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싸운다. 말벌 수컷이 암컷이 가진 독침 대신 가시가 있는 생식기로 천적을 물리치는 모습이 처음으로 관찰됐다.
일본 고베대 농업과학대학원의 수기우라 신지 교수 연구진은 20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말벌의 일종인 황슭감탕벌(Anterhynchium gibbifrons) 수컷이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생식기로 천적인 청개구리(Dryophytes japonica)를 물리치는 모습을 처음 관찰했다”고 밝혔다. 청개구리는 수컷 말벌을 삼켰다가 가시에 찔리고 바로 뱉어냈다.
◇가시 돋친 생식기로 방어
꿀벌이나 말벌은 암컷만 독침이 있다. 알을 낳는 산란관이 변형돼 천적에게 독을 주입하는 침이 됐기 때문이다. 산란관이 없는 수컷은 해가 없다고 알려졌다. 이런 까닭에 수기우라 교수 연구실의 대학원생인 츠지 미사키 연구원은 황슭감탈벌 수컷에 찔리고 통증을 느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기우라 교수는 연구원의 손가락을 찌른 수컷의 침을 자세히 관찰했다. 침은 곤충 수컷의 생식기인 삽입관이 가운데 있고 바깥에 날카로운 가시가 두 개 나 있는 형태였다.
수컷 생식기에 가시가 있는 것은 다른 곤충에서도 관찰된다. 수컷은 짝짓기 도중 이 가시로 암컷에게 상처를 줘 다시는 다른 수컷과 짝짓지 못하게 한다.
반면 이번 말벌 수컷은 생식기 가시를 암컷에게는 쓰지 않았다. 수기우라 교수는 말벌 수컷이 연구원의 손가락을 찌른 것을 보고 천적 퇴치용이라고 추정했다.
◇거세한 수컷은 바로 먹잇감 돼
연구진은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말벌의 천적인 청개구리와 같이 상자에 넣었다. 청개구리는 말벌을 보자마자 바로 삼켰다. 수컷은 생식기의 가시로 청개구리를 찔러 입과 얼굴을 관통했다. 청개구리는 바로 말벌을 뱉어냈다. 반면 핀셋으로 수컷의 생식기를 제거하고 실험을 하면 청개구리는 모두 말벌을 삼켰다.
수기우라 교수는 “말벌과 꿀벌은 알을 낳는 산란관에서 독침이 진화헸기 때문에 산란관이 없는 수컷은 해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말벌 수컷이 가시가 있는 생식기로 천적을 물리치는 모습은 처음 관찰됐다”고 밝혔다.
물론 수컷의 방어 수단은 암컷의 독침에 비해 아직은 효과가 떨어진다. 말벌 암컷을 삼킨 청개구리는 87.5%가 뱉어냈지만 수컷을 뱉은 경우는 35%에 그쳤다.
참고자료
Current Biology, DOI: https://doi.org/10.1016/j.cub.2022.1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