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비료로 쓰이는 인산염의 부산물이 농작물에 함유된 중금속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농작물에 흡수된 중금속은 음식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면 각종 암이나 심장 박동 이상 등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번 연구를 발전시키면 중금속에 오염된 토지에서 농작물의 생산성과 안전성을 높이는 데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홍창오 부산대 생명환경화학과 교수는 10일 인산염 비료를 생산할 때 나오는 부산물인 인산석고와 석회석을 뿌린 토지에서 중금속의 비소가 덜 흡수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중금속이 섞여 있는 토지에서 자라는 식물의 비소 흡수율을 측정한 이번 연구의 구체적 결과는 내달 15일 발행되는 국제학술지 유해물질저널(Journal of Hazardous Materials)에 공개될 예정이다.
농작물을 키우는 농경지는 재배에 필요한 농약과 살충제 등으로 중금속에 많이 노출돼 있다. 특히 땅에 많이 포함된 비소는 작물이 재배되는 과정에서 잘 흡수돼 사람 몸에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 비소에 중독되면 심장 박동에 이상이 생기고 혈관 손상,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폐암과 방광암, 피부암과 같은 각종 암을 유발하기도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토지 중 비소·카드뮴·수은·납 등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지는 1억955만㎡로, 서울 6분의 1 크기에 달한다. 이 중 농경지 관련 토지는 655만㎡다. 농경지에 해당하는 토지를 보유하고 있어도 중금속에 오염된 토지로 지정되면 작물을 재배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농작물 재배 과정에서 중금속이 흡수되지 않고 안전하게 성장하는 방안을 연구해왔다.
연구팀은 농작물의 비소 흡수를 막기 위해 칼슘이 포함된 인산석고와 석회석을 이용한 실험을 진행했다. 인산석고는 인산염 비료를 생산할 때 나오는 부산물이다. 인산석고(CaSO4)와 석회석(CaCO3)에 포함된 칼슘은 비소(As)와 결합해, 비소를 침전시켜 땅 속에 가둬놓을 수 있다.
실험은 토지에 비소를 투입해 숙성 기간을 거친 샘플을 만들어 진행했다. 연구팀은 농협경제지주 계열사인 남해화학에서 개발한 중화·정화 작업을 거친 인산석고를 사용했다. 각각의 샘플에 인산석고와 석회석을 넣어 8주 동안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비소가 어느 정도로 줄어드는지 확인했다. 비소는 식물이 토양 속 물질을 흡수하는 것과 유사한 작용을 일으키는 질산암모늄으로 추출돼 측정됐다.
샘플 토양 내에는 150ppm(1ppm은 1000g당 1㎎) 정도의 비소가 들어있었는데, 인산석고와 석회석을 뿌리지 않을 경우에는 33ppm 수준의 비소가 농작물에 흡수된다. 하지만 인산석고를 섞은 샘플에서는 농작물의 비소 흡수율이 17.4%로 떨어져 5.7ppm, 석회석은 36.9%로 12.1ppm만 흡수됐다. 인산석고는 수소이온농도(pH) 5~7의 약산성 토지에서, 석회석은 pH 8 이상의 염기성 토지에서 가장 높은 효율을 보였다.
비소는 토양에서 비산염(AsO4) 상태로 존재하는데, 인산석고와 화학반응을 하게 되면 인산석고를 이루는 황산이온(SO4)으로 치환된다. 이때 비소가 고체인 인산석고 결합하면서 불용성 물질로 변해 농작물에 흡수되지 않는 것이다.
인산석고는 산성 물질이기 때문에 중화 작업이 필요하다. 토지가 산성일 경우 농작물의 중금속 용해도가 높아져 비소·카드뮴·알루미늄은 흡수하는 반면 질소·인산·칼슘과 같은 식물 생장에 필요한 영양분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산석고는 소량의 카드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 중금속 정화 작업도 필요하다.
연구팀은 농작물의 중금속 흡수 관련 연구가 보건·의료 측면뿐 아니라 농업 생산성에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르면 중금속 잔류 허용 기준치를 초과한 토지에서는 농경이 중단된다.
홍 교수는 "정부가 공업단지나 폐광 주변을 중심으로 중금속 분포를 모두 확인하고 있어 해당 농경지에서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도 농사를 아예 못 짓는다"며 "인체에 대한 영향뿐 아니라 농민들이 농사를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고 자료]
Journal of Hazardous Materials, DOI: https://doi.org/10.1016/j.jhazmat.2023.13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