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MIT 교수는 기동성에서 세계 최고인 로봇개 미니 치타를 개발했다./MIT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최근 호주 브리즈번에서 한 젊은 여성이 네 발로 거리를 걷던 로봇개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랐다. 당시 이 로봇은 입체 카메라와 거리 측정 센서를 달고 도시를 돌아다니며 지도 작성 작업을 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인터넷에는 해당 여성을 비난하는 글이 잇따라 올랐다. ‘로봇이 세상을 정복하면 가장 먼저 저 여성이 당할 것’이라는 글도 있었다. 로봇 주인은 현상금을 걸고 가해자 색출에 나섰다.

사람이 로봇을 폭행했다고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영국에서 형광 작업복을 입은 건설 노동자가 배달 로봇을 발로 차 학대 논란이 일었다. 로봇 개발자도 같은 비난을 받았다. 앞서 미국 로봇 제조업체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엔지니어가 로봇개를 발로 차는 영상을 공개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잔인하다’ ‘로봇이 불쌍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계적인 로봇 과학자인 김상배(48)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기계공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로봇을 사람처럼 여기는 의인화(擬人化)가 우리 인지 과정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어 발생한 일”이라고 말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엔지니어는 로봇의 균형을 잡는 알고리즘을 시험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우리 뇌는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 로봇이 버둥거리는 모습에 먼저 압도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MIT 생체모방 로봇연구소를 이끌며 세계에서 가장 기동성이 뛰어난 로봇개인 ‘미니 치타’를 개발했다. 2019년부터 네이버랩스의 기술고문으로도 일하고 있다. 김 교수는 본지와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로봇에 대한 의인화는 학대 논란을 넘어 로봇 기술 개발에도 지장을 준다”며 “우리가 힘든 일을 로봇이 잘 한다고 기술이 다 완성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했다.

1월 7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한 여성이 로봇개를 발로 차는 모습./Mark Trueno

◇로봇과 공존 대비해 교육 필요

–로봇을 발로 차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

“로봇개는 기계일 뿐이다. 발로 찬다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데 그 자체로 잘못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나. 로봇을 함부로 대하면 폭력성이 증가할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과거 비디오 게임이 폭력을 유발한다고 비판한 것과 같이 근거가 부족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학대라고 분노하나.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어서 자동으로 모든 것을 사람 기준으로 판단한다. 상대 행동의 의미를 빨리 파악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가 로봇개를 시험하러 발로 찬 것일 뿐이지만, 이성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우리 뇌에는 당장 사람이나 동물이 상처를 입고 버둥거리는 모습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호주 모나시대 철학과의 로버트 스패로우 교수는 이번 사건은 로봇이 상징하는 사물에 대해 도덕적으로 잘못된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맞는 말이다. 로봇개가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니니 막 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로봇을 함부로 대하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과거 서구인들이 식민지의 원주민을 인간이 아닌 존재라고 보고 동물처럼 대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로봇이 사람과 함께 사는 시대에 대비해 교육이 필요하겠다.

“자라는 세대에게 로봇이 누군가의 재산이므로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로봇 개발자는 거리에서 로봇이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사람이 함부로 대하면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어디로 연락하라’든지, ‘사유재산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방송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2019년 미 MIT의 김상배 교수(맨 왼쪽)가 연구실을 방문한 리차드 클라크 미 특수전사령관(왼쪽에서 세번째)에게 로봇개 미니치타를 선보이고 있다./MIT

◇공중제비 잘해도 잼 하나 못 발라

–로봇에 대한 의인화가 일반인의 인식뿐 아니라 로봇 개발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우리가 개발한 미니 치타가 뒤공중제비를 하면 사람들은 이제 로봇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중제비는 한 번 도약하면 환경 변화가 없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행동이다. 그보다 시시각각 환경이 변하는 거리를 네 발로 걷는 게 더 어렵다.”

–로봇이 잘하는 행동을 보고 착각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 로봇이 사람보다 빠르고 강하거나 정확해도 특정 동작만 가능하지, 신발 끈을 묶거나 옷을 입는 단순한 행동도 하지 못한다. 네 발 로봇이 개처럼 움직이거나 뛴다고 로봇 기술이 다 완성됐다고 보면 오해라는 말이다.”

–왜 로봇은 사람이 하는 단순한 행동을 하지 못하나.

