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과학 연구기관인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가 중국과의 협력 관계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과학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추진해온 과학 국제화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개별 연구소의 사례를 과장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하는 의견도 나왔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8일(현지 시각)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큰 파스퇴르 연구소가 중국과학원(CAS)과 협력 관계를 중단하고 상하이 파스퇴르 연구소 공동 운영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고 전했다.
파스퇴르 연구소의 대변인은 네이처에 "지난해 12월 상하이 파스퇴르 연구소의 공동 운영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며 "상하이 파스퇴르 연구소는 이제 중국과학원이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곧 연구소 이름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파스퇴르 연구소는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세균학자인 루이 파스퇴르의 이름을 따서 1888년 파리에 문을 열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10명이나 배출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세계 각국에 진출해 현재 한국을 포함해 25국에서 2만3000여명이 파스퇴르 연구소 이름 아래 질병과 싸우고 있다.
중국 상하이 파스퇴르 연구소는 2004년 문을 열었다. 네이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현재 연구원 35명과 박사후연구원 29명을 포함해 146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이 중 9%는 외국인이다. 그동안 C형 간염과 에볼라, 지카, 에이즈, 코로나19 등 여러 감염병 바이러스를 연구했으며, 급성 바이러스 질환인 수족구병 치료제 후보물질과 노로바이러스 백신 등을 개발했다.
두 기관이 결별한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파스퇴르 연구소는 네이처에 "이번 선택은 두 기관 간의 관계를 개선하고, 보다 생산적인 협력 방안을 방법을 찾기 위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이뤄졌다"고만 밝혔다. 중국과학원 대변인도 "두 기관은 장기적이고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며 "중국과학원은 파스퇴르 연구소와 프랑스 과학자들의 기여에 깊이 감사한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잡음 없이 합의 이혼한 셈이다.
하지만 과학계는 이번 결별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상하이 파스퇴르 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한 바 있는 홍콩대의 앨리스 휴즈 교수는 네이처에 "과학 협력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과학 역량이 급성장하면서 외국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을 했다는 의미다.
상하이 파스퇴르 연구소는 2004년 개원식에 당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참석했을 정도로 과학 협력 관계의 상징이었다. 초대 소장인 뱅상 두벨 박사는 중국 본토 과학 연구기관 최초의 외국인 기관장이었다. 휴즈 교수는 네이처에 "당시 중국은 과학 분야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지 않았다"며 "이제 중국은 과학에서 강력한 위치를 확립해 중국과학원이 외국 연구기관과 연구소를 공동 운영하는 데 큰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제로 중국은 최근 미국과 기술 경쟁을 벌이면서 과학 분야에서 자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산당이 직접 과학 연구를 관할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7일 중국 국무원이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제출한 '국무원 기구개혁 방안'에는 공산당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신설안도 포함됐다. 국무원 부처인 과학기술부 위에 당 조직을 새로 만들어 시진핑 주석이 직접 과학기술 분야를 관할하도록 한다는 의미다.
반면 중국 과학자들은 이번 결별이 큰 변화를 반영한다는 해석에 반박했다. 중국 우한대의 바이러스학자인 케 란 교수는 네이처에 "개별 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2006~2016년 상하이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일했다. 케 란 교수는 "결별 소식은 유감이지만 중국 정부는 여전히 국제 공동 연구를 장려한다"며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지금도 국제 공동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감염병 연구에서는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Nature,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3-00694-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