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 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 6일(현지 시각) 저녁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캘리포니아 사이언스센터에서 제1회 ‘케어 인 스페이스(Care In Space, CIS)’ 챌린지 데모데이 행사가 열렸다. CIS 챌린지는 우주 공간에서 필요한 헬스케어 기술을 겨루는 대회로, 올해 처음 수상팀 여섯 곳을 배출했다. 이들은 이날 우주에서 인간이 겪는 신체 변화를 실시간 모니터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을 소개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곳은 세계 우주개발의 총본산인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나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 우주개발을 이끄는 스페이스X도 아니었다. 바로 한국 제약사인 보령(옛 보령제약)이 주역이었다. 김정균(37) 보령 이사회 의장은 “아픈 사람은 우주에 갈 수 없나”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누구보다 먼저 우주 헬스케어에 진출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우주 헬스케어 산업에서는 보령이 단연 선두 주자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제약업계에서도 아직 1위가 아닌 보령이 어떻게 우주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
◇우주 진단에서 약물 개발까지 총망라
–CIS 챌린지는 어떤 행사인가.
“우주는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다. CIS 챌린지는 우주에서 사람이 겪는 다양한 신체 변화에 대응할 헬스케어 기술을 겨루는 대회이다. 보령이 주최하고 최초의 민간 우주정거장 개발업체인 미국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와 우주항공 스타트업 전문 육성 기관인 스타버스트(Starburst)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수상팀의 데모데이였다. 대회는 어떻게 진행됐나.
“CIS 챌린지는 우주 의료기기, 진단, 제약 등 다양한 목표를 가진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4월부터 시작한 대회에 전 세계에서 60여 팀이 참가했다. 이 중 6팀이 10월에 최종 수상팀으로 선정됐다. 대회 수상팀은 10만 달러의 투자금과 함께 미국 액시엄 스페이스가 건설하는 민간 우주정거장에서 실험을 할 기회를 얻는다.”
–오늘 데모데이 행사를 보니 우주는 물론, 지구에서도 유용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레이더로 3m 거리에서 우주인의 심장 활동을 감지하는 기술은 가정에 있는 고령자의 원격 진단에 활용할 수 있다. 우주 진공 환경에서 약물을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단위로 작게 만들면 약물의 용해도가 높아져 코로나 치료제 렘데시비르를 병원에서 정맥 주사하지 않고 환자 스스로 복용할 수 있다.”
◇“아픈 사람은 우주에 갈 수 없나”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어릴 때 아폴로 우주인의 달 착륙을 본 경험이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 설립을 이끌었다고 했다. 어떤 계기로 우주 분야에 진출하게 됐나.
“국제기구인 ‘젊은 경영인 협회(Young Presidents’ Organization·YPO)’가 2019년 미국 휴스턴에 있는 나사의 존슨 우주센터를 방문하는 3박4일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기업인 30명 정도가 참가했다. 돌아가며 질문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제약사에서 왔으니 우주에 아픈 사람을 보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사의 꽤 고위직이었는데 바로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때 우주가 공간만 다르지 사람이 가 있다면 우리가 지금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 비즈니스를 하자고 해도 기반이 없었을 텐데.
“한국에 돌아와서 회사에서 우주에 대해 고민할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우리가 우주를 잘 모르니까 국내 우주 전문가들을 다 만났다. 과거 우주인부터 우주발사체 개발자, 우주정책 전문가 다 만났다. 우리나라 우주개발은 모두 발사체에 집중돼 있었다. 누군가 우주 헬스케어는 해외에도 전문가들이 많지 않으니 경진대회를 해보라는 말을 했다. 우주 스타트업 육성기관인 스타버스트를 소개받고, 이어 민간 우주정거장을 만드는 액시엄 스페이스까지 만났다.”
–액시엄스페이스에 1000만달러(한화 129억원) 투자까지 했다.
“액시엄 스페이스는 2027년까지 국제우주정거장을 대체할 민간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 이미 나사와 협약도 맺었다. 2024년부터 매년 한 개씩 모듈 3개를 우주로 보낸다. 우주는 중력이 거의 없어 신약용 단백질 결정을 만들기 쉽다. 우주인에게 필요한 헬스케어 기술도 우주정거장에서 실험할 수 있다. 보령이 우주 헬스케어로 진출하니 우주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과 유럽이 우주정거장에서 이미 다양한 의학과 생물학 연구를 진행했다. 우주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실험대상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후발 주자가 들어갈 공간이 있을까.
“사람이 우주에 가장 오래 머문 시간이 1년 정도에 그친다. 이제 겨우 달에 가는 우주인을 위해 방사선 차폐 조끼를 만든 수준이다. 지금까지 우주인은 모두 건강하고 고강도 훈련을 거친 사람이었지만 우주관광이 본격화되는 20~30년 뒤에는 누구나 우주로 갈 것이다. 병이 있는 사람도 우주로 가지 않을까. 처음부터 10년 뒤가 아니라 20~30년 뒤를 보고 시작했다.”
