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인공지능(AI) 연구소 ‘오픈AI’가 지난해 11월 30일(현지 시각) 대화형 인공지능(AI) ‘챗(Chat)GPT’를 공개했다. 챗GPT는 연구용 프리뷰 버전이 공개된지 일주일 만에 이용자 100만 명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챗GPT는 겉보기에는 단순해보이지만 상상을 넘어서는 능력에 처음 사용하는 이용자를 놀라게 한다. 마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지만 번역은 물론, 작문, 계산, 코딩까지 해낸다. 기존의 대화형 챗봇 심심이, 이루다, 테이 등이 간단한 대화만 나눌 수 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일각에서 ‘구글을 대체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챗GPT는 사용기를 담은 유튜브 영상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련 체험기가 올라오면서 조금씩 관심을 끌고 있다. 과학계 역시 챗GPT가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연구자들 챗GPT 평가 엇갈려
챗GPT에 원하는 키워드를 입력하고 글을 써달라고 하면, 수준급의 작문이 나온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리포트나 에세이도 원활하게 작성할 수도 있다. 원하는 결과를 요구하면 컴퓨터 코딩도 짜준다.
이미 해외에서는 챗GPT가 연구자와 함께 작성한 논문이 나왔다. 시오반 오코너 영국 맨체스터대 간호학과 교수는 지난달 16일 ‘간호 교육에서의 공개 AI 플랫폼: 학문적 진전 또는 남용을 위한 도구’라는 논문을 국제 학술지 ‘실제간호교육’에 실었다. 이 논문에서 챗GPT는 제2 저자이자 공동 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과학계에도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박성규 강원대 AI융합학과 교수는 “챗GPT의 작문 실력을 활용해서 실험적으로 논문을 써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의료데이터분석, 자연어처리 등을 연구하는 전문가다.
임철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챗GPT를 개인적으로만 써봤는데 번역 기능이 있어 영어 수업에 활용할 수 있겠지만, 나온 지 별로 되지 않아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라며 “어떻게 연구에 응용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챗GPT 기능 무한하지만, 한계... 논문 요약, 논문 식별 가능해
일부 국내 연구자들은 챗GPT의 돌풍에도 불구하고 연구에서만큼은 사용 범위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민옥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능정보연구본부장은 “아직 국내 데이터를 학습하지 않았고, 정확성도 낮아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당장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일반적인 활용에서 그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챗GPT는 다른 AI처럼 데이터를 학습해야 한다. 수많은 질문과 답변을 통해 능력이 강화되는 원리다. 하지만 챗GPT는 ‘연구용 프리뷰 버전’으로 일종의 맛보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을뿐 어떤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학습했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또 2021년까지 나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하다 보니 당장 국내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태욱 한양대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챗GPT는 자세한 프로그램의 코드가 공개되지 않았다”며 “어떤 AI라고 봐야할 지 평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연어처리를 연구하는 임희석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이제 막 써보기 시작한 단계라 연구에 적용하기엔 아직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챗GPT도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실제 챗GPT에 영어로 자신의 한계를 묻자 “챗GPT는 대규모 텍스트 데이터로 훈련된 언어 모델이지만 완벽하지 않고 한계가 있다”며 “특정 주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대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식이 부족하다”는 답을 내놨다.
다만 “과학 연구에 챗GPT를 사용할 수 있나”라고 재차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과학 논문에 대한 요약을 만들거나 관련 논문을 식별하여 참고 논문 검토를 지원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 “챗GPT가 만든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검증해야 하며 과학 연구의 유일한 출처로 사용해서도 안된다”고 답했다.
챗GPT는 “어떤 분야 연구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기후 변화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지속 가능한 에너지 생산을 위한 새로운 기술 개발, 질병에 대한 연구, 특히 암이나 심장병과 같이 인간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질병에 대한 연구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또 멸종위기종의 생물다양성과 보존에 대한 연구에 대한 제안도 내놨다.
◇ 해외에선 이미 챗GPT 규제 논의
과학계에선 AI를 활용한 논문 작성에 대해 아직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박성규 교수는 “챗GPT로 논문을 한번 작성해볼 수는 있으나 논문을 작성해 발표하는 건 표절이나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아직 조심스러운 단계”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국의 130개 대학의 대표들은 지난해 말 챗GPT가 에세이나 리포트 작성에 악용될 수 있다며 우려하는 성명을 냈다. 또 다른 한편에선 악성코드를 만들어 해커를 돕기도 하고 일부 정보가 정확하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해외에선 벌써 규제 논의가 시작됐다. 국제기계학습학회(ICML)는 이달 3일 “AI 도구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뉴욕시는 6일(현지 시각) 공립학교에서 챗GPT 접근을 차단했다. 과제 작성에 사용될 것을 우려한 조치다.
챗GPT를 만든 오픈AI도 “악용 가능성을 감안해 챗GPT로 쓴 글이나 코드 등을 알 수 있게 표시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