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표면에 돌기처럼 돋은 스파이크(붉은색)에 숙주 세포의 ACE2를 모방한 미끼 단백질(흰색)이 결합한 상상도. ACE2를 모방한 미끼 단백질은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달라붙기 전에 먼저 결합해 인체 감염을 사전 차단한다./미 워싱턴대

SK바이오사이언스가 미국 워싱턴대와 공동 개발한 분무형 코로나 예방약이 동물실험에서 효능이 입증돼 올해 인체 대상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결합하는 단백질을 코 안에 분사해 인체 감염을 사전 차단하는 원리이다. 미국 뉴욕대 연구진은 같은 원리의 항바이러스 단백질로 오미크론 변이 코로나를 막는 동물실험에도 성공했다.

백신과 항체 치료제에 이어 새로운 항바이러스 단백질 의약품이 코로나와 싸울 신무기로 등장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가 발생하면서 기존 백신과 항체 치료제는 전보다 효과가 떨어졌지만, 새 항바이러스 의약품은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인체 세포를 모방해 변이에도 효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끼 단백질로 코로나바이러스 유인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26일 “바이러스를 유인하는 단백질 미끼 의약품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전쟁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사이언스가 언급한 미끼는 인체 호흡기 세포 표면에 있는 ACE2 수용체 단백질을 모방한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코나 목으로 들어오면 먼저 마치 열쇠를 끼우듯 돌기 모양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ACE2에 결합시키고 세포 안으로 침투한다. ACE2를 모방한 미끼 의약품은 그 전에 코로나바이러스와 결합해 세포 감염을 차단한다. 말하자면 바이러스가 열쇠를 들이대면 가짜 문을 내미는 식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워싱턴대 약대의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 연구진과 함께 인체 ACE2 수용체 단백질에서 코로나바이러스와 결합하는 부분 세 곳을 모방한 미끼 단백질을 개발했다. 베이커 교수는 2020년 9월 이 연구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SK바이오사이언스 고위 관계자는 “세포와 생쥐 실험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하는 효과를 확인하고 올해 안으로 인체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국내외에서 다국가 임상을 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미 워싱턴대와 코로나 백신을 공동 개발한 바 있다. 이번 미끼 단백질 의약품 개발은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 게이츠재단은 국제에이즈백신추진본부(IAVI)를 통해 SK에 220만달러(한화 27억원)를 비임상 개발비로 지원했다.

코로나바이러스(맨 위 붉은색)는 표면에 돌기처럼 돋은 스파이크를 숙주 세포의 ACE2(고리 모양)에 결합시켜 세포 안으로 침투한다. ACE2를 모방한 미끼 단백질(파란색)은 그 전에 바이러스에 결합해 인체 감염을 사전 차단한다./Nanomedicine

◇사스 때 미끼 단백질 아이디어 나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미끼 단백질로 차단하는 아이디어는 18년 전에 나왔다. 오스트리아 분자생물학연구소의 요제프 페닝거 박사는 지난 2005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하자 감염을 일으킨 사스 코로나바이러스가 ACE2에 결합해 세포 안으로 침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원래 ACE2는 혈압과 대사과정을 조절하는 단백질이다.

페닝거 박사는 ACE2 일부를 합성해 생쥐에 주입하자 사스로 인한 폐기능 손상을 막을 수 있음을 입증했다. 하지만 사스가 일찍 종식되는 바람에 사스 예방 효과까지 있는지 알아보지는 못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로 옮긴 페닝거 박사는 2019년 말 코로나가 퍼지자 다시 미끼 단백질 연구를 시작해 세포와 생쥐 실험에서 코로나 예방 효과를 확인했다. 페닝거 박사는 오스트리아에 아페이론 바이로직스(APEIRON Biologics)란 회사를 세워 상용화에 나섰다. 이미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인체 안전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연구진은 페닝거 그룹보다 미끼 단백질이 인체에서 더 오래 머물도록 변형시켰다. 인체는 외부에서 단백질이 들어오면 바로 분해한다. SK와 협력한 워싱턴대 베이커 교수 연구진은 ACE2가 바이러스와 결합하는 부분 세 곳을 모방해 예방 효과를 늘렸다.

일리노이대의 에릭 프록코 교수는 ACE2를 모방한 미끼 단백질에 항체까지 붙여 코로나바이러스와 더 잘 결합하도록 했다. 역시 세포와 생쥐 실험에서 코로나 감염 예방 효과를 확인했다. 프록코 교수는 워싱턴대 베이커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두 사람은 시애틀에 사이러스 바이오테크놀러지(Cyrus Biotechnology)를 세워 상용화에 나섰다. 프록코 교수는 사이언스에 “미끼 단백질 의약품은 바이러스 감염병 예방에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판도를 바꿀 의약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막는 다양한 방법들. 백신이나 항체 치료제는 바이러스 스파이크 돌기에 결합하는 항체로 인체 감염을 막는다. 저분자 의약품도 같은 원리이다. 하지만 스파이크에 변이가 생기면 효능이 떨어진다. 반면 바이러스 침투 경로인 인체 ACE2를 모방한 미끼 단백질 의약품은 그런 우려가 없다./조선DB

◇변이도 문제 없어, 다른 바이러스에도 적용

ACE2를 모방한 미끼 단백질은 근본적으로 어떤 변이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떨어지지 않는다. 백신은 인체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에 결합하는 항체를 분비하도록 유도하는 원리이다. 하지만 오미크론처럼 스파이크에 변이가 발생하면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항체 치료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면 미끼 단백질은 바이러스가 결합하는 인체 단백질을 모방한 것이어서 스파이크가 어떻게 변하든 상관없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인체 침투 경로가 바뀌지 않는 한 감염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대의 나다니엘 란다우 교수는 지난 1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미끼 단백질로 생쥐가 오미크론 변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일리노이대 연구진은 지난해 ‘네이처 화학생물학’에 같은 방식으로 델타 변이 코로나 감염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뉴욕대 연구진은 미끼 단백질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단백질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를 해가 없는 바이러스에 끼워 인체에 전달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이러면 백신과 마찬가지로 몸에서 미끼 단백질이 분비된다. 동물실험에서 코로나 감염을 2개월까지 막아냈다. 연구진은 면역력이 떨어져 백신 주사를 맞아도 효과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용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대 연구진은 다른 바이러스 감염병에도 같은 방식의 미끼 단백질 의약품을 적용할 계획이다. SK와 코로나 백신을 공동 개발한 워싱턴대 항원디자인연구소(IPD)는 이미 m두창(원숭이두창), 인플루엔자(독감), 에이즈, 에볼라 감염과 싸울 미끼 단백질을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끼 단백질은 항체 단백질보다 제조가 쉽고 그만큼 생산 단가도 낮다고 알려졌다.

IPD의 로렌 카터 박사는 사이언스에 “미끼 단백질은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예방의 아방가르드(Avant-Gard, 혁신적인 방법)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분무형 미끼 단백질 의약품이 상용화되면 마스크처럼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1차 방어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bioRxiv, DOI: https://doi.org/10.1101/2022.12.31.522401

bioRxiv, DOIi: https://doi.org/10.1101/2022.12.31.522401

Nature Chemical Biology, DOI: https://doi.org/10.1038/s41589-021-00965-6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bd9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