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의료를 전공해서 과학 분야에 진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의사과학자를 국가전략 관점에서 양성할 수 있는 방안을 보건복지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속도감 있게 준비하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7일 대전 유성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방문했을 때에도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설립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의사과학자 육성을 위해 KAIST 과기의전원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또 장관들에게 과기의전원 설립을 적극 도우라고 지시했다.
KAIST는 2006년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하며 의사과학자 양성의 요람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러나 의과학대학원만으로는 전 세계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기술 경쟁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디지털치료제, 인공지능(AI)처럼 공학 기술과 의학의 융합이 대세가 되고 있다. 연간 시장 규모가 2조달러(약 2620조원)에 달하는 바이오의료 산업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으려면 새로운 형태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KAIST에서 원조 의사과학자가 있다면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김 교수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의사 과학자다. 김 교수는 지난달 17일 의과학대학원 학과장을 맡아 KAIST 과기의전원 설립을 앞장 서서 지휘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대전 유성 KAIST 캠퍼스에서 만난 김 교수는 "KAIST 과기의전원 설립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며 "의사과학자·의사공학자 양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본인 스스로도 의대를 졸업하고 과학을 공부한 의사과학자다. 의사과학자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연세대 의대는 학생들에게 담임 선생님을 배정한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고 허갑범 교수님께 'MD-PhD'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의사(MD) 면허를 갖고, 이공계 박사(PhD) 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지금의 의사과학자와 비슷한 개념이다. 의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턴시험을 포기하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처음부터 의사과학자가 되겠다는 목표가 아니었다는 의미인가.
"당시에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의사과학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학생들이 찾아오면 연구실을 구경시켜주고, 의사과학자들이 하는 일을 소개해준다. 지금 의사과학자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의사과학자가 의사·과학자와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각자 다른 색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할 수 있다.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생명과학자들은 생명 현상 그 자체에 관심이 많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나타나는 생명 현상의 이유를 쫒는게 과학자라면 의사과학자들은 질병에 걸린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는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반면 의사는 과학자들이 쌓은 지식을 토대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사람들이다."
-의사과학자가 하는 일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환자들이 병원에 찾아 왔을 때가 아니라, 병원에 오기 전에 왜 이런 병이 생겼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가령 내 연구 주제인 당뇨병은 췌장에 있는 베타 세포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한다. 베타세포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과거를 추적하는 것이 의사과학자의 일이다. 그 과정에서 당뇨병의 예방법이나 새로운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KAIST 의과학대학원은 의사과학자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의사과학자 양성 정책의 유일한 성공사례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존 의대에서도 의과학대학원을 벤치마킹한 비슷한 형태의 학과가 생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은 의사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과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
-의과학대학원의 성공에도 과기의전원 설립을 추진하게 계기는 무엇인가.
"'우리가 꼭 과학자만을 양성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의사를 양성하면 새로운 영역이 펼쳐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사실 의과학대학원에서 공부한 의사가 모두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졸업생들은 여전히 개원을 선택하고 있다. 처음부터 의사과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들을 선발해 양성하면 이런 문제를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기의전원 설립은 언제부터 준비했나.
"사실 과기의전원 설립은 2015년부터 준비해 왔다. 당시 부총장이던 이광형 KAIST 총장이 의전원 설립 방안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과기의전원 설립을 포함해 4개의 안을 준비했고, 결국 과기의전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후부터 교육과정을 만들고, 교수를 충원하는 등 준비를 하고 있다. 목표는 정부의 허가를 받으면 3년 이내로 신입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너무 촉박한 것 아닌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정은 맞다. 그래서 의대 설립 이후에 받는 인증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의대 정원이 배정되면 학생을 모집하기 전 예비인증, 학생 모집 후 4년간 매년 평가인증을 받아야 한다. 총 4번의 평가인증을 받는 셈인데, 그 중 3번을 미리 준비하겠다는거다. 이미 교육 제도와 교육 과정에 대한 골격은 다 갖춰놨다."
-KAIST 과기의전원은 의과학자가 아닌 의사공학자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KAIST가 정말 잘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과기의전원의 교육과정 70%를 공학 관련 내용으로 구성했다. 의사과학자가 과학계에서 활약한다면, 의사공학자는 산업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게 하는게 목표다."
-의사공학자는 의사과학자와 무엇이 다른가.
"의료기기, 인공지능(AI)처럼 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의사과학자가 기초과학을 한다면 의사공학자는 직접 제품을 개발하고, 상업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의료 기술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지는 시기다. 전 세계에서 디지털치료제 기술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시장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의사공학자를 배출할 수 있는 환경은 부족하다."
-KAIST 과기의전원을 졸업할 사람들에게 바라는 역할도 있나.
"그렇지 않다. 과기의전원 설립은 마치 신대륙에 발을 처음 내딛는 것과 같다.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일이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가령 의공학자가 창업해 제2의 삼성전자가 될만한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하거나,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료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우리도 기대할 뿐이다."
-과기의전원이 만들어진다면 의과학대학원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과기의전원은 석사 과정, 의과학대학원은 박사 과정으로 분리해서 운영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과기의전원은 의사공학자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고, 의과학대학원은 기존 의사들 중 의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게 유지돼야 한다."
-의사과학자 양성이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의사과학자 양성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하나의 방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여러 방식으로 도전하고, 부족한 점을 상호보완하며 키워나갈 시기라고 생각한다. KAIST는 이미 의과학대학원이라는 좋은 성공사례를 갖고 있다. 또 오랜 시간 준비한 만큼 KAIST가 추진하는 방법이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입시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에 몰리면서 이공계의 몰락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학생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스스로도 그랬다. 그런데 내가 정말 즐거울 수 있는 일을 나중에 찾았고, 훌륭한 스승들에게 배워 의사과학자가 될 수 있었다. 의사공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현재로서는 의사공학자가 되려면 의대를 진학하는 방법 밖에 없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부를 6년 동안 해야 한다. 만약 과기의전원이 설립되면 의사공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들은 자기가 배우고 싶은 공학을 학부에서 배우고, 과기의전원으로 진학해 의사공학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 모델이 성공하게 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우수한 학생들이 공대에 진학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KAIST 의과학대학원 학과장으로서 과기의전원 설립 추진에 대한 책임감이 클 것 같다.
"과기의전원 설립은 우리 학과만의 임무가 아니다. KAIST 전체가 모두 도움을 주고 있다. KAIST는 태생적으로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응원하는 문화도 있다. 과기의전원 설립은 의과학대학원의 도전이 아닌 KAIST의 도전이다."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학과장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의과학 박사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 의대에서 교수로 임용돼 연구를 이어가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에서 연수를 받고,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로 부임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지난달 17일부터는 의과학학과장을 맡아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