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3일(현지시각)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에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발전에서 LLNL의 핵융합 연구시설 ‘국립점화시설(NIF)’ 연구팀이 중대한 진전을 이뤘다고 발표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발표를 할 것이라는 풍문까지 돌 정도였다.
실제 발표는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진행했지만, 발표 내용은 과학계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LLNL 연구팀은 이날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 반응 실험에서 2.05메가줄(MJ·줄은 에너지의 국제표준 단위)을 투입해 3.15MJ를 얻었다고 밝혔다. 1.1MJ은 주전자의 물을 끓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에너지지만 중요한 건 핵융합 발전에서 처음으로 인풋보다 아웃풋이 많았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부터 가능성으로만 여겨졌던 핵융합 발전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첫 사례다.
LLNL은 고에너지 레이저 192개를 이용한 방식의 핵융합 발전을 추진했는데, 실험시설 건설에만 12년이 걸렸고 건설비용은 4조6500억원에 달했다. 연간 연구비만 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마어마한 연구비가 투입된 끝에 성과가 나왔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LLNL 연구팀의 방식은 ‘점화’에 성공했을 뿐 발전을 지속하는 건 아직 시도도 못 하고 있다. 킴벌리 부딜 LLNL 소장도 12월 기자회견에서 상업적 발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기반 기술 연구에 노력과 투자를 집중하면 몇십 년 내에 발전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미국 LLNL이 선보인 레이저 방식의 핵융합 발전은 실제로 구현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이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하는 것도 발전보다는 군사적인 목적에서 활용 가능성을 보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한국을 비롯해 러시아나 유럽, 일본, 중국 등 다른 대부분의 국가가 택한 핵융합 발전 방식은 ‘토카막’이다. 토카막은 태양 중심보다 뜨거운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강력한 자기장으로 용기 안에 가둬놓고 그 안에서 핵융합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온도는 1.5억도다. 이런 고온의 플라스마를 100초 정도 유지하면 핵융합 발전이 지속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은 토카막 방식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1억도의 플라스마를 30초 정도 유지하는데 성공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길게 유지한 기록이다. 핵융합연구원은 2024년에 100초, 2026년에는 300초까지 유지 시간을 늘린다는 목표다. 조선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거대연구정책관은 “미국이 (레이저) 핵융합 실험에 성공한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핵융합 발전이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핵융합 발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카막 방식의 핵융합 발전은 전 세계 주요국이 ‘따로 또 같이’를 택하고 있다.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연쇄반응을 얻는 실험이 워낙 쉽지 않고 많은 비용이 들다보니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프랑스 카다라슈에 짓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는 건설비용만 20조원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다.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운영하고 있는 핵융합 실증로 ‘KSTAR’의 25배 규모다. 한국을 비롯해 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ITER는 2025년부터 2030년까지 1단계 시운전을 진행하고, 2030년부터 2035년까지 2단계 시운전을 계획하고 있다. 2035년에 본격적인 핵융합 에너지 대량실증에 나설 계획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공정률은 77.7%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올해는 ITER 장리 조립과 설치 등 실험로 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며 “ITER에 들어갈 증식블랑켓 시험 모듈(TBM)을 유럽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등 관련 품목 수주와 한국 전문가의 ITER 고위직 진출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ITER 건설 과정에서 한국이 수주한 금액은 지금까지 6973억원에 달한다.
ITER가 2035년에 목표대로 핵융합 에너지 실증에 성공하면 그 때부터는 각자도생이다.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장은 “1942년 핵분열 에너지 연쇄반응이 성공한 이후 원자력발전소가 지어지기 까지 13년이 걸렸다”며 “핵융합 에너지도 마찬가지로 2035~2038년에 연쇄반응이 성공하면 13년 정도가 지난 뒤인 2050년에는 상용 발전소를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KSTAR를 만들고 꾸준히 핵융합 플라스마 운전기술을 시험하는 것도 이 때를 위해서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제18차 국가핵융합위원회를 열고 ‘핵융합 실현을 위한 전력생산 실증로 기본개념’을 의결했는데, 핵융합 상업 발전이 가능한 시기에 맞춰 미리 실증로 건설·운영의 기본 방향을 정한 것이다.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럽(EU)은 ITER 실험 결과를 본 뒤 2030년대 후반에 실증로 건설 여부를 결정하고 2050년부터 시운전에 돌입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일본은 2025년부터 실증로에 대한 공학설계를 진행 중이고, 2035년에 실제 건설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미 공학 설계에 착수한 상태다. 2035년부터 공학실험로를 운영하고 실제 실증로는 2050년에 건설할 계획이다.
이날 정부의 기본개념에 따르면 핵융합 실증로는 최대 전기출력 500MWe 이상을 목표로 한다. 유럽 최대 700MWe급, 일본 500MWe급, 중국 700MWe급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레이저 방식과 별도로 미국 역시 실증로 건설 계획이 있다. 최대 전기출력은 50~100MWe급으로 낮지만 2028~2032년에 건설을 진행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오태석 과기정통부 차관은 “한국을 포함해 5개국이 실증로를 만들고 있다”며 “어떤 건 자체개발해야 하고 어떤 건 국제협력도 해야 하는데, 기후변화나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반드시 가야하는 길인 만큼 선도국들과 경쟁하면서 잘 헤쳐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