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나 기계를 만드는 공장뿐 아니라 호텔과 식당에서 로봇이 돌아다니며 사람을 돕는 광경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딱딱하고 투박한 산업용 로봇팔부터 바퀴 달린 자율주행 배달 로봇이 산업과 일상 곳곳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전자회사와 통신회사, 심지어는 배달회사까지 로봇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영역에서 로봇 사업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이달 9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캠퍼스 제4공학동에서 만난 데니스 홍(한국명 홍원서) UCLA 기계공학과 교수 겸 로멜라(RoMeLa·로봇메커니즘연구소) 소장은 ”로봇 사업이 성공하려면 유용하고 기술이 존재해야 하며 너무 비싸지 않아야 하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과 하루 전까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인 CES2023를 다녀왔다는 홍 교수는 ”아무리 첨단 기술이라도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시장이 열린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기술이 뛰어나도 비싸거나 사용자에게 별로 유용하지 않고, 기술이 유용할 것 같지만 확보하는데 너무 긴 시간이 걸린다면 사업으로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뜻이다.
현재는 일상을 파고든 로봇청소기와 배달 로봇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 조건을 충족한 덕분에 사업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다음번 로봇이 성공할 사업 영역도 특정 기술이라기보다는 바로 이 세 조건을 충족할 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드(TED) 강연을 포함해 각종 강연과 방송을 통해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홍 교수는 로봇공학자이자 로봇 문화 확산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그가 2014년부터 몸담고 있는 로멜라는 최근 10여년간 인간형 로봇을 비롯해 여러 다양한 형태의 로봇을 만들었다.
미국 최초의 성인 크기 로봇인 ‘찰리’, 전술위험작전로봇 ‘토르’(THOR-RD), 연구 교육용 개방형 플랫폼 휴머노이드 ‘다윈OP’ 등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해왔다. 2007년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무인자동차 대회인 어반 챌린지에 첫 참가한 이후 로봇 세계의 월드컵인 로보컵 등 각종 대회에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역량을 인정받아 왔다.
홍 교수는 미국과학재단(NSF)과 미국방연구고등계획국(DARPA) 프로젝트 외에도 국내외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오전에도 CES를 방문한 국내 기업 참관단들이 그의 연구를 보기 위해 로멜라를 들렀다.
그만큼 다양한 연구 사례가 많다보니 미국은 물론 각국에서 많은 학생들이 몰려든다. 통상 교수 1명에 대학원생이 7~8명인 게 보통인데 로멜라엔 29명의 석박사 연구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다수 졸업생들이 보스턴다이내믹스나 얼마 전 휴머노이드 개발에 뛰어든 테슬라로 취업하고 있다.
홍 교수가 최근 어떤 분야에 관심이 많은지 알고 싶다면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그의 트위터에 최근 올라온 해시태그만 봐도 그의 관심사를 알 수 있다. 최근 홍 교수 계정에는 ‘#BRUCE(브루스)’와 ‘#ARTEMIS(아르테미스)’라는 해시태그와 동영상이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실제 그는 “다윈의 뒤를 이을 ‘브루스’라는 새로운 오픈 플랫폼과 아르테미스’라는 뛰어난 휴머노이드를 조만간 공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브루스는 교육용으로 소스코드와 하드웨어를 공개한 오픈소스형 휴머노이드 플랫폼으로 다윈의 뒤를 이어 로봇 연구의 혁신을 이끌 것으로 홍 교수는 기대하고 있다. 아르테미스는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애틀라스에 필적하는 능력을 보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뛰기도 하고 텀블링도 하며 실제 축구도 하도록 개발됐다.
그가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공간’에서 인간을 돕는 로봇은 인간을 닮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멜라에서는 사람 모습의 로봇만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펜싱 선수를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신개념 이족 보행 전용 로봇인 내비(NABi), 헬륨 풍선에 매달려 걷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 이족 로봇인 볼루(BALLU), 두 다리를 팔처럼 쓰는 사족 로봇 ‘알프레드’ 같은, 흡사 애니메이션에 나올법한 로봇들도 어슬렁거린다. 로봇들은 획일적인 전형이 없다.
