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송곡과학기술상을 받은 김태일 성균관대 교수가 거미 다리의 감각을 모방한 센서를 설명하고 있다. 김 교수는 잡음을 없애는 원리도 거미에서 찾아 센서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였다./김지호 기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지난 10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서울 성북구 본원에서 개원 기념식을 갖고 김태일(46)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에게 제25회 송곡과학기술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KIST 초대 원장과 제2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고 송곡(松谷) 최형섭 박사가 기탁한 기금으로 1999년 제정됐다. 금속공학자이자 과학행정가였던 고인을 기려 신소재개발연구와 과학기술정책관리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올해는 신소재개발연구에서 수상자를 내는 순서였다.

김태일 교수는 거미 감각기관을 모사한 의료용 바이오 센서를 구현한 공로로 수상했다. 금속이나 반도체 같은 전통적인 신소재가 아니라 바이오 분야에서 수상자가 나온 것은 지난해 한세광 포스텍 교수가 당뇨 진단용 스마트 콘택트렌즈 개발 성과로 수상한 데 이어 두 번째이다. 김태일 교수는 시상식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신소재 연구는 생명과학과 화학공학, 기계공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가 융합하는 추세”라며 “특히 자연을 모방해 다양한 소재가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거미 다리의 선택적 감각 모방

–2014년 국제 힉술지 네이처에 거미의 진동 감각기관을 모사한 초고민감도 센서를 발표했다. 어떤 내용인가.

“거미는 발목에 있는 작은 균열을 이용해 미세한 진동을 감지한다. 거미 다리의 딱딱한 외골격은 백금 박막으로, 내부의 부드러운 살은 고분자 물질로 대체한 센서를 만들었다. 거미 발목처럼 미세한 균열이 벌어지거나 좁혀지면 전기저항이 달라지는데 이를 전기신호로 바꿔 진동을 감지한다.”

–지난해에는 사이언스지에 다시 거미를 모방한 소재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거미 감각기관 모사 센서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거미는 거미줄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먹잇감이 걸렸는지 안다. 하지만 비와 바람에 흔들리는 진동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의 진동은 낮은 주파수로서 거미에겐 일종의 노이즈(noise·잡음)인 셈이다. 거미는 먹이가 거미줄에 물려 흔들릴 때 발생하는 고주파 진동만 골라 감지한다. 이를 모방했다.”

–센서가 잡음은 걸러내고 원하는 신호만 감지한다는 말인가.

“거미 다리에 손톱이나 머리카락 성분인 큐티클로 된 판이 있다.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람 무릎의 연골을 생각하면 된다. 큐티클 판은 저주파 잡음이 오면 부드럽게 받아들여 진동을 흡수하고, 고주파 진동이 올 때만 딱딱해진다. 이 방식으로 낮은 주파수의 잡음은 없애버리고 먹이가 걸린 고주파 진동만 감지한다. 이를 모방한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다. 이 연구는 지금 스탠퍼드대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는 박병학 박사가 대학원에 입학하던 2014년부터 진행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료용 센서에 활용할 수 있나.

“병원에 누워 있는 환자는 몸에 각종 센서를 부착하고 생체신호를 실시간 탐지한다. 그런데 환자복이 쓸릴 때도 센서가 작동한다. 거미 모방 센서를 쓰면 이런 잡음은 빼고 원하는 생체신호만 감지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도 걷거나 뛰면서도 매우 민감한 생체신호를 측정할 수 있다.”

올해 송곡과학기술상을 받은 김 교수는 "바이오 센서가 잡음을 빼고 필수 인체 신호만 정확히 감지하면 심장 이상 환자의 돌연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김지호 기자

◇자연에서 센서 기능 높일 아이디어 얻어

–어떻게 거미 다리를 모방할 생각을 했나.

“처음에 기계적인 움직임을 감지하는 고성능 센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센서와 거미의 감각기관이 원리가 같았다. 논문에서 거미 다리 이야기를 풀면서 센서에 대한 이론을 설명했다.”

–처음부터 자연을 모방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결국은 모방으로 갔다. 센서를 10년 정도 연구해보니 잡음 문제가 많았다. 잡음을 없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다시 거미를 살폈다. 거미 다리의 큐티클 판이 충격을 다르게 흡수하는 것을 보고 잡음을 없앨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거미를 직접 연구한 것은 아닌가.

