와 초소형 큐브위성 7기를 싣고 간다.
지난 13일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에서 만난 고정환(56)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누리호 고도화사업단장 겸)은 “이전 두 차례 발사는 누리호 성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시험 발사라고 얘기했다”며 “이번 발사는 실제 임무를 가진 위성을 원하는 궤도에 안착시키는 것으로 고객을 처음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리호 3차 발사가 고 본부장 말대로 ‘실전(實戰)’이라는 사실은 발사 시각에서도 잘 드러난다. 앞서 두 번의 발사는 오후 4~5시에 이뤄졌다. 발사 전에 문제가 생겨 1시간씩 연기되기도 했다. 반면 3차 발사는 오후 6시 24분 해 질 녘에 한다. 차세대소형위성 2호가 임무 궤도에 들어가 해를 향해 태양전지판을 펼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췄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발사를 포함해 2027년까지 4차례 발사는 민간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누리호 고도화사업으로 주도한다. 한화는 지난해 말 누리호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됐다. 지금까지는 항우연이 3000여 기업과 각각 계약을 맺고 부품을 공급받고 조립을 맡겼다면, 이제는 한화가 항우연과 계약을 맺고 발사체 제작과 발사를 총괄한다. 한국 우주개발이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로 본격 진입하는 것이다.
고 본부장은 고흥에서 누리호 이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누리호 개발로 한국이 국제 우주개발에서 파트너가 될 자격은 갖췄지만, 실질적인 경쟁력은 지금보다 더 강력한 차세대 발사체 개발로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최근 항우연은 발사체개발사업본부를 발사체연구소 밑에 넣고 팀제를 폐지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 조직도 필요할 때마다 인력을 모으는 매트릭스 체제로 운영하겠다고 밝혀 내부 반발을 불렀다. 고 본부장도 일방적 조치에 항의해 본부장 자리를 내놓았다가 3차 발사를 위해 복귀했다. 고 본부장은 “3차 발사는 성공해야 하므로 지금은 연구원들이 말없이 일하고 있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고 했다. 과연 한국의 우주개발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발사 7번 했어도 통제하느라 한 번도 보지 못해”
–누리호 3호기는 이번 발사를 위해 새로 제작했나.
“아니다.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을 통해 누리호를 3기 제작했다. 앞서 두 번 발사했고 3차 발사도 이미 만들어둔 누리호로 한다.”
–발사를 한 달 앞두고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누리호는 3단형 로켓이다. 1, 2단은 이미 조립이 끝났고 3단과의 결합을 기다리고 있다. 3단에는 차세대 소형위성2호가 위에 실리고 아래쪽에 민간기업에서 만든 초소형 큐브위성 7기가 장착된다.”
–누리호 1~2차 발사를 개발자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발사체는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1차 발사는 그 점에서 실패한 것이 맞는다. 하지만 1차 발사는 수많은 부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행 과정에서 90% 이상이 정상적으로 동작했다고 본다. 2차 발사는 1차에서 잘못된 부분을 정확히 찾고 보완해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3차 발사에서 중점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
“초소형 위성을 전보다 더 많이 싣고 간다. 분리하는 도중 중간에 부딪히면 안 되기 때문에 면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또 1~2차 발사에서 각 부품의 성능을 확인하고 비행 프로그램을 조금 업데이트했다. 그런 부분이 맞아 들어가는지 보는 목적이 있다.”
–정작 발사체가 이륙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다고 들었다.
“2000년 항우연에 들어온 이후 7차례 발사가 있었는데, 언제나 지휘센터에서 발사 과정을 모니터하고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맡다 보니 실제 이륙 장면을 본 적이 없다. 대부분 그날 저녁 방송 뉴스에서 봤다. 지휘센터의 제 모니터에는 엔진 점화 장면만 나오고 그 뒤로는 비행 정보만 나온다. 실제 발사는 2017년 미국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올라가는 모습을 본 게 전부다.”
◇쓰레기통 뒤지며 성공시킨 나로호가 누리호 토대
–3차 발사가 실패할 가능성은 있나.
“발사체의 비행 환경이 워낙 가혹하다 보니 어저께 성공했다가 오늘 발사는 실패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누리호도 작년에 2차 발사에 성공했지만 3차 발사가 반드시 성공한다고 보장이 되는 게 아니어서 늘 긴장하면서 준비하고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실패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리호는 두 번 발사 실패 끝에 2013년 성공한 나로호에 기반을 둔 발사체인가.
