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덴마크 한 농장의 밍크들. 당시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대규모 살처분됐다. 최근 스페인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밍크가 발견되면서 다시 대규모 살처분으로 이어졌다./AP연합

유럽의 밍크가 또다시 집단 살처분될 위기에 몰렸다. 덴마크 밍크 농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퍼져 정부가 자국내 사육 중인 밍크를 모두 살처분하는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최근 스페인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밍크 사이에 퍼졌다는 사실이 새로 확인됐다. 아직 사람에게는 전염되지 않았지만, 밀집 사육 환경에서 새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할 위험이 있어 보건 당국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

유럽연합 조류인플루엔자(AI) 표준연구소의 이사벨라 모네 박사 연구진은 지난 19일 국제 학술지 ‘유럽전염병감시(Eurosurveillance)’에 “지난해 10월 스페인 북서부 갈라시아의 농장에서 죽은 밍크들에서 H5N1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검출했다”고 밝혔다.

◇바이러스 증식 돕는 유전자 변이 확인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는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 단백질 종류로 분류한다. HA는 16종, NA는 9종이 있다. 닭이나 오리, 철새에 조류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H5N1형은 HA 5형, NA 1형이라는 뜻이다. 헤마글루티닌은 숙주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가 되며, 뉴라미니디아제는 증식 후 숙주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한다.

모네 박사 연구진은 스페인 농장에서 죽은 밍크 4마리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해 이전 바이러스와 비교했다. 그 결과 T271A이라는 중합효소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바이러스가 포유류 조직에서 더 잘 복제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논문에 따르면 이번에 H5N1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밍크에서는 갈매기에서 발견되는 유전자도 확인됐다. 비이러스가 갈매기에서 밍크로 퍼져 새로 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미국 터프츠대의 바이러스학자인 웬디 푸리어 교수는 지난 24일 네이처에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는 조류인플루엔자를 미지의 영토로 진출시켰다”고 말했다.

스페인 농장 측은 지난해 10월 첫 주에 밍크가 병에 걸린 것을 확인했다고 알려졌다. 그 전까지 농장 밍크의 폐사율이 한 주에 0.25%였지만 그 주에 0.77%로 증가했다. 전염병이 돌듯 병에 걸린 밍크는 계속 늘었다. 조류인플루엔자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자 스페인 당국은 농장에서 키우던 밍크 5만 1986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

농장 인부 11명도 검사했으나 다행히 감염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진은 밍크에서 나온 H5N1 바이러스가 몇 군데 돌연변이가 생겼다는 점에서 사람 사이에 퍼지는 팬데믹(대규모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까지 사람이 새를 통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고 사망한 사례는 있지만, 아직 사람끼리 감염시키지는 않았다.

H5N1형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바이러스(황금색)가 개 신장세포(녹색)에 감염된 모습이다./미 CDC

◇사람 간 전염되는 변이 출현 가능성도

H5N1 조류인플루엔자는 1996년 중국의 거위 농장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듬해 홍콩에서 크게 퍼져 사람이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2005년 가금류의 바이러스가 철새를 감염시켜 H5N1 조류인플루엔자가 전 세계로 퍼졌다. 2020년 발생한 2.3.4.4b 변이는 유럽과 북미의 가금류 산업에 타격을 주고 지난해 가을 중남미까지 퍼졌다. 미국 성유다아동연구병원의 리처드 웨비 박사는 24일 사이언스에 “새 변이 바이러스는 이전보다 모든 종류의 조류에 더 잘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조류의 기도 위쪽에 달라붙는다. 바이러스가 결합하는 수용체 단백질은 포유류에 거의 없다. 포유류가 H5N1 조류인플루엔자에 잘 걸리지 않았던 이유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여우와 고양이, 흰족제비, 물개, 돌고래, 미국너구리가 잇따라 감염됐다. 지난 17일 미국 몬태나 방역당국은 병에 걸려 안락사시킨 회색곰들에서도 H5N1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검출했다고 밝혔다.

사람도 새를 통해 감염됐다. H5N1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사람은 절반이 사망했다. 과학자들은 최근 발생한 2.3.4.4b 변이가 이전보다 치명적이지 않지만, 더 잘 퍼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포유류에 더 많이 감염되면 포유류 몸 안에서 더 강력한 변이가 발생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새가 없어도 사람 사이에 감염되는 악성 변이가 나와 팬데믹을 유발할 수도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표면의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디아제 단백질 정류로 분류한다. 주로 새에 감염되는 H5N1 바이러스가 포유류로 퍼지면 인간 사이에 감염이 되는 새로운 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조선DB

◇코로나도 퍼져 밍크 대규모 살처분

밍크가 팬데믹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밍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잇따르자 네덜란드는 2024년까지 밍크 사육을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

2020년 덴마크의 농장에서 키우는 밍크가 사람을 통해 코로나에 걸린 뒤 다시 사람에게 코로나를 옮겼다. 그해 11월 덴마크 정부는 농장에서 사육하는 밍크 1700만 마리를 모두 살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덴마크는 전 세계 밍크 사육의 40%를 차지한다.

농장 가축에서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되면 바로 살처분하는 것은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 때문이다. 야생 동물도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새를 잡아먹고 감염되지만, 대부분 개별 개체 차원의 감염에 그친다. 하지만 수천, 수만 마리가 좁은 공간에 집단 사육되는 농장에서는 한 마리가 우연히 감염된 새를 잡아먹으면 집단 감염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모네 박사는 “농장 동물이 야생 조류와 접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농장 작업자들도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른 예방 조치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Eurosurveillance, DOI: https://doi.org/10.2807/1560-7917.ES.2023.28.3.23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