홍 교수는 로봇 부품을 제조하는 대규모 시설도 별도로 운용하고 있다. 로멜라가 자리한 제4 공학동 1층과 2층에는 대형 컴퓨터수치제어(CNC) 공작기계와 3D 프린터들이 들어찬 부품 제조시설이 있다. 홍 교수의 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은 직접 자신이 설계한 로봇의 모든 부품을 직접 깎아 만든다. 이날도 학교 개강 첫날인데도 독일과 일본 전문기업이 만든 전 세계 다섯 대 밖에 없는 부품 제조 장비들이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좋은 로봇 설계자는 작은 부품부터 자신이 직접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게 홍 교수 생각이자 로멜라의 운영 철학이다.
UCLA 개강 첫날인 이달 9일 오후 미 서부 ‘로봇 연구의 심장’ 로멜라를 찾았다.
-연구소의 특별한 운영 철학이 있나.
“우리는 직접 손으로 만들고 실험하는 것에 중심을 둔다. 좋은 로봇을 설계하려면 자기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 봐야 한다. 또 하나 우리는 로봇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부수는 것도 중요시한다. 직접 만들어보고 완성한 뒤에 부숴 본다. 그래야 좋은 설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로봇이 고장 나지 않고 부서지지 않으면 배울 수가 없다. 다른 연구소를 가보면 조심조심 다루지만 우리는 다르다. 고장이 나면 외주를 주게 되면 몇 주가 걸리지만 우리는 빨리빨리 부수고 우리가 스스로 빨리 업데이트해서 고치는 식으로 사이클이 엄청 빠르다. 그래서 혁신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부품을 사지 않고 직접 만드는 이유는 뭔가.
“대다수 로봇 연구소들은 보통 외주를 택한다. 하지만 우리가 개발하는 로봇은 이전에는 전혀 없던 개념의 로봇이다. 그런 로봇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어디서 팔지 않는다. 그래서 기어부터 웬만한 부품을 다 이곳에서 깎아 만든다. 우리가 설계도를 만들면 여기 ‘기계를 만드는 기계’들이 설계도대로 부품을 깎습니다. 이렇게 부품을 직접 만들어 로봇을 개발하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홍 교수 연구실에선 수많은 부품 제조 장비 가운데 3D프린터가 눈에 띄지 않았다. 컴퓨터에 입력된 입체(3D) 도면의 형상을 찍어내는 3D프린터는 4차 산업혁명, 제조 혁명의 상징으로 통한다. 맞춤형 로봇을 제작하는 첨단 실험실이라면 한 대쯤 충분히 있을 법했다. 홍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3D프린터가 눈에 띄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3D프린터를 쓰지 않는 이유는.
“우리도 3D프린터를 보유하고 있긴 하다. 조금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3D프린팅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 쉽기 때문이다. 부품을 만들기 너무 쉬우면 사람들이 생각을 덜 하며 설계를 하게 된다. 다 만들어주니까 충분히 고민을 안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3D 프린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홍 교수가 이날 공개한 연구실 한쪽엔 로멜라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물부터 현재 개발 중인 다양한 로봇을 시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홍 교수가 신나는 표정으로 컴퓨터와 정체불명의 공구와 부품들로 난장판이 돼 있는 테이블 하나를 가리켰다.
-용도가 무엇이고 특별히 소개하는 이유는 뭔가.
“우리 연구실의 명물 콘퍼런스 테이블이다. 원래는 벽에 붙어 있던 것이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쪽 벽 가득하게 아이디어를 적으면서 회의를 하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로 이 방이 가득 찰 정도로 신나는 회의를 하는 그런 테이블이다. (벽을 가리키며)저기 낙서들이 보이는가. 벽에 마구 노트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보시다시피 벽이 지저분하지 않나. 로봇 연구소는 너무 깨끗하면 일을 안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 로봇들의 아이디어들이 바로 이 테이블과 벽의 낙서에서 나온 것들이다.”