“거미 다리에 사람 무릎의 연골과 같은 충격 흡수 조직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1980년대부터 알려졌다. 센서 성능을 높이는 방법을 찾으면서 당시 연구를 확인했다.”

–거미 센서가 인명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심장에 생기는 부정맥과 같은 문제는 예측할 수 없다. 지속적으로 특정 신호만 감지할 수 있으면 이런 문제로 인한 돌연사를 막을 수 있지만, 현재까지 방법은 움직임을 멈추고 측정하는 방법이라 지속적 측정이 어려웠다. 또한 뇌파도 노이즈를 줄이면서 지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 파킨슨병이나 자폐 환자에서 생기는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필요할 때만 약물을 투여하고 전기 자극을 주는 시스템과 연결해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잡음을 없애는 센서 소재는 의료 외 어떤 곳에 쓸 수 있을까.

“아파트나 자동차에 들어갈 충격 흡수용 소재로 개발할 수도 있다. 아파트 층간 소음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데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는 진동은 그대로 두고 문제가 되는 소음만 차단할 수 있다.”

◇세상 떠난 선배 연구자에게 논문 헌정

김태일 교수는 2014년 최만수 서울대 교수와 함께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1년 전 학회 참석차 미국 하와이에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41세에 세상을 떠난 서갑양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에게 헌정해 화제가 됐다. 고(故) 서 교수가 생전 아이디어를 내고 상당부분 연구를 진행한 것을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미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하는 ‘테크롤러지 리뷰’지가 2004년 ‘올해의 젊은 과학자 100인’ 중 한명으로 선정할 정도로 세계적 주목을 받던 과학자였다. 도마뱀 발바닥을 모방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태양전지를 옮기는 접착테이프를 개발했으며, 딱정벌레의 날개를 모방해 찍찍이라고 불리는 벨크로보다 접착력이 3배 강력한 접합 장치도 만들었다.

–네이처 논문을 서 교수에게 헌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논문 제1 저자인 강대식 박사(현 아주대 교수)가 서 교수의 제자였다. 서 교수가 사고를 당하고 내가 논문 마무리 작업을 했다. 서 교수와 나는 둘 다 지도교수가 이홍희 서울대 교수다. 서 교수가 실험실의 선배였다. 서 교수가 2004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하고 실험실이 다 갖춰지지 않았을 때 같이 연구한 인연도 있다.”

–네이처 논문처럼 고 서갑양 교수에게 헌정한 논문이 많다고 들었다.

“서 교수는 생전 저명 학술지에 1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학계 최고 수준의 50대 과학자도 100편을 넘기 쉽지 않은데 학부부터 박사학위까지 모두 국내에서 마친 토종과학자가 40세를 갓 넘긴 나이에 그런 성과를 올린 것이다. 돌아가시고 헌정된 논문도 40~50편은 될 것이다.”

–자연을 모방하는 아이디어도 서 교수에게 얻었나.

“서 교수는 실험실에서 도마뱀붙이를 기를 정도로 자연 모방에 열중했다. 논문에 자연의 이야기를 입혀 주목도를 높이는 데 탁월했다. 후배들도 그런 방식의 접근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김 교수의 거미 연구는 그런 접근 방식을 발전시킨 셈인가.

“거미의 감각 원리를 그대로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센서 성능을 더 발전시킨 데 의미가 있다. 그 아이디어를 다시 거미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발전된 연구라고 볼 수 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마이크로 LED가 바늘 귀에 들어간 모습. 김태일 성대 교수는 미 일리노이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존 로저스 교수와 마이크로 LED를 생쥐 뇌에 이식했다. 마이크로 LED가 빛을 발생시키자 생쥐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돼 행동이 달라졌다. 이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에 발표됐다./미 일리노이대

◇파킨슨병 환자 치료의 새 길 열어

–2009년 서울대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일리노이대에 박사후 연구원으로 갔다.

“일리노이대의 존 로저스 교수(현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몸에 달라붙어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른바 ‘전자 피부’의 대가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유학을 많이 갔다. 실험실에 연구원이 100여명 있는데 그중 3분의 1이 한국인이었다. 한국 연구자들은 손재주가 좋아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구현해내 인기가 높았다.”

–미국에선 어떤 연구를 했는가.