“나로호는 러시아에서 만든 1단 액체연료 로켓에 우리의 2단 고체 로켓을 결합한 것이다. 발사체 기술은 국가 간 이전이 불가능해 나로호 1단과 누리호는 아주 다르다. 그러나 나로호 개발을 통해 어깨너머로 배운 발사 운영이나 설계 정보가 굉장히 도움이 됐다.”
–러시아와 공동개발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서류 하나 받으려고 해도 공식 허가 절차를 밟으면 한 달 뒤나 됐다. 연구자들이 답답한 마음에 러시아 개발자가 두고 간 게 없는지 쓰레기통을 뒤진 적도 많다. 그래도 엔지니어들이 공동 작업을 하면 저쪽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습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또 언어 장벽이 있었지만 오래 같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씩 배울 수 있었다.”
–술자리도 큰 도움이 됐다고 들었다.
“그렇다. 우리나 러시아나 회식을 좋아한다. 우리는 소주를, 러시아 측은 보드카를 가져와서 같이 마시다 보면 신기하게도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데 이해가 됐다. 회의 때마다 보안요원이 붙어 힘들었는데 회식을 같이하면서 그들과도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때 같이 일했던 러시아 기술진과 지금도 연락하는데 누리호 발사를 보고 ‘한국이 자동차 만드는 거 보니까 발사체도 빨리 할 줄 알았다’고 축하해줬다.”
◇3차 발사는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 시발점
–3차 발사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체계종합기업으로 참여한다. 어떤 차이가 있나.
“1~2차 발사까지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이고 이후 4차례 발사는 고도화사업으로 진행된다. 이제 항우연이 발사체 기술을 민간에 이전하고 궁극적으로 민간기업이 누리호를 제작하고 발사할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를 위한 대표 기업인 셈이다. 지금까지 항우연이 각 기업과 계약을 맺었다면, 이제부터 항우연이 한화와 계약을 맺고 다시 한화가 각 기업과 계약을 한다.”
–그렇다면 2차 발사보다 항우연의 부담이 줄어든 건가.
“그렇지 않다. 3호기는 이미 만들어둔 것이라 발사만 한화와 한다. 그렇지만 지난해 말 계약이 이뤄져 실질적으로 기술이전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중간 단계로 보면 된다. 당장 한화에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기업으로서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공동 책임을 지면서 한화가 하는 역할이 점점 늘어나도록 진행할 계획이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도 예정돼 있다.
“아직 시작하지는 않았다. 사업책임자도 아직 선정되지 않았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은 누리호 고도화사업과 별개이다. 나는 사업책임자에 지원하지 않았다.”
–누리호와 차세대 발사체는 어떤 차이가 있나.
“차세대 발사체는 누리호 3배 성능이라고 보면 된다. 누리호가 1.5t 무게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린다면, 차세대 발사체는 달이나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2032년 달에 1.8t 착륙선을 보내는 것이 목표이다.”
◇이제 걸음마, 국제협력의 자격 갖춘 게 성과
–이른바 가성비로 따지면 미국 스페이스X의 로켓이 훨씬 낫지 않나.
“누리호는 가격 면에서 다른 발사체와 경쟁하기는 무리이다. 하지만 모두 스페이스X로 몰리니 발사 일정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누리호는 우리 위성을 우리가 원할 때 발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의미가 있다.”
–독자 발사체를 개발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주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일단 우주로 나갈 수 있는 발사체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발사체 기술을 가지면 국제 우주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자격이 된다.”
–누리호의 국산화는 어느 정도인가.
“발사체 부품은 외국에서 가져오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모든 걸 개발해 굉장히 힘들었다. 현재 90% 이상 국산화됐다. 나머지는 산업용으로 수입 가능한 부품들이다. 이것들도 우리가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국내 제작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해왔다.”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 시대라고 하지만, 발사체 수요는 한계가 있지 않나.
“우주 분야는 대표적인 다품종 소량 생산 시장이다. 기업이 이익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이다. 지금껏 정부 투자가 대부분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면서 우주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기업들도 투자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정말 고무적인 현상이다. 우주기술이 산업에 응용되기도 한다. 누리호에 들어간 액체산소용 밸브를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에 적용하려는 기업도 있다. 국방과 연계되는 부분은 계속 보고 있다.”
–한국이 우주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시점은 언제일까.