-특별히 애정이 가는 로봇이 있다면.
“가장 소개하고 싶은 로봇은 ‘다윈’이라는 아주 귀여운 로봇이다. 미국과학재단(NSF)의 지원을 받아 만든 이 로봇은 소형 휴머노이드 로봇인데 연구와 교육용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가 조종할 수도 있고 프로그램을 하면 스스로 공을 보고 쫓아가서 발로 찰 수도 있다.
사실 축구를 하라고 만든 로봇은 아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실험하려면 로봇이 필요한데 로봇을 만드는 게 쉽지가 않은데 이 로봇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오픈 소스로 만들어서 모든 걸 공개했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연구용 로봇이 됐다. 수많은 로봇 논문들 가운데 새로운 기술이 우리가 만든 다윈 로봇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 다윈을 바탕으로 다른 로봇을 만들기도 하고 개조하기도 한다.”
홍 교수가 다윈 로봇을 연구소 내 시연장에서 작동시켰다. 작은 공을 바닥에 던지자 다윈 로봇이 공을 쫓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벌 수도 있는데 왜 기술을 공짜(오픈소스)로 풀었나.
“사실 사업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말이 안 되고 지식재산 측면에서 돈을 엄청 벌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항상 스스로 질문을 한다. 애초에 왜 시작했는지. 그래서 공개해야 하나 팔아야 하나 했을 때 왜 시작했는지 다시 생각했다. 교육용과 연구용으로 개발하기로 시작했던 것이었고 그래서 오픈소스로 만드는 게 맞다고 판단해서 기술을 공개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됐다. 우리 로봇 연구가 더 유명해지고 다른 프로젝트도 더 들어오고 더 많은 걸 얻었다.”
-로봇 연구자들은 왜 휴머노이드 로봇을 연구하나.
“두 다리와 두 팔, 머리가 달린 로봇을 휴머노이드 로봇이라고 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로봇 공학자들에겐 꿈이다. 미래 집에서 로봇이 함께 생활한다고 생각해보자. 로봇이 밥도 하고 빨래도 해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사람이 만든 환경에서 로봇이 돌아다니려면 사람 크기에 사람 형태여야 계단도 올라가고 문손잡이도 열고 사람이 만든 도구도 쓸 수 있지 않겠나.”
홍 교수는 계속해서 2015년 DARPA 로봇 챌린지에 참여한 토르(THOR-RD·신속배치를 위한 전술위험작전로봇)를 한 예로 들었다.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다고 보자. 방사능 때문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데 이런 경우 대신 투입돼 인명을 구하고 파괴된 시설을 고치는 데 활용이 가능하다. 이 로봇은 차량을 운전하기도 하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도 하고 손잡이가 어딨고 장애물을 어떻게 피할지 임무에 따라 스스로 수행하기도 하고 무선으로 조종하기도 한다.”
-인간형 로봇의 기술적 난제는?
“몸집이 큰 로봇을 두 발로 걷게 하는 건 매우 어려운 문제다. 느리고 넘어지기 쉽다. 최근에 이런 걸 해결하는 기술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애틀라스 같은 로봇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고 복잡하다. 우리 연구팀은 두 다리로 걷는 게 왜 이렇게 복잡한지 고민을 했고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로봇이 두 다리를 걸을 때 자꾸 넘어지고 느리게 걷는 건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 사이 간격에서 비롯된 문제다. 다리가 앞뒤 움직이는데 간격 때문에 원하지 않은 뒤틀리는 힘이 생기면서 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 펜싱 경기를 봤는데 선수가 옆으로 안정적으로 걷는 모습을 봤다.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가 일찍 선상이 되면서 뒤틀리는 힘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로봇을 옆으로 걷게 하기로 했다. 내비(NABI·비인간형 이족형) 로봇은 휴머노이드와 다르게 완벽히 옆으로 걷는 이족 로봇이다.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는데도 안정적으로 값싸게 걸어다닐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이다.”
