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북동부에 있는 하르키우 국립대가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불타고 있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은 절반이 연구현장을 잃었다./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이론 물리학 연구자인 크세니아 미나코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공대 교수는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침공한 이후로 미국 과학자들과 협력하며 연구를 계속해서 진행했다. 하지만 6개월 뒤 연구실이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되면서 다시 위기를 맞았다. 현재는 미국에서 장비를 받아 연구실을 다시 꾸려 연구를 이어가고 있지만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22일(현지 시각) 미나코바 교수 사례를 소개하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지난 가운데 전쟁 속에서도 과학 연구를 계속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정리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는 전쟁 전 우크라이나에 연구 지원 인력 3만5000명을 포함해 6만 명의 연구원이 있었지만 이 가운데 6000명이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를 떠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력뿐 아니라 전쟁으로 연구 시설도 잃었다.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물리기술연구소와 전파천문학연구소가 관리하는 전파 망원경이 손상되는 등 연구와 고등 교육기관 334곳 중 91곳이 피해를 봤다.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은 지난해 1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과학을 의도적으로 파괴했다"고 밝혔다.

◇ 우크라이나 연구인력의 10% 떠나... 안팎으로 부흥 움직임

스비틀라나 아르부조바 우크라이나 국립의학학회 회원이자 영국 엑서터대 연구원은 네이처에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다"며 "동료들은 해외로 이주하거나 우크라이나 서부의 기관에 정착해 원격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마치쉐브스카야 이리나 연구원은 "학부를 마친 타라스셰브첸코대도 러시아의 공격을 받았지만 시약과 장비를 구해 실험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동물학을 가르쳤던 교수도 군대에 합류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리나 연구원은 "우크라이나의 과학을 복구하는 데 수년이 걸리겠지만 지원을 받아 이겨낼 것"이라며 "박사과정을 마치고 우크라이나에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픽=손민균

◇ 전쟁 1년, 두 편으로 나뉜 국제 연구협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은 국제 연구 지형도 뒤바꿨다. 네이처는 24일 국제학술지 인용 색인인 스코푸스(Scopus)에 나타난 공저자 데이터를 분석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이 국제 연구 협력에 미친 영향을 소개했다.

우크라이나 과학계의 해외 협력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은 2021년 비중이 약 21%에서 2022년 약 13%까지 떨어졌다. 반면 우크라이나 과학자와 폴란드 국적의 공저자가 포함된 논문의 비율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과학계도 지각변동이 있었다. 러시아 과학자와 중국, 인도와 공동 집필한 논문이 증가한 반면 미국, 독일 공저자와 함께 발표한 논문의 비율은 감소했다. 이는 전쟁 직후 많은 연구 기관이 러시아와의 협력 활동을 중단한 결과로 보인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독일은 러시아 과학자들과 공동 논문을 작성하는 것을 반대했다. 엘스비어(Elsevier) 출판사의 분자과학저널(Journal of Molecular Science)은 러시아의 연구 기관 소속 과학자들의 논문 투고는 받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키어런 플래내건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원은 "공동 저자가 실제 공동 연구 패턴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면서도 "러시아와 미국, 독일 등 서방 국가의 연구 협력이 감소한 것으로 보이며 이런 추세는 2023년에 가속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래픽=손민균

◇한국과 우크라이나 러시아 과학자 공동 연구엔 변화 없어

조선비즈가 스코푸스의 공저자 데이터를 추가 분석한 결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연구 분야에서 한국과 우크라이나와의 협력은 줄어드는 추세를 유지했다.

한국 과학자들이 우크라이나 연구진과 함께 발표한 논문의 비율은 2018년 5.7%까지 올라갔다가 2019년에는 4.39%, 2020년 3.97%, 2021년 3.4%로 계속 떨어졌다. 전쟁이 일어난 2022년에는 3.34%로 2021년과 큰 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와 연구협력을 잇따라 중단하면서 한국도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 6호 발사와 차세대중형위성 발사 등 위성 발사 사업이 중단되는 등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과학 연구에선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 전과 후 한국 과학자들과 러시아와의 공동 논문 비율은 3~4% 사이로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이 일어난 2022년은 3.93%, 2023년 현재까지는 3.71%로 비교적 변화가 적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전쟁이 발발한 직후 러시아와의 공식 교류를 중단하고 행사도 취소했다"며 "우크라이나와의 교류도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현재 논의 중인 지원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조선비즈가 국제학술지 인용 색인인 스코푸스(Scopus)의 공저자 데이터를 추가 분석하니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과학 협력은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그래픽=편집부

해외 각국에선 우크라이나 과학 재건을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영국 학술원과 영국 왕립학회는 우크라이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펠로십을 지원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사무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시몬스 재단은 우크라이나 과학자와 박사과정생 등 405명에게 120만 달러(약 16억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하는 계획을 공개했다.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도 우크라이나 과학자를 속속 영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