“한국은 우주 발사체에서 이제 걸음마를 뗐다고 본다. 누리호 반복 발사를 통해 신뢰도를 검증해야 한다. 차세대 발사체를 개발하면 경량화를 통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가벼우면 그만큼 짐을 더 실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발사체의 탑재 능력이 향상되면 비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차세대 발사체는 한국 우주개발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 책임과 권한 같이 줘야
–지난해 말 항우연이 발사체개발사업본부를 신설 발사체연구소 산하에 두는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고 본부장이 보직을 사퇴하는 내홍을 겪었다.
“누리호 3차 발사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두 아무 말 없이 일하고 있지만, 3차 발사가 끝나면 똑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지금은 같이 일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완전한 조직이 아니다.”
–항우연은 다른 조직에서 일하다가 필요할 때마다 임무에 맞게 인원을 배치하는 매트릭스 조직을 만들겠다고 했다.
“3차 발사가 끝나고 발사체 인력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상황은 똑같다. 그건 아니다. 차세대 발사체개발사업은 연구원들이 전부 집결해야 일을 해야 할 수 있다. 연구원들도 책임과 권한이 같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권한은 없고 책임만 따라가는 구조여서 어렵게 가고 있다.”
–누리호 개발 책임자가 차세대 발사체 개발도 맡아야 하지 않나.
“누리호 개발사업을 8년 맡았다. 차세대 발사체개발사업은 10년 갈 테니 이제 후배들이 맡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우주항공청이 생기면 달라질까.
“우주청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고 있다. 누리호 개발을 하면서 늘 예산과 일정이 힘들었다. 전문 정부 부처가 생긴다면 발사체 개발을 진행하는 데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빨리 생겨서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누리호 키즈가 한국 우주개발 이끌 것
–뉴스페이스의 주역 중 한 명인 제프 베이조스 블루오리진 창업자는 어릴 때 아폴로 우주선 발사를 보고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본부장은 어떻게 우주 분야로 오게 됐나.
“어릴 때 로봇 만화를 좋아해 로봇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 전공을 기계공학으로 하려고 했는데 항공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항공공학과로 진학했다. 미국 유학에서 위성 제어를 전공했다. 하지만 보안 문제로 외국인이 취업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 항우연에 들어왔다. 그동안 발사를 7번밖에 못했지만, 그때마다 성취감이 굉장히 컸다. 아마 그렇게 강력한 경험을 하기 때문에 20년, 30년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로호 발사를 보고 우주 분야에 뛰어든 연구원이 있다고 들었다. 스포츠계의 박세리 키즈, 김연아 키즈처럼 이제 고정환 키즈도 나오겠다.
“나로호 사업을 끝내고 공채를 해보니 나로호 발사를 보고 관심이 생겨 지원했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중 누리호 발사 때 제 옆자리에서 일하는 연구원도 있다. 앞으로 제 개인보다는 나로호 키즈, 누리호 키즈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이공계의 의대 쏠림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우주개발을 이어가려면 사람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우주개발의 매력을 설명한다면.
“2차 발사를 준비하던 어느 밤 발사대를 쳐다봤는데 보름달이 크게 떠 있었다. 그때 우리가 만든 발사체가 여기서 발사돼 달까지 가면 정말 멋진 일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직접 무엇을 해서 우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주는 발사체나 인공위성처럼 분야가 다양하고 여러 전공이 필요하다. 자기가 잘하는 분야를 찾아 열심히 하면서 우주와 연결되는 부분을 찾으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
☞고정환
1985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에 입학해 석사까지 마쳤다. 미국 텍사스 A&M대로 유학을 가서 1996년 위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오면서 로켓 연구에 뛰어들었다. 고 본부장은 “미국에선 보안상 외국인에게 로켓처럼 민감한 연구는 맡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액체추진과학로켓(KSR-III), 나로호(KSLV-I), 누리호(KSLV-II) 개발에 참여했다. 2015년부터 누리호 개발사업을 이끌었으며, 지난해부터는 누리호 반복 발사로 신뢰도를 높이는 고도화사업도 맡고 있다. 누리호 발사를 성공시켰지만 최근 항우연 조직개편 논란에 휩싸여 보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고 본부장은 지난 2월 24일 모교인 서울대 졸업식에서 한 축사에서 “목표하는 바를 잘 세우고, 어떤 외부의 압박과 방해가 있더라도 목표를 잘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