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오리진의 뉴 글렌 로켓 발사 상상도./Blue Origin

우주개발 경쟁에서 일론 머스크에 계속 밀리던 제프 베이조스가 반격의 기회를 얻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지난 10일(현지 시각) “화성 자기권 무인(無人) 탐사선을 제프 베이조스가 세운 블루 오리진의 뉴 글렌(New Glenn) 로켓으로 발사하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나사는 2024년 말 화성 자기권 탐사선인 ‘에스케이페이드(ESCAPADE)’ 2기를 뉴 글렌 로켓에 실어 발사하기로 했다. 뉴 글렌은 높이 98m, 지름 7m의 2단형 로켓으로,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존 글렌의 이름을 땄다. 액체산소와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쓴다. 지구 저궤도에는 45t 무게의 탑재체를 쏘아 올릴 수 있으며, 달이나 화성 같은 심우주는 13t까지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나사는 우주 발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지난해 블루 오리진과 스페이스X, 로켓랩, 파이어플라이 등 우주로켓 개발업체 13곳과 우주 발사 대행 서비스 계약을 맺었다. 총 계약 규모는 3억 달러이다. 이 중 블루 오리진의 화성 탐사선 발사는 2000만 달러 규모로 알려졌다.

뉴 글렌이 발사한 화성 자기권 탐사선은 11개월 비행 끝에 화성 궤도에 진입한다. 태양에서 불어오는 고에너지 입자들과 화성 자기장의 상호작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예정이다. 이 정보는 우주 날씨 예보에 활용돼 나사가 추진 중인 아르테미스 유인 달 탐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블루 오리진이 뉴 글렌 로켓으로 발사할 자기권 탐사선(ESCAPADE)이 화성 주위를 돌며 관측하는 모습의 상상도./Rocket Lab USA/UC Berkeley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는 이번 계약은 나사가 스페이스X의 로켓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민간 우주 발사체 분야의 경쟁을 장려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석했다. 동시에 블루 오리진이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2000년 우주 기업인 블루 오리진을 세웠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그보다 늦은 2002년 설립됐다. 베이조스는 그동안 블루 오리진에 80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번번이 후발주자인 스페이스X에 밀렸다.

스페이스X가 팰컨9 로켓을 개발해 국제우주정거장행 화물과 우주인 운송을 맡은 것과 달리, 블루 오리진은 뉴 셰퍼드 로켓으로 지구 준궤도 우주관광을 하는 데 그쳤다. 최근에는 나사의 달 유인(有人) 착륙선 수주전에서도 스페이스X에 밀렸다. 스페이스X는 우주인터넷망인 스타링크도 운용하고 있다.

블루 오리진은 스페이스X의 팰컨9, 팰컨 헤비 로켓과 경쟁하기 위해 뉴 글렌을 개발했다. 뉴 글렌은 자체 개발한 BE-4 엔진을 사용한다. 올해 이 엔진을 장착한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ULA)의 불칸 켄타우로스 로켓이 처음으로 시험 발사될 예정이다. 뉴 글렌도 올 연말 첫 시험 발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주 발사체(로켓) 비교. 블루 오리진의 뉴 글렌(오른쪽에서 세번째)은 높이 98m로, 아폴로 프로그램에 쓴 새턴5호 로켓(맨 오른쪽)을 빼고 가장 크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뉴 글렌의 재사용 1단 로켓이다./Blue Origin

블루 오리진은 이미 뉴 글렌으로 여러 발사 대행 계약을 맺었다. 모기업인 아마존은 우주 공간에 위성 3000여기를 발사해 우주인터넷망을 구축하는 카이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블루 오리진은 지난해 4월 아마존과 카이퍼 위성 12기 발사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5월에는 달 반대편에 전파망원경을 발사하는 계약도 성사시켰다. 블루 오리진은 달 착륙선도 계속 개발하고 있다. 나사가 스페이스X의 스타십 착륙선에 이어 추가로 다른 착륙선도 선정할 움직임을 보여 블루 오리진에게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