“빛을 내는 반도체인 LED(발광다이오드)를 유연기판에 만들어 디스플레이로 사용하고, 이 소자를 바늘 끝에 붙일 정도로 작게 만들어 뇌에 집어넣는 연구를 했다. 생쥐의 유전자를 변형해 뇌가 빛을 받으면 쾌감을 주는 도파민을 분비하게 했다. 생쥐 뇌에 마이크로 LED를 넣고 작동시키면 생쥐가 싫어하는 밝은 곳에 계속 머물렀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 것이다. 2013년 이 결과가 사이언스에 실렸다.”

–뇌에 빛을 주는 기술은 어디에 쓰이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퇴행성 신경질환인 파킨슨병은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아 생긴다. 뇌에 전류를 흘려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는 치료법이 있지만, 전극을 이식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인체에 해가 없는 마이크로 LED를 넣어 빛으로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면 그런 문제가 없다. 물론 빛에 반응하도록 유전자를 바꿔야 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거미 센서나 마이크로 LED 모두 몸에 붙이는 이른바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센서인데, 상용화된 사례가 있나.

“미국 스포츠음료 회사인 게토레이는 에피코어 바이오시스템과 운동선수용 전자피부인 ‘지액스(Gx)’를 내놓았다. 에피코어는 로저스 교수가 창업했다. 지액스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색 변화를 토대로 탈수 여부를 감지한다. 에피코어는 2020년 지액스를 코로나19 환자와 의료진에게도 적용했다고 들었다. 지난해 월드컵에서 황희찬 선수가 골을 넣고 유니폼을 탈의하는 세리머니를 했을 때 검은 조끼가 눈에 띄었다. 거기에도 운동량을 측정하는 웨어러블 센서가 들어갔다.”

김태일 교수(왼쪽)가 대학원생들과 연구를 하고 있는 모습. 김 교수는 "10분 발표와 50분 토론을 통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눈 것이 연구의 노하우"라고 말했다./성균관대

◇10분 발표, 50분 토론이 연구 노하우

–세계적 학술지에 잇따라 논문을 발표한 성과는 실험실의 독특한 노하우 덕분이라고 들었다.

“실험실에 대학원생이 20명 정도 된다. 최근 박사과정 학생 7명이 졸업해서 15명으로 줄었다. 적지 않은 숫자다. 교수가 다 챙길 수 없어 스스로 연구를 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세미나를 하면 10분 발표, 50분 토론을 한다. 이때 온갖 아이디어가 다 나온다. 거미 센서의 잡음을 없애는 방법도 그렇게 나왔다.”

–최근 대학 실험실마다 학생이 부족하다고 난리이다.

“대학원생이 준 것은 사실이다. 숫자보다 연구에 열의를 가진 학생이 줄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취업이 안 돼서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어 아무래도 동기 부여가 잘 안 된다. 미국도 어려운 공부를 안 하려는 분위기지만 아직도 무조건 연구를 잘 하려고 전 세계에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이 많다. 한국은 이공계 기피 현상이 있어 어려움이 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선의 교육을 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답을 못해도 좋으니 계속 질문을 하라고 유도한다. 그 질문이 다음 논문의 주제가 될 수도 있다.”

–대학의 연구 기능을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의 가장 좋은 방법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반도체 이론을 배웠다면 다음에는 첨단 장비를 다뤄보고 소자도 만들어보면서 익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체험형 학습으로 연구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궁금한 점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는 재미는 연구를 안 해보면 모를 일이다.”

–바이오 연구가 결실을 보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지 않나.

“미국 FDA(식품의약국)에서 허가를 받으려면 10년이 걸리니 대기업이 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하기 좋은 분야인데 우리나라가 약한 업종이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센서 기술로 만든 진단 키트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몸에 전자피부나 센서를 장착하고 10년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누구나 받아들일 것이다. 바이오의 미래는 확실하다.”

☞김태일 교수

1977년 생. 2003년 성균관대 화학공학부를 졸업하고 2009년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13년까지 미국 일리노이대의 존 로저스 교수 실험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다. 세계 양대 과학 학술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잇따라 논문을 발표했다. 2013년 생쥐의 뇌에 초소형 LED를 심고 빛을 발생시켜 도파민을 분비하는 연구로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 해 한국으로 돌아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가 되고, 이듬해인 2014년 거미의 진동 감각을 모방한 바이오 센서를 개발해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했다. 2022년에는 거미에서 잡음 신호를 없애는 원리를 찾아 바이오 센서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인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현재 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와 휴먼ICT융합학과 겸임 교수도 맡고 있다.

참고자료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bj9912

Nature, DOI: https://doi.org/10.1038/nature14002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1232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