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이 게의 공격을 받으면 항문에서 끈적끈적한 실을 뿜어내 방어한다./Liang Li

도마뱀이 천적을 만나면 꼬리를 자른다. 꿈틀거리는 꼬리에 천적의 눈이 팔린 사이에 도망간다. 바다에 사는 해삼은 그보다 더 큰 희생을 한다. 게가 달려들면 내장 같은 물질을 쏟아낸다. 중국 과학자들이 해삼의 극단적인 방어 전략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밝혀냈다.

남중국해해양학연구소의 팅 첸(Ting Chen) 교수 연구진은 11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검은색 해삼(학명 Holothuria leucospilota)이 게나 물고기, 불가사리에 내뿜는 점액성 실을 분자 차원에서 규명했다”고 밝혔다.

해삼이 천적을 만나면 항문에서 실 같은 물질을 내뿜어 방어한다./남중국해 해양학연구소

◇거미줄 실크와 비슷한 아미노산 사슬 구조

해삼이 천적을 만나면 항문에서 실처럼 생긴 물질을 내뿜는다. 1831년 프랑스의 동물학자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가 처음 기록을 남겼다고 해서, 해삼이 방출하는 점액성 물질을 ‘퀴비에 기관(Cuvierian organ)’이라고 부른다. 내장을 쏟아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해삼의 호흡기관에서 유래한 물질이다. 도마뱀 꼬리처럼 해삼이 뿜어낸 실도 나중에 몸에서 재생된다.

첸 교수 연구진은 해삼의 유전정보를 모두 해독했다. 인공지능 알파폴드(AlphaFold)는 이 정보를 토대로 퀴비에 기관 유전자가 어떤 단백질을 만들지 예측했다. 인공지능은 퀴비에 기관을 방출하도록 하는 수용체 단백질을 발견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들이 연결돼 만들어진다. 해삼이 방출하는 끈적끈적한 실은 거미줄 단백질과는 아미노산 서열이 달랐다. 하지만 아미노산 사슬이 길게 이어진 채 반복되는 형태는 마찬가지였다. 연구진은 두 동물의 단백질이 독립적으로 진화했지만 실크와 유사한 단백질 구조는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삼의 방어무기인 퀴비에 기관(Cuvierian organ). 프랑스 동물학자인 조르주 퀴비에가 처음 기록을 남겨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천적이 공격하면 항문(anus)에서 실 같은 형태의 퀴비에 기관을 내뿜어 물리친다./PNAS

◇점성은 치매 유발 아밀로이드와 비슷한 단백질에서 유래

첸 교수는 게나 불가사리, 물고기의 몸에 엉키도록 하는 퀴비에 기관의 점성은 아밀로이드 단백질 접합체와 유사한 단백질에서 유래하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뇌에 있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덩어리가 원인이라고 알려졌다. 베타 아밀로이드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 물론 해삼이 분비하는 단백질이 치매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벨기에 몽스대의 패트릭 플래망(Patrick Flammang) 교수는 사이언스뉴스에 “이번 논문은 퀴비에 기관에만 있는 새로운 단백질을 밝혔을 뿐아니라 수수께끼같은 이 기관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려줄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첸 교수 연구진은 이번에 해독한 유전정보를 토대로 해삼의 생식과 내분비, 면역, 소화 체계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해삼이 빛을 감지하고 먹이를 소화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를 연구하고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번에 유전자를 해독한 검은 해삼과 같은 홀로투리아(Holothuria) 속의 해삼들이 천적을 만나 항문에서 실을 내뿜는 모습./위키미디어

◇기생충 없애려 스스로 목 치는 달팽이

바다에는 해삼처럼 극단적인 형태로 자신을 보호하는 동물들이 많다. 갯민숭달팽이(Elysia cf. marginata)가 대표적이다. 일본 나라 여성병원의 요이치 유사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21년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갯민숭달팽이가 스스로 목을 자르고 나중에 머리에서 다시 몸이 재생되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더듬이가 달린 머리는 몸통과 분리된 뒤에도 움직이고 먹이까지 먹었다. 심지어 노폐물도 제거했다. 1~3주가 지나자 심장을 포함한 몸통이 다시 자라났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갯민숭달팽이의 머리는 몸통과 분리되기 전이나 후에도 해초를 먹고 엽록체가 녹색으로 변했다. 달팽이의 소화샘은 머리를 포함해 몸 전체에 흩어져 있다는 의미다. 덕분에 몸통과 분리된 뒤에도 머리가 살 수 있다.

갯민숭달팽이(Elysia cf. marginata)가 스스로 목을 잘라낸 뒤 머리와 몸통의 모습. 머리에선 다시 몸통이 자라났다. 하지만 남은 몸통은 몇 달은 살지만 결국 부패했다./나라 여성병원

연구진은 갯민숭달팽이가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와 같은 행동인지 알기 위해 천적처럼 몸통을 찔렀다. 달팽이는 이런 공격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대신 연구진은 자연에서 채집한 달팽이 일부에서 몸 안에 물벼룩 같은 기생 갑각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목이 잘린 달팽이 42마리는 모두 몸에 물벼룩이 있었다. 연구진은 최소한 이 달팽이 종은 몸 안의 기생충 때문에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생충 없애려 스스로 목을 자르는 갯민숭달팽이./나라 여성병원

참고자료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2023), DOI: https://doi.org/10.1073/pnas.2213512120

Current Biology(2021), DOI: https://doi.org/10.1016/j.cub.2021.0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