“인간이 수학을 배우고 언어를 쓰고 게임을 한 기간은 1만년 정도일 것이다. 걷고 뛰고 손을 쓰는 것처럼 생존에 직결된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컴퓨터가 우리보다 월등한 속도로 계산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듯, 컴퓨터가 사람처럼 손과 발을 다양한 목적에 맞게 자유자재로 쓰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인공지능(AI)이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을 이겨도 빵에 잼을 바르는 행동을 가르치지 못한다.”

–아이 가르치듯 잼 바르는 동작을 로봇에 일일이 알려주면 되지 않나.

“최근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인 챗GPT가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잼 바르는 것이나 방 청소나 사람에겐 쉽게 이해되는 말이지만 컴퓨터에게 정량적인 수치로 알려주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다.”

미 MIT 김상배 교수와 네이버랩스가 공동 개발한 로봇개 미니치타가 뒤공중제비에 성공했다./MIT

◇수학적 최적화 아닌 충분히 좋은 로봇 필요

–인간과 로봇이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다는 말인가.

“로봇은 수학적인 최적화를 추구하지만, 인간의 삶은 그렇지 않다. 세수를 하면서 정량적 지표를 최대화하기 위해 손동작을 하나. 우리는 이미 가진 정보를 종합해 충분히 좋은 판단을 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럼 로봇이 인간과 같이 살려면 다른 방향으로 개발해야 하나.

“산업용 로봇은 특정 동작을 인간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사람과 공존하는 로봇의 진화 방향은 어떤 특정 기능들의 최적화가 아니라, ‘그 정도면 충분히 좋다’는 목표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다양한 목적을 적당히 잘 달성하면서 빠른 판단을 해야 하는 실생활에서 충분히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특정 상황에만 정의된 정량적 수치를 최적화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로봇개는 이미 다양한 곳에서 상용화되지 않았나. 공장을 돌아다니고 병원에서 환자와 의사를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은 상용화됐다. 로봇의 다양한 능력치 중 돌아다니는 것은 스팟이 거의 해결했다. 복잡한 공장 내부를 돌아다니며 사람 대신 검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얼마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드론이 더 잘 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판매된 스팟이 1000여 대 정도이다. 시장이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로봇개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로봇개를 만드는 것은 돌아다니기에 두 발보다 네 발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필요한 일을 하려면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팔과 손을 써야 한다. 우리나라 조선산업 수주가 코로나19 대유행 전보다 50% 이상 늘었는데 인력은 40% 떨어졌다고 한다. 로봇개가 팔을 자유자재로 쓴다면 물속에 들어가 용접을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문을 여는 동작도 힘든 상태다.”

미 MIT의 김상배 교수가 본지와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주머니의 열쇠를 꺼내 보이고 있다. 김 교수는 "사람은 보지 않고도 손으로 주머니에서 원하는 물건을 찾아 꺼낼 수 있다"며 "로봇개에게 사람처럼 쓸 수 있는 손과 팔을 달아야 일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줌 화면 캡처

◇보지 않고도 주머니 속 물건 찾아야

–인간형 로봇을 보면 지금도 손을 쓸 수 있지 않나.

“여기서도 로봇의 의인화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이를테면 로봇 손이 루빅스 큐브를 조작하는 영상을 보면 인공지능이 이 정도로 복잡한 걸 할 수 있으니 더 간단한 것들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큐브를 조작한다는 아주 제한된 과업을 위해서만 훈련됐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사람이 손을 쓰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를 꺼낸다고 생각해 보자. 눈으로 보지 않고도 바로 꺼낼 수 있다. 어느 손가락을 썼는지 물어보면 아무도 답을 못한다. 그냥 한 것이다. 또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고 눈앞의 배터리를 잡으라고 하면 머리로 그 형태를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집어낸다. 이런 무의식적인 동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동작을 언어나 수학으로 일일이 명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상황을 스스로 학습하면 가능한 일 아닐가.

“시뮬레이션(가상실험)을 통해 학습하는 일은 가능하다. 스위스 연구진은 로봇개에게 같은 방법으로 넘어져도 외부 명령 없이 스스로 일어나게 했다. 하지만 단순한 일이면 몰라도 일상의 다양한 상황을 모두 시뮬레이션하기는 불가능하다. 구글은 로봇들이 같은 과제를 풀고 그 결과를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는 방식도 시험했지만 실패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로봇을 개발해야 하나.