홍 교수는 네 다리가 팔이 되기도 하고 다리가 되기도 하는 로봇 ‘알프레드’와 헬륨 풍선에 다리가 두 개 달린 로봇인 ‘볼루’라는 로봇도 소개했다. 알프레드는 네 다리로 걷다가 두 다리로 걸을 때는 나머지 두 다리가 물건을 짚는 팔이 되기도 한다. 특히 볼루는 가벼운 헬륨 가스 부력으로 항상 서있는 로봇으로 매우 싸고 절대 넘어지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로봇이라고 홍 교수는 소개했다.
-최근 관심을 가지고 개발하는 기술은 뭔가.
“인공근육 기술이다. 현재 전기로 작동하는 로봇은 전기 모터로 작동하며 힘이 세고 정밀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동물 근육처럼 탄성이 있고 힘을 조절할 수 있는 구동기(액추에이터)다. 현재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인 ‘브루스’는 이런 인공근육을 장착한 로봇으로 막 뛰어다닐 수 있다. 텀블링도 한다. 오픈소스로 개발 중인데 이달 말이나 내달에 공개할 예정인데 엄청나게 다윈처럼 큰 임팩트가 있을 것이다. 로봇 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걷다가 뛰는 기술이 그렇게 어려운가.
“뛰기 위해선 엄청나게 큰 힘이 필요하다. 튼튼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액추에이터가 힘이 있어야 한다. 일반 모터를 쓰면 착지할 때 다 고장이 난다. 탄성이 있어야 한다. 뛸 때 양발이 공중에 떠 있을 때도 조절할 수 있는 감지할 수 있는 센서기술과 소프트웨어 기술도 필요하다. 매우 많은 전류가 필요하고 이에 따른 배터리와 ‘슈퍼커패시터’처럼 순간적으로 전류를 공급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곧 공개할 예정인 아르테미스는 어떤 로봇인가.
“아르테미스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래스를 능가하도록 설계된 로봇이다. 뛰어다니고 텀블링도 하고 축구도 하고 로보컵에 축구도 한다. 기네스 축구 기록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로봇이다. CES에 가 있는 사이에 뛰기 시작했다. 학계에서 만든 로봇 가운데 뛰는 로봇은 이게 처음이다. 산업계에서 만든 로봇 중에서도 단 두 종류만이 뛰어다닌다. 다음 주가 되면 좀 더 빨리 뛸 것이고 한 달 뒤면 텀블링도 할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LG전자와 KT,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등과 국내 기업들과 공동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홍 교수는 요리 로봇에 특히 관심을 쏟고 있다.
-요즘 요리 로봇도 개발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실 요리하는 로봇 프로젝트는 지금도 많다. 커피를 끓이는 로봇도 있고 치킨을 튀기는 로봇, 육수를 우리는 로봇, 피자를 굽는 로봇도 있다. 이런 로봇들은 대부분 인간이 요리하는 방식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경우가 많다. 로봇이 도마를 쓰고 프라이팬을 쓰는 식으로 사람처럼 음식을 만드는 식이다. 하지만 로봇이 요리하는데 사람처럼 할 필요가 있나. 우리 연구팀은 아예 새롭게 요리 연구를 재정의했다. 로봇 연구보다 요리 연구를 훨씬 많이 하고 로봇 연구를 시작했다. 우리는 요리 자체 연구를 다시 정의했다.
즉 요리 재료가 투입되고 요리로 나오는 것을 인풋(투입)과 아웃풋(산출)으로 하고 사람이 하는 것과는 다른 단계로 나눠 요리로 나오게 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요리하는 로봇은 손 같은 것도 없고 프라이팬도, 칼도 달려 있지 않다. 전혀 다른 개념의 로봇이다. 일종의 음식 공장이라고 보면 된다. 다른 요리 로봇 연구들은 사람이 요리하는 걸 흉내 낸다.”
-왜 기존과 다른 접근 방식으로 개발하나.
