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베링해 여행'이란 책에 실린 축치인 가족 사진. 시베리아 동쪽에 사는 축치인은 북아메리카 원주민 고유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를 근거로 북아메리카에서 시베리아로의 역이주 가능성이 제기됐다./위키미디어

2만년 전 시베리아에 살던 사람들이 해수면이 낮아져 육지가 된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로 넘어갔다. 이들이 나중에 아메리카 원주민이 됐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다시 시베리아로 건너가 유전자를 남겼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인류의 이주는 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고 오고 가는 쌍방향이었다는 것이다.

독일 튀빙겐대의 코시모 포스트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13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시베리아에서 발굴한 500년 전 유골의 DNA를 분석해 북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유전적 역류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북미대륙서 시베리아로 역이주

과학자들은 2만년 전 시베리아에 살던 사람들이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로 이주했다고 본다. 1만1500년 전 다시 해수면이 상승해 아시아와 아메리카대륙이 분리됐지만, 배를 통한 이주는 계속됐다. 새로 온 사람들은 이전 사람을 대체하면서 5000년 전 무렵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에 이르는 지역에 정착했다.

포스트 교수 연구진은 최근 인류의 이주가 역방향으로도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연구에 주목했다. 2019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과학자들은 유전자와 언어 분석을 통해 2000년 전에서 500년 전 사이 알래스카 북서부에 살던 사람들이 베링해협을 건너 시베리아로 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런 역이주가 한 차례 일어난 예외적인 일이었는지, 반복된 사건인지 불분명했다.

노란 별표가 있는 곳이 시베리아 캄차카 반도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그 위쪽이며, 알타이산맥은 러시아 남쪽으로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과 국경을 맞댄 곳이다. 이 세 곳에서 발굴한 유골을 통해 인류의 이동이 쌍방향이었음을 밝혀냈다./미국 지질조사국

이번 연구진은 시베리아 각지에서 발굴한 500~7500년 전 인류 유골 10구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포스트 교수는 “추운 기후 때문에 유골의 DNA가 온전히 남아 마치 지금 타액에서 DNA를 추출하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6구는 러시아와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알타이산맥에서 나왔고, 3구는 북아메리카를 마주 보고 있는 러시아 캄차카반도의 강둑에서 발굴했다. 1구는 그 위쪽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왔다.

북아메리카에서 시베리아로의 유전자 역류는 캄차카반도의 유골에서 확인했다. 500년 된 유골의 DNA에서 북아메리카 원주민 고유의 유전자가 나온 것이다. 이 유전자가 다른 고대 아시아인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전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북아메리카인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스웨덴 스톡홀름대의 안데르스 쾨테르스트룀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지에 “역이주 이론으로 시베리아의 역사가 더 복잡해졌지만 동시에 더 사실에 가까워졌다”며 “지금까지 증거로 보아 북아메리카에서 시베리아로의 반복적인 역이주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유골의 유전자 형태로 보아 그보다 훨씬 전인 5000년 전과 1500년 전 두 차례에 걸쳐 북아메리카인이 시베리아로 되돌아와 피를 나눈 것으로 추정됐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오늘날 시베리아 북동부에 사는 축치인들이 북아메리카 원주민 고유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미국 남부감리교대의 데이비드 멜처 교수는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에 “베링해협이 다시 물에 잠겼어도 배로 오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라시아에서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유전자가 나와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며 “이번 연구는 역이주가 언제, 얼마나 일어났는지 더 잘 알려줬다”고 말했다.

시베리아인들의 유골이 나온 무덤./Nadezhda F Stepanova

◇일본서 시베리아, 시베리아에서 알타이로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유럽을 거쳐 동쪽으로 아시아까지 퍼졌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류의 이주는 늘 일방통행은 아니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시베리아 다른 곳에서도 역이주의 흔적을 찾아냈다.

연구진은 알타이산맥에서 5500~7500년 전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유골 6구를 분석했다. 이들의 유전자는 마지막 빙하기에 시베리아의 다른 곳에 살던 고대시베리아인과 고대북유라시아인의 유전자가 섞인 형태였다. 고대시베리아인은 처음 베링해협을 넘은 사람들로 이어졌으며, 고대북유라시아인은 나중에 유럽 각지로 퍼졌다.

특히 6500년 된 한 유골은 동물 발톱과 장신구로 보아 제사장으로 추정됐는데, 유전자가 당시 알타이산맥에 살던 사람보다 멀리 러시아 극동지역에 살던 고대동북아시아인과 가까웠다. 고대동북아시아인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서쪽으로 1500㎞나 더 멀리 퍼진 증거가 나온 것이다.

알타이산맥은 이전부터 여러 인류가 섞이는 장소였다. 2008년 이곳 데니소바 동굴에서 새로운 원시인류의 손가락뼈가 발굴됐다. 바로 데노소바인이다. 이들은 40만년 전 나타나 3만년 전 멸종했다. 지난해 노벨상을 받은 스반테 페보 박사는 2018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굴한 뼈 화석이 네안데르탈인 어머니와 데니소바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13세 소녀라고 밝혔다. 포스트 교수는 “알타이산맥은 인류 집단이 섞이는 회랑이자 교차로였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이스라엘 헤브루대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한 데니소바인 소녀의 복원도./이스라엘 헤브루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나온 7000년 전 유골은 일본열도 토착민인 조몬인(繩文人)의 유전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조몬인은 1만5000~2만년 전부터 일본열도에 살던 사람으로, 3000년 전 무렵 한반도와 중국에서 벼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건너올 때까지 유전적으로 고립돼 있었다고 알려졌다. 이번 연구는 조몬인들도 바다 건너 시베리아로 역진출해 그곳 사람들과 피를 섞었음을 보여준다.

과학계는 후속 연구 결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당분간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연구진은 러시아 과학자들과 협력하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공동 연구가 중단됐다. 전쟁 전 분석 시료도 모두 러시아로 보내 따로 연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포스트 교수는 “지금으로선 모든 것이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처럼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Current Biology, DOI: https://doi.org/10.1016/j.cub.2022.11.062

Natur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19-1251-y

Nature, DOI: https://doi.org/10.1038/s41586-018-0455-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