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스탠퍼드대 의대의 박승민 박사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코넬대 공대에서 응용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대·소변 형태 분석을 통한 질병 추적에 집중하고 있다. 박 박사는 "진단 키트의 원리인 미세유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아 자연스럽게 의학 연구로 길을 잡았다"고 말했다./박승민 박사 제공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2005년 개봉한 영화 ‘아일랜드’는 부자들이 나중에 병에 걸리면 장기를 교체하려고 자신과 똑같은 복제 인간을 키우는 모습을 그렸다. 복제 인간이 건강해야 교체할 장기도 제공할 수 있다. 영화에서 복제 인간이 볼일을 보면 바로 ‘나트륨 과다 섭취’ ‘영양분 조절 권장’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변기가 복제 인간의 대·소변을 분석해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조언을 하는 것이다.

영화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과학자가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비뇨기의학과에서 강사로 있는 박승민 박사이다. 그는 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대·소변을 분석해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스마트 변기(smart toilet)’의 가능성과 해결 과제를 제시한 논평 논문을 발표했다. 박 박사는 본지와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스마트 변기로 대·소변 영상을 분석하면 변비나 과민성 대장 증후군 같은 장질환은 물론, 코로나바이러스 전파도 추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똥에 미친 과학자가 바라보는 의학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그래픽=손민균

◇대·소변 상태로 질병 진단하고 예방

–스마트 변기는 어떻게 작동하나.

“2020년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에 발표한 스마트 변기는 내장 카메라로 대·소변 사진을 찍어 10여 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었다. 대변의 색이나 크기, 소변량과 시간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 정보는 클라우드(가상 저장공간)에 저장된다. 소변에 피가 섞인 위급 상황이면 바로 의료진에게 통보할 수도 있다. 12명을 대상으로 소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해 효능을 확인했다. "

–스마트 워치나 스마트폰도 맥박이나 체온을 실시간 감지해 건강 상태를 추적한다. 스마트 변기까지 필요한가.

“나도 스마트 워치가 있지만 늘 갖고 다니지 않고 기능도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화장실은 매일 쓸 수밖에 없다. 그냥 볼일만 보면 알아서 건강 정보를 파악해주니 더 편리하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대소변 상태를 말해도 되지 않나.

“놀랍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볼일을 봤는지, 상태가 어땠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대·소변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스스로 기억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변비가 심한 환자에게 증상 일지를 쓰도록 하는데 제대로 된 정보가 되지 못한다. 스마트 변기는 사용자 대신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

–가족이 함께 쓰면 어떻게 개인을 구분하나.

“처음엔 물 내리는 손잡이에 지문인식 장치를 달았다. 나중에는 항문 주름으로 개인 식별을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람마다 항문 모양이 다 달라 지문처럼 쓸 수 있다. 서울송도병원에서 11명의 데이터를 받아 분석을 했는데 개인 구별이 가능했다.”

미 스탠퍼드대 의대 박승민 박사는 화상 인터뷰에서 "스마트 변기는 대·소변을 통해 건강상태를 추적해 병을 예방하는 정밀 건강의 핵심 수단"이라고 말했다./줌 화면 캡처

◇코로나 추적하고 우주인 건강도 책임져

–스마트 변기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했나.

“지난해 네이처 출판그룹에서 나오는 학술지에 스마트 변기로 무증상 감염자를 통한 코로나바이러스 전파를 추적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극미량의 대변을 채취해 변기에 내장된 진단키트로 바이러스 유무를 판정하는 것이다. 백화점이나 시청, 군대의 공중화장실에 설치하면 코로나 감염자를 추적할 수 있다. 듀크대는 우리와 달리 물을 내린 후 빠져나가는 하수를 검사하는 스마트 변기를 개발했다.”

–우주에도 스마트 변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협력해 2021년에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지구 저궤도 너머 심우주에서도 스마트 변기가 필요하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화성까지 가는 데 6개월이 걸린다. 1년 반 화성에 머물다가 지구로 온다면 900일 이상 우주에 머무는 셈이 된다. 우주에는 인체에 유해한 방사선 입자가 쏟아지고 중력도 거의 작용하지 않아 뼈와 근육이 손상된다. 스마트 변기는 우주인의 건강상태를 미리 점검해 병에 걸리지 않게 도울 수 있다.”

–장내 미생물인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도움이 되나.

“우리 몸에 사는 세균은 인체 세포 수보다 더 많다. 특히 장내 세균은 소화기 질환은 물론, 관절염·비만·위염과 뇌질환까지 막아준다고 알려졌다. 앞으로 스마트 변기는 대변 속의 세균까지 분석해 건강상태를 더 정확하게 알아낼 것이다.”

–스마트 변기가 똑똑한 것은 인공지능 덕분이라고 들었다.

“2017년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에서 피부 사진만 찍으면 점인지 아니면 피부암 조직인지 의사만큼 정확하게 판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인공지능으로 사진을 분석한 것이다. 저자에게 연락했더니 구글이 무료로 공개한 인공지능을 썼다고 했다. 우리도 같은 인공지능에 대변 사진을 학습시켰더니 대변 굳기 정도를 병원에서 하듯 7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2020년 네이처 자매지에 스마트 변기를 발표한 미 스탠퍼드대 의대 박승민 박사(왼쪽)와 한국인 의사들./박승민 박사 제공

◇소비자 거부감과 개인정보 보호가 상용화 관건

–기술이 거의 다 완성됐는데, 당장 상용화가 가능하지 않나.

