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는 다양한 생태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따뜻한 날씨에 풀이 무성한 열대초원, 거대한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선 온대우림, 황량한 사막처럼 온도, 습도 같은 환경도 다양합니다. 동·식물들은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생태계에서 살아가며 하나의 집단을 이룹니다. 이를 생물군계, 영어로는 바이옴(Biome)이라고 부릅니다.

지구의 바이옴처럼 비슷한 환경에서 함께 모여 살아가는 존재들은 우리 몸 속에도 있습니다. 장, 입, 피부처럼 인체에서 살아가는 미생물이 만든 또 하나의 생태계,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미생물 군집체)’입니다. 이들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때로는 질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이해하는 건 질병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차광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천연물인포매틱스연구센터 선임연구원과 함께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과 바이옴의 합성어로, 인체에 살고 있는 미생물과 그로부터 나온 모든 물질을 말한다. /네이처

◇미생물들이 모여 만든 또 하나의 생태계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microbe)과 바이옴(biome)이 더해져 만들어진 말입니다. 미생물들이 이루고 있는 바이옴이라는 의미입니다. 과학적인 의미에서 마이크로바이옴은 동·식물의 몸에 살고 있는 모든 미생물의 유전체, 전사체, 단백체를 포함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물질의 총합을 말합니다.

마이크로바이옴과 장내미생물군총을 햇갈려 사용하기도 합니다. 장내미생물군총은 동물의 장에 살고 있는 미생물군총(microbiota)을 의미합니다. 미생물군총은 마이크로바이옴과 달리 살아 있는 미생물의 집단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 수는 10조~100조개로 추정되는데, 마이크로바이옴에는 이보다 3배가량 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생물들은 우리 몸 곳곳에서 살아가면서 인체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여러 물질을 만들어 인체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가령 사람의 대장의 마이크로바이옴에 있는 미생물은 장내미생물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들은 사람이 먹은 음식이 소화돼 대장까지 이동하면 이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합니다. 대신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남은 물질들은 대장에서 흡수돼 사람도 함께 에너지원으로 활용합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2006년 제프리 고든 미국 워싱턴대 교수의 논문이 발표되면서 과학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고든 교수는 무균 상태인 생쥐에게 각각 비만 생쥐와 마른 생쥐의 대변을 주입해 몸무게에 변화가 생기는지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비만 생쥐의 대변을 이식받으면 몸무게가 늘고, 마른 생쥐의 대변을 이식받으면 몸무게가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대변에 있는 무언가가 생쥐의 생리활동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이전까지 미생물 연구는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미생물을 찾고, 미생물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를 시작으로 장내의 독특한 환경이 쥐의 몸무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고, 과학계는 대장에 살고 있는 미생물 군집에 주목했습니다. 미생물 연구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과 인체 간 영향. /질병관리청

◇사람과 마이크로바이옴의 상부상조

이후 다양한 연구 기법이 발전하면서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습니다. 우선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세포가 하지 못하는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인체 마이크로바이옴의 90%가량을 차지하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먹은 음식 중 일부는 스스로 소화하지 못하거나 소화하기 어려운 영양분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탄수화물이 대표적인데, 대장의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의 탄수화물 소화 효소보다 100배 효과가 좋은 효소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효소가 미처 소화하지 못한 탄수화물은 대장에서 유용한 물질로 바뀌고, 장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 몸에서 합성하기 어려운 비타민을 대신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장내 미생물들은 비타민 B군, 비타민 K, 비타민 C을 대량으로 만들어냅니다. 음식으로 섭취하는 비타민이 부족하더라도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큰 문제 없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이 외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완충지대 역할도 마이크로바이옴이 담당합니다.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외부 미생물이 인체 세포에 닿기 전에 마이크로바이옴과 만나는데, 마이크로바이옴에는 다른 미생물을 죽일 수 있는 항생물질도 여럿 포함돼 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의 기능은 질병과도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주목을 받게 된 비만 연구 이후에 당뇨, 고지혈증, 지방간 같은 대사성 질환과 연관성이 활발히 연구됐습니다. 또 류마티스 관절염·바이러스 감염 같은 면역 질환, 파킨슨병·자폐증 같은 신경 질환에서도 마이크로바이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 치료에 활용되는 대변 미생물 이식용 캡슐. 정상인의 장내 미생물을 대변을 통해 환자에 주입해 이 감염증을 치료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풍부한 대변으로 질병 치료도

마이크로바이옴이 인간의 건강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변 이식(FMT)이 대표적입니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 들어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식해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입니다.

국내에서도 약물로는 치료가 어려운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 환자에 한해 대변 이식 치료를 할 수 있고, 미국·호주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도 기존 치료법이 듣지 않는 일부 난치성 환자에게 대변 이식 치료가 가능합니다. 지난해에는 호주에서 처음으로 대변에서 추출한 마이크로바이옴으로 만든 의약품이 허가 받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과거에도 대변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했다는 자료들이 여럿 있다는 점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의 11대 왕이었던 중종은 열병에 걸려 야인건수를 먹고 건강을 회복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야인건수가 사람의 대변으로 만든 약입니다. 이외에도 4세기 중국에서는 갈홍이라는 의원이 식중독으로 설사 증세가 있던 환자에게 대변을 먹여 낫게 했다는 기록이 있고, 17세기 이탈리아에서도 건강한 동물의 대변을 병에 걸린 동물에게 먹이는 치료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변 이식 치료법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서 아직까지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9년 대변 이식 치료를 받은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국가에서는 기존 치료법이 듣지 않는 환자에 한해 대변 이식 치료를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대변 이식 치료에서 부작용이 일어나는 이유는 ‘건강’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건강한 사람이라도 대변을 채취하기 전에 문제가 생기면 마이크로바이옴이 급변하거나, 아직 마이크로바이옴에 포함된 모든 미생물의 종류를 알지 못해 면역력이 낮은 사람에서는 질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대변 이식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치료법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을 선별하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를 빗대 ‘제2의 장기’ ‘제2의 유전체’라고도 부릅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내 몸 속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나인 셈입니다.

참고자료

Nature, DOI : https://doi.org/10.1038/nature05414

Therapeutic Advances in Gastroenterology, DOI : https://doi.org/10.1177/1756283X15607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