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기 북극해가 소금기가 바닷물보다 덜 짠 융빙수(빙하가 녹은 물)로 채워져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다. 빙하기 북극해가 민물이나 해수가 아닌 융빙수로 차 있었다는 가설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극지연구소는 8만 년 전 빙하기 서북극해가 산소가 풍부하고 염분이 높은 바닷물이 아닌 기수(염분이 민물보다는 높고 해수보다는 낮은 물, 주로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하구 지역에 존재) 정도의 염분을 가진 융빙수로 채워졌다는 증거를 제시했다고 3일 밝혔다.
그동안 빙하기 북극해는 다른 대양과 마찬가지로 해수로 채워졌다는 것이 상식처럼 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극지연구소 연구팀은 퇴적층을 분석한 결과, 빙하기 북극해가 표층부터 깊은 바닥까지 소금기가 없는 완전한 민물로 채워졌다고 2021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다만 이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지 못해 가설로 채택되진 않았다.
극지연구소 북극연구팀은 빙하기 북극해가 민물이나 바닷물이 아닌 대륙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융빙수로 차 있었다고 제안했다. 또 해저 1800m 깊이의 심층수는 산소가 결핍된 환원 환경이었다고 주장했다. 융빙수는 염분 농도가 민물(0‰)과 해수(35‰) 사이인 20‰다. 해수에는 녹아있는 소금의 양이 적기 때문에 백분율(%)이 아닌 천분율(‰) 단위를 사용한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빙하기 북극해에서 발견된 모래알 크기의 자생성 탄산염이다. 자생성 탄산염은 이산화탄소와 박테리아의 화학적 반응으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물질로, 해양 퇴적물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연구는 서북극해에서 시추한 퇴적물 코어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8만 년 전 빙하기와 간빙기 부분에서 발견된 자생성 탄산염이 서로 다른 성질을 보인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빙하기에 발견된 자생성 탄산염은 간빙기에 발견된 탄산염보다 마그네슘 함유량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민물에 가까워질수록 자생성 탄산염 속에 마그네슘이 적다.
빙하기 북극해에는 융빙수가 대륙빙하에서 대량으로 흘러들어왔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했다. 빙하기 해양 산소 결핍 현상은 빙하기 대기에서 이산화탄소가 감소한 주요 원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북극해를 대상으로는 최초로 보고된 사례이며, 지구 탄소 순환에서 북극해가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장광철 연수연구원은 "과거 빙하기와 간빙기 동안 변화한 북극해 수층 환경에 대한 논쟁의 실마리가 자생성 탄산염에 숨겨져 있었다"며 "북극해를 둘러싸고 존재했던 거대한 대륙빙하에서 엄청난 양의 융빙수가 북극해로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공동교신저자인 남승일 책임연구원은 "북극해에서 추진 중인 거대 지구과학프로그램에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후 변화와 같은 주요 과학적 이슈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국가연구개발사업인 '북극 스발바르 기후·환경 취약성과 회복력 이해'의 일환으로 수행됐다.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지구·환경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s Earth and Environment)' 2월호에 게재됐다.
[참고 자료]
Communications Earth and Environment, DOI: https://doi.org/10.1038/s43247-023-007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