“이번 사이언스 중개의학 논문에서 스탠퍼드대 생명윤리학자와 함께 스마트 변기 상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가장 큰 난관은 문화적 거부감이다. 의사 출신이 아닌 교수와 함께 연구한 적이 있는데 대변 사진을 넣어 보고서를 냈더니 노발대발하더라. 일반인은 더 그렇다. 미국 한 TV프로그램에서 우리 스마트 변기가 지난해 국제가전전시회인 CES에서 최악의 제품으로 뽑혔다고 방송했다. CES에 가지도 않았는데 혐오감을 드러낸 것이다.”

–병을 예방하는 기술인데 왜 그리 싫어하나.

“공중화장실에 스마트 변기를 설치하고 코로나바이러스 전파를 추적하자고 했더니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료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은밀한 개인 공간이 감시 당한다는 것이다. 스마트 워치가 감시용인가. 몰카 우려도 있지만 스마트 변기의 카메라는 대·소변 사진만 찍고 다른 곳은 절대 찍을 수 없다.”

–그 점에서 한국이 상용화에 더 나은 조건으로 보인다.

“비데 보급률만 봐도 그렇다. 일본이 80%, 한국이 60%인데 미국은 3%에 불과하다. 그러니 미국에서 스마트 변기를 보급하기가 더 어렵다. 현재 한국 비데업체인 아이젠과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처음엔 대·소변 사진으로 건강상태를 알아보는 가전제품으로 상용화하고, 나중에 극미량의 대변 시료까지 분석해 장내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까지 알아내는 의료기기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아이젠은 관장용 비데를 의료기기로 허가받은 업체여서 안성맞춤이다.”

–국내 병원과도 협력하고 있나.

“2017년 스탠퍼드 의대에 방문교수로 와 있던 당시 가톨릭 의대 원대연 교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원 교수 전공이 대장항문외과이다. 지금은 서울송도병원에서 우리와 협력하고 있다. 2020년 네이처 자매지에 실린 스마트 변기 개발 논문도 원 교수와 같이 발표했다.”

미 스탠퍼드대 의대 박승민 박사는 화상 인터뷰에서 "스마트 변기 상용화는 문화적 거부감을 없애고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줌 화면 캡처

◇미세유체 연구하다가 의대로 진로 잡아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의대로 왔나.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2002년 코넬대로 유학을 갔다. 박사학위는 미세유체 연구로 받았다. 의료현장에는 미세유체를 이용한 기기가 많다. 임신진단키트나 코로나진단키트가 대표적이다. 소변이나 타액을 조금 떨어뜨리면 위로 빨려가면서 색이 변하는 것이 미세유체 원리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의학 연구로 길을 잡았다.”

–스마트 변기는 언제부터 연구한 것인가.

“2013년 스탠퍼드대 의대 영상의학과의 산지브 샘 감비어 교수 연구실에 방문연구자로 왔다가 이듬해 강사로 자리를 잡았다. 감비어 교수는 평생 ‘정밀 건강(precision health)’을 주장한 과학자이다. 정밀 의료는 질병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라면, 정밀 건강은 건강상태를 정밀하게 파악해 병을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감비어 교수는 ‘비행기 제트엔진에 감시센서 수백개를 달아 엔진상태를 모니터하면서 고장을 예방하듯, 의료에도 그런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마트 변기는 그런 정밀 건강의 핵심 도구이다. 2020년 감비어 교수가 별세하면서 스마트 변기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박 박사의 연구가 구글이 참여하는 대형 연구 프로젝트의 하나라고 들었다.

“고 감비어 교수 주도로 스탠퍼드대가 미국인 1만명의 생활습관을 4년 동안 추적하는 ‘프로젝트 베이스라인’을 진행했다. 여기에 알파벳(구글 모기업)의 생명공학 자회사인 베릴리, 듀크대 의대도 참여하고 있다. 스마트 변기도 프로젝트 베이스라인의 일환이다. 예산이 1인당 3600만원이나 들어간 대형 프로젝트였다.”

–스마트 변기가 처음 도입되는 곳은 어디가 될까.

“개인보다 실버타운 같은 공동 거주지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송도병원이 대규모 실버타운을 갖고 있다. 이곳에 1500대 정도를 먼저 넣을 예정이다. 국내에서 추진 중인 계획도시인 스마트 시티도 적격이다. 부산 에코델타시티에 한화 컨소시엄 일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도시인 네옴 시티 측에서도 올해 시제품을 보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스탠퍼드대는 창업의 요람으로 통한다. 어떤 강점이 있나.

“스탠퍼드대에서는 ‘미친 짓을 해봐라’는 분위기가 있다. 지금 미친 생각 같아도 그런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한국도 미친 아이디어를 계속 내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박승민 박사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2008년 코넬대 공대에서 응용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2014년부터 스탠퍼드대 의대 강사로 재직 중이다. 바이오 진단 기기의 기본원리인 미세유체 연구를 하다가 스탠퍼드대 의대 영상의학과의 산지브 샘 감비어 교수 연구실로 가면서 스마트 변기 연구를 시작했다. 2021년에는 스마트 변기 상용화를 위해 대장항문외과 전문의인 원대연 서울송도병원 골반저센터장과 함께 ‘카나리아’라는 회사도 만들었다.

참고자료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 DOI: https://doi.org/10.1126/scitranslmed.abk3489

npj Digital Medicine, DOI: https://doi.org/10.1038/s41746-022-00582-0

arXiv, DOI: https://doi.org/10.48550/arXiv.2112.12554

Nature Biomedical Engineering, DOI: https://doi.org/10.1038/s41551-020-05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