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주 스타트업과 대학 연구진이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아 무중력 상태에서 전자장비를 시험하고 있는 모습. 항공기가 포물선 비행을 하면 내부에 무중력 환경이 구현된다. KAIST와 하버드 의대는 청라의료복합타운 연구시설에 지상에서 무중력 환경을 구현할 드롭 타워를 세우기로 했다./NASA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세계적인 우주의학 연구시설이 들어선다. 강원 정선에 있는 기존 우주시설과 연계하면 우리나라가 우주의학 연구의 핵심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의 최학수 교수는 지난 6일(현지 시각) 로스앤젤레스(LA)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서울아산병원과 카이스트(KAIST), MGH가 추진 중인 청라의료복합타운에 우주의학 연구시설인 드롭 타워(drop tower)가 건설된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서울아산병원이 추진하는 800병상 종합병원 설립을 내용으로 하는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의료복합타운 조성을 위한 개발계획 변경안을 심의·의결했다. KAIST, MGH는 2027년까지 의료복합타운에 243억원을 들여 연구개발(R&D) 시설을 설립할 계획이다.

인천 청라에서 무중력 실험 추진

드롭 타워는 물체를 높은 곳에서 자유낙하시켜 무중력 상태를 구현하는 장치이다. 카이스트와 하버드 의대는 드롭 타워에서 생명체가 우주에서 어떤 변화를 겪는지 밝혀 신약과 치료 기술을 개발한다는 게획이다.

최 교수는 “미 항공우주국(NASA)을 포함해 여러 기관에서 드롭 타워를 운영하고 있지만, 생명과학 전용은 없다”며 “지난 9월 이광형 KAIST 총장이 MGH를 방문했을 때 드롭 타워 건설을 제안해 청라 연구소에서 우주의학을 중점 연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KAIST도 드롭 타워 건설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의 최학수 교수가 컴퓨터 화면에 무중력 환경을 제공하는 우주의학 실험장치인 드롭 타워 조감도를 보여주고 있다. 최 교수는 "KAIST와 MGH가 청라의료복합타운에 세우는 연구시설에 드롭 타워 두 개를 세우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LA(미국)=이영완 과학전문기자

드롭 타워는 160m와 25~30m 두 가지로 건설된다. 최 교수는 “드롭 타워는 높을수록 좋지만 25m짜리도 세포나 오가노이드는 충분히 실험할 수 있는 높이”라고 말했다. 오가노이드는 장기 세포를 인체 내부처럼 입체로 배양한 것으로 미니 장기로 불린다.

과학자들은 우주환경 실험이 그동안 신약 개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일례로 우주의 무중력 상태에서는 단백질 결정이 아래로 가라앉지 않아 고순도로 합성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머크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합성했다. 현재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미국 일라이릴리도 우주정거장에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드롭 타워는 우주정거장 대신 지상에서 같은 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

스페이스 린텍이 강원도 정선의 한덕철광 수직 갱도에 설치한 드롭 타워에서 미세중력 실험 장치(가운데 흰색)가 자유낙하하며 지하로 빠르게 내려가는 모습./스페이스 린텍

정선 수직갱도에도 600m 드롭 타워 운영

청라국제도시의 드롭 타워는 강원도 정선의 드롭 타워와 연계해 국내 우주의학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킬 것으로 보인다. 국내 우주 스타트업인 스페이스 린텍은 강원도 정선에 있는 국내 유일의 철광회사인 SM한덕철광산업의 수직 갱도에 600m 높이 드롭 타워를 건설했다. 수직 갱도는 광산에서 광석이나 자재를 나르거나 사람이 오가기 위해 수직으로 뚫어 놓은 길이다.

정선은 국내 우주 연구의 거점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이곳 1000m 깊이에 우주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예미랩을 운영하고 있다. 스페이스 린텍은 IBS의 협조를 받아 예미랩으로 가는 수직 갱도를 드롭 타워로 쓰고 있다. 낙하 실험 장치와 제어 설비를 구축해 수직 갱도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스페이스 린텍은 지난해 6월 미국 노퍽 주립대의 윤학순 교수가 설립했다. 대전 본사와 정선 연구소, 실험시설을 두고 있다. 윤 교수는 “내년 상반기에 정선 드롭 타워에서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면역세포치료제를 무중력 상태에서 실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페이스 린텍은 초소형 위성인 큐브샛에 우주의학 실험장치를 실어 지구 저궤도에 올리기 위해 국내 우주발사체 개발업체인 페리지 에어로스페이스와도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스페이스 린텍 설립자인 윤학순 노퍽 주립대 교수는 "정선 한덕철광의 수직 갱도에 무중력 실험 장치인 드롭 타워를 세웠다"며 "내년 상반기에 생명공학연구원과 함께 면역항암제를 실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LA(미국)=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우주헬스케어 대회로 한국 우주의학 도약

두 교수는 이날 캘리포니아 사이언스센터에서 국내 제약사 보령이 주최한 ‘케어 인 스페이스(Care In Space, CIS) 챌린지’ 데모데이 행사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CIS 챌린지는 보령이 민간 우주정거장 개발업체인 액시엄 스페이스, 스타트업 육성 기관인 스타버스트와 함께 우주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발굴해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대회이다.

최학수 교수는 “보령의 향후 100년이 이 대회에서 나올 것”이라며 “CIS 챌린지 대회를 통해 우주의학 스타트업들이 발전하고, 드롭 타워와 민간 우주정거장에서 우주환경 실험이 활발해지면 30년도 안 돼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윤학순 교수는 “제약산업은 곧 우주에서 시작하는 게 더 많아질 것”이라며 “보령이 액시엄 스페이스가 건설하는 민간 우주정거장에 공간을 확보하면 4~6년 격차를 둘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