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전 세계 연구자 4명 중 3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연구 활동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는 이른바 '조용한 퇴사'가 과학계에도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3일(현지 시각) 미국과 스위스 등을 포함해 전세계 과학자 17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한 2020년 3월 이후 근무시간과 불필요한 프로젝트를 줄였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1월 7일부터 15일까지 온라인 설문을 통해 이뤄졌다. 각국 연구자들의 조용한 퇴사 현황과 동기, 줄인 활동 등을 중심으로 조사했다. 응답자 구성은 학계(73%)의 비중이 가장 높았고 산업(3%), 정부(8%), 임상 역할(4%), 비영리 조직(4%), 기타 작업장(3%) 종사자가 뒤를 이었다. 경력별로 나누면 석·박사과정생 19%, 박사후연구원 또는 계약직 연구원 17%, 정규직 연구원 17%, 조교수 10%, 선임 교수 또는 강사 22%, 중간 또는 고위 경영진 7%, 기타 8%로 나타났다.

그래픽=손민균

업무를 줄인 주요 요인으로는 번아웃이 67%(복수 응답)로 가장 많았다. 번아웃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해 업무와 일상 등에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 다음으로 무급 초과 근무를 원하지 않아 업무 시간이나 활동을 줄였다는 의견이 48%로 나타났다. 상사가 자신의 업무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느끼거나(45%) 개인 생활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해서(44%),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못해서(44%) 조용한 퇴사를 선택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설문조사에 응한 한 과학자는 네이처와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일로 심한 압박을 받은 사람들이 동기가 약해지고 지쳤다"며 "더이상 일을 집으로 가져와 일과 가정생활 사이의 불균형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 소속의 한 연구자는 "사람들은 적절한 보상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다른 업무를 맡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일과 삶 사이의 지속 가능한 균형을 찾아 컨퍼런스 같은 회의 참여를 줄이거나 '동료 평가' 횟수를 줄였다고 답했다. 위원회 활동을 줄이거나 연구 프로젝트의 규모나 시간을 제한해 업무 외의 일에 집중하기도 했다.

대체 단백질 개발 기업 '네이처스 파인드'의 연구자 라이언 스윔리는 "하루 최대 16시간까지 일하다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규칙적인 일정으로 바꿨다"며 "정신 건강이 좋아지고 하고 싶은 취미가 무엇인지 찾고 추구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사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기업이나 기관도 소속 직원의 업무량을 파악하고 스트레스 수준을 확인해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스스로 업무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지만 기관이나 기업 역시 번아웃을 유발하는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