“로봇은 야외에서 돌아다니기 어렵다. 비정형화한 곳에서는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로봇이 만드는 요리에 들어갈 식재료도 비정형적이다. 육류나 배추 같은 채소는 로봇이 다루기 어렵다. 로봇이 사람처럼 요리한다면 고기를 짚어서 도마에 놓고 칼로 자르고 그릇에 넣고 양념을 뿌리고 프라이팬에 넣어야 하는 데 그때마다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다. 우리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로봇은 프라이팬 같은 조리도구를 쓰지 않는다. 사람도 필요 없고 그냥 마치 서랍 같은 곳에 재료만 넣으면 되는 식이다. 이론상으론 세상의 모든 요리를 할 수 있다. 물론 요리에 따라 새 프로그램도 필요하고 새 도구들도 설치할 필요는 있다. 불이 꺼져 있어도 재료만 넣어주고 로봇이 배달해주면 1년 365일 돌아간다.”
-현재 개발 중인 기술들이 우리 일상에서 사용되는데 얼마나 걸릴까.
“사실 사업 영역에서는 새롭게 이노베이션을 할 게 별로 없다. 산업에서는 최첨단 로봇 기술을 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신뢰성이 높은 기술을 원한다.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은 2~3년 뒤 제품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연구실에서 개발된 기술은 먼 미래에 사용된다. 우리 같은 연구실에서는 전체 기술의 97%를 개발한다. 연구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곳이다. 나머지 3%를 산업에서 완성한다. 이 3%가 훨씬 어려운 작업이다. 어쩌면 휴머노이드가 집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는 모습은 어쩌면 살아생전에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로봇 기술이 상용화되는 것일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내년에는 어떤 기술이 나오겠구나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어떤 사업을 위해서 어떤 로봇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식으로 사고해서는 안 된다. 로봇 기술은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존하는 기술 중에서 곧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보고 이중 쓸만한 것을 골라 사업화하는 것이 더 맞다. 일례로 요즘 사용되는 배달 로봇이 그렇게 등장한 사업이다. 장애물을 피하고 바퀴로 움직이는 기술은 이미 개발된 기술이고 실내 배송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어 사업이 된 것이다. 로봇청소기 역시 마찬가지다. 바퀴로 굴러다니고 너무 비싸지도 않으며 실내를 돌아다닐 수 있는 기술이 이미 있었고 이를 청소에 활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에서 등장했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로봇 비즈니스가 성공하려면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하나.
“로봇이 사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어느 정도 유용해서 이용자가 있어야 하고 기술이 이미 있거나 곧 등장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그렇게 만든 로봇이 너무 비싸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조건을 만족하며 등장한 성공 사례가 로봇청소기다. 로봇청소기는 없어도 되지만 있다면 유용하고 관련 기술이 이미 존재했다. 그리고 기술이 별로 비싸지 않았다.
수많은 비즈니스에서 세 조건을 만족하게 하는 것을 찾다가 배달 로봇을 찾았다. 누군가 만일 세 조건을 만족하게 하는 다음 아이템을 찾는다면 정말 대박이다. 연구자로서 보면 기술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미 있거나 곧 등장할 기술을 찾아 응용 영역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홍 교수는 앞으로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일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로봇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로멜라의 철학이라고 소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로봇(드론)이 동원됐다.
“로봇을 전쟁에 동원하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쟁용 로봇을 개발할 생각은 없다. 우리도 국방 로봇을 개발하긴 하지만 무기 달린 로봇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화재나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구난 로봇을 개발한다. 물론 전쟁용 무기 달린 로봇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우리가 만든 로봇이 아군이든 적군이든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누군가 전쟁용 로봇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건 인정한다.”
-로멜라는 어떤 로봇을 추구하나.
“인간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줄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다. 결국 로봇은 사람이 하기 싫은 일 할 수 없는 일, 하면 안 되는 일을 대신하는 기계다. 화재 진압용 로봇을 만들고 재난 구조 로봇도 만들어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든가 너무 위험한 일을 대신시키는 것이다.
귀찮은 일을 시킬 수도 있다. 공장에서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인간을 위한 따뜻한 기술, 사회를 이롭게 하고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게 우리 연구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