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관련 국가 핵심기술을 중국에 유출하려던 일당이 검찰과 특허청에 덜미를 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기술 해외유출 조직에는 국내 대기업·중견기업 전 직원이 포함돼 있었다.
특허청과 대전지검은 '반도체 웨이퍼 연마(CMP)' 관련 기술을 중국에 유출하려던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 전 직원 3명을 포함한 총 6명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국외누설),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고 26일 밝혔다. 피의자 6명 중 3명은 구속기소, 3명은 불구속기소 됐다.
피의자들이 유출하려 했던 CMP 관련 기술은 '웨이퍼 연마 공정(CMP 공정)'과 '웨이퍼 연마제(CMP 슬러리)', '웨이퍼 연마 패드(CMP 패드)'다. 웨이퍼는 반도체 집적회로를 만드는 중요 재료로 실리콘으로 만들어진다.
웨이퍼 제조는 반도체 분야에서 '8대 공정'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공정이다. 웨이퍼 연마는 웨이퍼의 표면을 매끄럽게 만드는 작업인데, 집적회로의 정밀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중요한 기술로 꼽힌다. CMP 공정은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해외로 유출되면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 핵심기술'·'첨단기술'로 지정됐다.
피의자들은 국내 반도체 공정 소재 제조업체 A사·B사와 국내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 C사에서 근무하다 중국 반도체 업체로 건너간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2019년부터 공모해 컴퓨터와 업무용 휴대전화로 회사 내부망에 접속해 기밀자료를 사진 촬영하는 수법으로 핵심기술을 유출했다.
피의자들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에 상장된 국내 기업 A·B·C사에 재직하다가 동일한 중국기업으로 옮겼다. 주범으로 꼽히는 D(55)씨는 A사에서 2018년 임원 승진에 탈락하자 중국기업과 CMP 슬러리 제조사업 동업을 약정하고, 동종업계 연구원들을 중국으로 이직시켰다. 이후 2020년 1월까지 A사에 계속 근무하면서 관련 기술을 중국기업으로 보냈고, 같은 해 5월부터는 중국기업의 자회사 사장급으로 자리를 옮겼다.
D씨는 기술유출에 대한 수사가 개시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공범인 중국기업 부사장급 인사 E(52)씨에게 A사에서 유출한 자료를 숨겨달라고 부탁해 증거은닉을 시도했다. E씨는 국내 반도체 기업 C사에서 CMP 슬러리 관련 자료를 빼돌려 중국기업에 넘긴 인물이다.
이외에 피고인들은 B사에서 CMP 슬러리 사업계획 파일을 중국기업 직원에게 넘기거나, CMP 공정 관련 보안자료를 촬영해 D씨에게 건넨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의 핵심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액은 B사의 경우 연구개발비만 420억원에 달한다. CMP 슬러리 시장 규모가 지난해 기준 연간 2조7500억원, CMP 패드는 연간 1조58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손실 규모가 더 크다.
기술유출 수사에서는 특허청과 검찰, 국정원과 같은 각 기관의 협력이 빛을 발했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중국에서 첩보를 받아 검찰과 특허청 기술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과 기술경찰은 피의자들이 중국에서 귀국한 직후 곧바로 압수수색을 집행해 증거를 분석했다. 특허청 기술경찰은 피의자 중 3명을 구속 송치해 검찰로 넘겼는데, 이는 기술경찰이 2019년 3월 영업비밀 분야 수사를 넘겨받은 이후 최초로 구속 송치한 사례다.
특허청은 기술경찰과 대전지검, 국정원과 같은 기술범죄수사 기관과 긴밀히 협력하고, 향후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과도 공조체계를 마련해 국제 기술범죄에 대한 대응을 강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