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가 가정에서의 가스레인지 사용을 금지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하면서 천연가스의 위해성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찬반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다.
캐시 호컬 미국 뉴욕주 주지사는 이달 10일(현지 시각)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가스레인지와 보일러 등 취사와 난방 기구 사용을 금지할 것을 제안했다. 앞서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이달 9일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가스레인지가 건강 문제나 실내 공기 오염을 일으키고 있다"며 논란에 불을 붙였다.
캐런 허버트 미국가스협회장은 야후뉴스에 보낸 메일에서 "천연가스 사용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은 소비자의 비용을 높이고 친환경 발전을 위태롭게 하며 소외 계층에 저렴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키쿠카와 백악관 대변인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가스레인지 판매 금지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천연가스 논란이 실내 공기질 문제에 이어 기후변화 문제로 확대되면서 당분간 사용 금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가스레인지 '담배' 만큼 유해물질 만들어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해 11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미국 가정의 절반이 천연 가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보급률이 높은 캘리포니아의 경우 70%의 가정이 천연가스를 쓰는 조리기구를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천연가스 논란'은 가스레인지가 건강 문제와 대기 오염을 일으킨다는 우려에서 시작됐다. 천연가스는 불완전연소가 발생하면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한다.
미국의 에너지 정책 싱크탱크 RMI에 따르면 2020년 미국에서 가스레인지를 쓰는 가정은 전기레인지를 사용하는 집보다 이산화질소 농도가 50~40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산화질소는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체로 호흡기와 폐 질환을 일으킨다. 특히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입자 물질 역시 호흡기, 폐에 침투해 질환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RMI는 호주 시드니대, 미국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연구진과 함께 가스레인지의 영향을 분석해 지난달 21일 '국제 환경 연구 및 공중보건 저널'에 결과를 실었다. 가스레인지가 미국 내 소아 천식 사례 중 12.7%의 원인이라는 내용이다. 미국 전체 가구에서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가구는 40%지만 그로 인해 65만명의 소아 천식 환자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 소속 과학자들은 1986년부터 가스레인지를 금지하라고 권고해왔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하지 않을 때도 계속 유해물질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롭 잭슨 미국 스탠퍼드대 지구시스템과학부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1월 '환경 과학과 기술'에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메탄의 75% 이상이 기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메탄은 천연가스의 주성분으로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다. 연구진은 미국의 모든 가스레인지에서 20년 동안 나온 메탄은 자동차 50만대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비슷한 기후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 뉴욕주 주지사의 '화석 연료 금지'... 얼마나 영향 있을까
호컬 주지사는 새로 짓는 작은 건물인 주택은 2025년, 큰 건물은 2028년, 상업용 건물은 2030년부터 화석 연료를 공급하는 시설을 금지하도록 제안했다. 주거용 건물에는 2030년, 상업용 건물에는 2035년부터 보일러나 스토브, 히터 같은 화석 연료를 쓰는 난방 기구 판매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RMI는 지난해 3월 이 같은 호컬 주지사의 제안과 비슷한 조건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2024년부터 작은 건물, 2027년부터 7층 이상의 큰 건물에 화석 연료 사용을 중단하면 2040년까지 연간 400만t(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는 결과다. 1년 동안 자동차 87만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맞먹는 양이다.
호컬 주지사는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의 핵심은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기후변화는 지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천연가스 사용을 금지하려는 조치가 내려진 건 처음은 아니다.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시는 앞서 지난 2019년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새 주택과 상업용 건물에서 천연가스 연결을 금지했다. 뒤이어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로스앤젤레스, 시애틀도 잇따라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제품을 금지했다. 미국 워싱턴주는 지난해 새로 짓는 주택과 아파트에 전기 히트 펌프를 사용하도록 했다. 전기 히트 펌프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냉난방 기구로 지구 온난화의 해결 수단으로 꼽힌다.
◇ 한국은 아직 천연가스의 위해성 관찰 중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국내 가구 수는 2021년 기준 총 2052만 1328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83.6%에 이른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천연가스 위해성에 대한 평가가 초기 단계에 있다.
환경부는 2015년 주방조리 시 실내오염물질 방출 특성을 조사한 결과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때 전기레인지보다 알데하이드류와 블랙카본 등 오염 물질이 소량 증가했다고 공개했다.
박재용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연구진은 2013년 건강보험환자 중 천식으로 확진된 226만 6451명을 분석한 결과 가스레인지와 난방기, 흡연 등에서 나오는 이산화질소가 천식과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내에선 조리시 나오는 미세먼지나 가스를 포함해 실내 공기질 전반을 관리한다"며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만 별도로 따로 연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스레인지와 관련해서는 아직 논의된 것은 없지만 미국에서 일고 있는 논란은 계속 지켜볼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