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는 1983년생이다. 나이를 따지는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생은 아직 젊은 실무진 축에 속하지만, 과학계에선 위상이 남다르다.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는 연구자의 역량과 아이디어가 빛나는 시기로 불린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들이 자신의 핵심 연구를 처음 시작한 평균 연령이 37.9세로 나타났다. 조선비즈는 한국의 기초 과학과 공학을 이끌 차세대 리더들을 독자들께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한다. 젊은 과학자들은 한국공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 '제2의 허준이'를 넘어서 한국의 첫 노벨상 과학 부문 수상자, 그리고 한국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인재가 이들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사람이 호흡할 때 들이마시는 산소 두 번 중 한 번은 바닷속에 있는 식물성 플랑크톤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흔히 아마존과 같은 열대 우림이 인간에게 필요한 산소를 책임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바다 속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대기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식물성 플라크톤은 광합성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소를 저장하는 '천연 탄소저장소' 역할도 한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의 기반이기도 하다. 식물성 플랑크톤을 유지하기 위해선 먹이가 되는 영양염이 충분해야 한다. 수온도 식물성 플라크톤의 생존에 중요한 요소다. 수온이 오르면 바다 속 용존 산소량이 부족해지면서 식물성 플랑크톤의 생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양 생태계 순환의 기본이 되는 식물성 플랑크톤과 영양염, 용존 산소량을 탐구하는 학문을 '해양생지화학'이라고 한다.

해양생지화학은 지구 대기 순환의 한 축을 담당하는 만큼 기후변화 시대에 중요한 학문이다. 하지만 해양의 환경을 예측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연구가 어려운 학문이기도 하다.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연구원과 클라우스 하셀만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가 지구의 기후변화 예측 모델을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기후모델에는 온도나 바람, 강수량 같은 물리적 변수만 적용되고 있었다.

박종연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가 이달 1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북대

해양생지화학을 정확하게 예측할 방법은 없을까. 기후모델에 해양생지화학 변수를 적용한 논문으로 전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은 학자가 있다. 기후모델 개발로 명성을 얻은 미국 프린스턴대나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 같은 세계적인 연구기관이 아니라 전라북도 전주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박종연(42)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기후모델에 해양생지화학 변수를 적용하면 조업량과 탄소 농도, 심지어 미세먼지까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기후모델을 정교하게 만들수록 지구를 최대한 현실적으로 예측할 수 있죠."

박 교수가 설명한 해양생지화학을 적용한 기후모델의 이점이다. 기후모델로 예측할 수 있는 인류의 미래는 무엇일까. 조선비즈는 이달 1일 전북대 연구실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지에 실린 '기후모형을 이용한 해양생태 예측' 논문으로 호평을 받았다.

"기후모델은 사람이 컴퓨터 코딩으로 만들어 데이터를 입력하는 일종의 '지구 시스템'이다. 그동안 기후모델은 온도나 강수, 바람과 같은 물리적인 변수를 주로 적용했다. 내가 한 연구는 조금 더 확장해 플랑크톤과 용존 산소량, 영양염 등의 데이터를 넣어 예측한 것이다. 기후모델 그룹이 가장 큰 미국 프린스턴대 지구물리유체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었는데, 관련 프로젝트에 우연히 참여하게 됐다. 당시에는 이게 엄청난 프로젝트라는 생각도 못 했다."

-해양생지화학이 중요한 이유, 그리고 기후모델에 적용되면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기존에 적용되던 물리적인 변수는 온도와 강수, 바람처럼 인간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해양생지화학은 바닷속 식물성 플랑크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용존산소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식물성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얼마나 할지, 소멸하는 것은 아닌지, 탄소를 배출할지, 흡수할지 이런 것들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인류가 지금처럼 탄소를 계속 배출하다가는 기후위기로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섭씨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는 게 바로 식물성 플랑크톤의 역할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면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지 참고할 수 있다. 해양생지화학은 인류의 미래, 앞으로 수십 년 그리고 더 나아가 100년까지의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데에 중요하다."

-기후모델에 해양생지화학을 적용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있나.

"기후모델은 사실 방정식에 현실의 데이터를 넣어보는 시스템이다. 대신 정말 현실에 가깝게 미래를 예측하려면 '자료 동화'가 중요하다. 지금 기후모델에 적용하는 물리적 변수는 약간의 차이가 생겨도 결과에 큰 변화가 없다. 예컨대 바람 같은 경우 초속 1m의 오차가 발생해도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생지화학 변수는 이보다 훨씬 민감하다. 작은 오차에도 결과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그만큼 민감한 변수라는 뜻이다.

또 하나는 관측 데이터가 부족하다. 기후 관련 물리적 변수는 전 세계적으로 1950년대부터 데이터가 쌓였다. 해양도 관측했지만, 주로 해양 표층을 중심으로만 데이터가 쌓였다. 관측 정보를 모델에 입력해야 미래를 예측할 수가 있는데, 데이터가 부족하니 정보를 넣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해양생지화학은 어떻게 관측하나.