“우리가 손발을 쓰며 하는 모든 일이 실제로 우리의 언어를 통해 그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연속된 동작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무의식에서 자동으로 일어난다. 연구자 스스로 관용적인 언어의 틀에서 벗어나 기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로봇의 의인화를 경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 MIT의 김상배 교수(왼쪽)가 연구원과 로봇개 미니 치타를 사이에 두고 의논을 하고 있다./MIT

◇일상 로봇 상용화 기준은 지능보다 안전

–로봇 상용화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야 할 기준점이 있을까.

“많은 사람이 지능만 얘기하지만 내가 보기에 상용화의 가장 큰 기준점은 안전이다. 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실수를 많이 하면 쓸 수가 없다. 로봇의 실수는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실수를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한다. 로봇청소기가 처음 나왔을 때 정말 바보 같았지만, 실수해도 별 상관이 없어 보편화됐다.”

–네이버랩스가 개발 중인 로봇은 어떤 장점이 있나.

“우리는 로봇 자체가 아니라 로봇 기술을 개발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래도시 ‘네옴시티’에 네이버의 배달로봇을 도입하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배달로봇은 솔직히 다 나온 기술이다. 네이버는 이런 로봇에 네트워크, 클라우드(cloud·인터넷상 저장 공간) 기술이 있어 남들보다 훨씬 더 완벽한 솔루션을 낼 수 있다. 굉장히 똑똑한 인공지능이 아니라도 여러 기술을 결합해 실수할 확률이 거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대학 때부터 창업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들었다.

“대학 4학년 때 고려대 장민호 교수가 창업한 솔루셔닉스라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들어가 3D(입체) 스캐너 시제품을 개발했다. 당시 직원이 4명이었다. 제품 설계자가 되려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갔다. 10군데 지원했는데 스타트업 경력 덕분에 스탠퍼드를 포함해 두 군데만 합격했다.”

–스탠퍼드대 졸업 당시 벽에 달라붙는 로봇 ‘스티키봇’을 개발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그때 로봇을 벽에 붙게 하는 접착 패드 기술로 창업했다. 도마뱀붙이 발바닥처럼 한쪽으로 힘을 가하면 사람 몸무게를 지탱하지만, 다른 방향에서 당기면 쉽게 떨어지는 ‘방향성 접착제’였다. 하지만 마땅한 시장을 찾지 못해 투자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학교로 가기로 마음을 바꾸고 마침 교수를 뽑던 MIT로 갔다.”

김상배 교수는 2006년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시절 마크 커트코스키 교수(오른쪽)와 함께 수직으로 벽을 기어오르는 '스티키봇(Stickybot)'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당시 타임지의 '올해의 발명품'에 선정됐다./미 국립과학재단

◇”로봇 과학자 되려면 스마트폰보다 기계에 관심 가져야”

–도마뱀 로봇, 로봇개 모두 자연의 동물을 모방한 로봇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동물을 모방하는 것은 비행기를 만들 때부터 많이 시도됐던 방법이다. 자연에서 새로운 지식, 아이디어 등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 생물학을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하지만, 정작 로봇을 만들 때는 자연에서의 결과물을 그대로 적용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릴 적부터 만드는 것이 좋아서 로봇 개발자가 됐다고 했다. 좋은 엔지니어, 과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동원리를 궁금해 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요즘 청소년들은 전자기기에 시간을 많이 쓰는데, 이는 물리적인 원리나 이해를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발달하고 사회의 많은 영역을 침범하더라도, 물리적인 현상과 기계적인 부분에 관한 관심을 잃지 말길 바란다.”

☞김상배 교수

1975년 서울 생. 2001년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가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때인 2006년 도마뱀붙이의 발바닥을 모방해 수직으로 벽을 기어오르는 로봇인 ‘스티키봇(Stickybot)’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당시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발명품’에 선정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09년 MIT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2012년부터 MIT 생체모방 로봇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2018년 네이버랩스와 네발 로봇 ‘미니 치타’를 개발했다. 이 로봇은 뒤공중제비를 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고양이처럼 안전하게 착지하는 등 기동성에서는 최고의 로봇개로 꼽힌다. 2019년부터 네이버랩스 기술고문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