"심해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측정을 한 뒤에 해양 표면으로 나와서 인공위성에 데이터를 보내는 관측기가 있다. 한국도 관측에 나서고 있지만, 관측기에 들어가는 센서 하나가 수천만 원에 이르기 때문에 장비를 많이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은 몇백 개, 일본은 100개의 관측기로 측정하고 있다."

박종연 전북대 교수 연구팀이 기후모델로 예측한 식물성 플랑크톤 분포도. 붉은색은 식물성 플랑크톤이 95% 이상, 회색은 80% 미만인 것을 의미한다. /Science

박 교수는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만 해도 과학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인 자신을 보며 단지 '책 보면서 공부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기후과학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대학수업부터였다. 코딩으로 대기를 시뮬레이션했는데, 방정식을 시각화해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데 매력을 느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들어간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은 박 교수의 지금이 있게 한 곳이다. 해양과 대기를 물리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던 박 교수는 KIOST에서 플랑크톤을 처음 접했다. 그는 플랑크톤 활동으로 발생하는 엘니뇨가 기후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면서 연구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기후모델 연구에 영향을 준 스승이 따로 있나.

"해양과기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선배들한테 많이 배웠다. 석사까지는 주로 대기와 해양의 물리적인 변화에 관심을 뒀다. 그러다 해양과기원에 들어가서 플랑크톤을 처음 보게 됐다. 너무 다르지 않나. 이미 플랑크톤이나 해양생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선배들의 아이디어로 플랑크톤이 해양의 온도에 미치는 영향, 엘니뇨가 한국 기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의 경쟁력이 생겼고, 덕분에 독일과 미국에서 연구할 수 있었다."

-과학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장래 희망에 과학자라고 썼던 것 같긴 한데, 단지 성향이 책 보면서 공부하는 게 맞겠다 정도였다. 대학 진학 때도 미래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자는 마음에 환경이 들어가는 과를 선택했다. 사실은 들어가서도 그렇게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대기 분야에서 컴퓨터 코딩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그래서 기후모델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수업할 때도 코딩과 관련된 얘기를 학생들한테 많이 하는 편이다."

박종연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가 이달 1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북대

코딩을 이용한 기후 시뮬레이션에 재미를 느꼈던 박 교수는 요즘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최근 기후 예측 시스템에 딥러닝을 도입하려는 학계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다만 턱없이 부족한 해양생지화학 관측 데이터는 여전히 숙제처럼 남아 있다. 또 한반도 상황을 반영한 '맞춤형 기후모델'도 박 교수가 꿈꾸고 있는 미래 중 하나다.

-최근 매진하고 있는 연구는 무엇인가.

"최근 AI로 기후를 예측하려는 시도가 많이 나오고 있다. 기후모델과 같은 역학적인 모델 외에도 그동안의 통계를 활용해 기후를 예측하는 딥러닝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딥러닝이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지금은 누구나 공부하면 할 수 있는 영역인 것 같다. 앞으로 기후 외 다른 분야에서도 딥러닝이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걸로 보인다. 다만 관측 데이터가 많아야 훈련을 시킬 수 있는데,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부족한 데이터는 기후모델에서 나온 결과들로 채우고 있다."

-기후 분야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 기후모델은 미국에서 만든 것을 쓰는 것인데, 한국 상황에 맞춰서 하나 개발하고 싶다. 어업을 할 때 특정 어종의 변화와 같은 굉장히 구체적인 조건들이 필요하다. 이건 실제 어민들과 그들과 관련된 정책에 필요한 것들이다. 그래서 지구 단위에서 보고 있는 기후모델을 한반도 주변으로 좁혀서 만들고 싶다. 하지만 쉽지 않다. 지금은 기후모델을 20~25㎞ 단위로 보는데, 1㎞ 단위로 구체화해야 한다. 이걸 구현하면 어종에 따른 서식지부터 한 해 어획량까지 예측할 수 있다."

-서울이 아닌 지방거점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아쉬운 점도 있을텐데.

"일단 사람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것 같다. 아무래도 연구자가 많으면 더 깊게 연구를 할 수 있고 시너지도 낼 수 있다. 하지만 지방에는 숙련된 연구원이나 박사후연구원이 남으려고 하지 않는다. 지방에 있는 연구자들도 모두 훌륭하다. 최근 국내 기후과학자들의 연구력을 놓고 본다면 전 세계적으로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수십 명이 집중하는 연구를 우리는 몇 사람이 해내야 한다. 인재를 잡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박종연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1981년생

2004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학사

2009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석사

2010년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연구원

2015년 독일 함부르크대 막스플랑크 기상 연구소 지구과학 박사

2015년 한국·유럽 과학기술학술대회(EKC) 최우수 젊은 과학자상

2016년 독일 함부르크대 막스플랑크 기상 연구소 박사후연구원

2016년 미국 프린스턴대 지구물리유체연구소 박사후연구원

2018년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조교수

2018년 한국기상학회 과학자상

2020년 100대 국가 연구개발 성과

2022년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