◇신약 개발보다 연구 인프라 제공 목표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선 단백질 결정이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아 더 균질하고 순도 높은 약물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머크는 우주정거장에서 면역항암제를 개발했고, 아스트라제네카와 일라이릴리도 우주에서 신약 개발을 진행 중이다. 보령도 같은 목표인가.
“제약사업과는 별도로 우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우주 공간에서 사람이 사는 데 중요한 모든 걸 다 보고 있다. 단순히 약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로 생명유지시스템(life support system)이 목표다. 그 대상은 거주시설이나 우주복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우주정거장에 연구개발(R&D) 인프라를 구축하려고 한다. 지구에서 개발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우주에서 검증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약을 개발하지 않고 신약 개발사를 도와주는 것이다.”
– 오늘 한국 최초의 우주인인 이소연 박사도 강연을 했다. 우주에서 생명과학 실험을 처음 한 한국인인데 보령의 우주사업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나.
“우주인은 전 세계에 600여 명밖에 없다, 한국 첫 우주인은 국가적 상징성이 있다. 오늘 발표해주는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 자본을 대면 지금이라도 다시 한국 우주인을 우주로 보낼 수 있다. 액시엄 스페이스는 올 4월에도 민간 우주인 4명을 국제우주정거장으로 보냈다. 하지만 민간 단독보다는 정부와 같이 우주인을 배출하면 훨씬 빨리 진행되고 국민적인 관심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발사체에 집중했다. 일부는 인공위성 분야에 투자됐다. 우주개발에는 다른 분야도 많다. 정부가 지금까지 집중한 분야 외에도 지원을 넓혀주는 게 필요하다. 정부 지원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민간에서도 같이 하겠다고 호응을 할 것이다.”
–스페이스X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 계획을 추진하면서 자신도 가겠다고 했다. 같은 생각인가.
“물론이다. 기회가 되면 꼭 우주로 가고 싶다. 아내에게 화성에 가서 살고 싶다고 가끔 얘기했다. 혼자 가라고 하더라. 아이들은 나보다 우주를 더 좋아한다. 아이들이 내게 30살 되면 같이 화성에 가자고 말했다.”
–우주에 가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나.
“일단 한국이 어디에 있나 찾아볼 것 같다. 우주인들도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경외감을 느꼈다고 했다.”
◇특허만료 신약 인수해 매출 확대
–창업주인 김승호 명예회장과 어머니인 김은선 회장은 우주사업에 대해 뭐라고 하셨나.
“처음에는 설득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응원해 주셨다. 오늘 어머니도 직접 오셔서 축하해주셨다. 우주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업 영역을 더 넓히자는 것이다.”
–최근 국내 제약사들은 스타트업이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에 투자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개방형 혁신)을 적극 추진했다. 김 의장은 그보다 자산에 대한 전체 인수를 우선하겠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보령은 자체 제품을 늘려 수익성을 더 강화해 신약 R&D 투자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할 계획이다. 특히 ‘레거시 브랜드 획득(Legacy Brands Acquisition·LBA)’이라는 새로운 사업 전략으로 자가 제품 비율을 확대할 방침이다. LBA란 특허 기간이 끝나도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 일정 수준의 매출 규모와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는 오리지널 의약품을 인수하는 것이다.”
–창업주인 김승호 명예회장이 예전 인터뷰에서 “2011년 국산 첫 고혈압 신약 카나브를 개발하기 전까지 외국 약을 가져와서 파는 거지 노릇을 했다”고 말했다. 이제 극복한 것인가.
“카나브가 발매 첫해 매출 100억원을 돌파하고 지난해 1125억원까지 올렸다. 2026년에는 2000억원대가 목표다. 다양한 약과 결합해 복합제를 만든 것이 주효했다. 예전처럼 외국 신약을 판매 대행하면 다른 약과 복합제를 개발할 수 없지만, 아예 인수하면 부가가치를 높일 새 약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인수를 하면 무엇보다 국내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다.”
–국내 제약업게는 외국 의약품을 수입하거나 복제품을 판매해 매출을 늘렸다. 신약개발은 아직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제약산업에서 과거와 다른 성장 전략이 있다면.
“단순하게 말하면 인수합병(M&A)이다. 앞서 말한 신약 인수인 LBA 역시 M&A의 일부이다. 회사를 사오거나 약을 사오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체 개발로 성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성장하려면 지금 제품들로 번 돈으로 국내외에서 M&A를 통해 사세를 불리는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6일 CIS 챌린지 데모데이 행사는 캘리포니아 과학관의 사무엘 오스친 파빌리온에서 열렸다. 이곳에는 지난 2011년 퇴역한 미국의 마지막 우주왕복선 인데버(Endeavor)호가 실물 그대로 전시돼 있었다. 미국의 우주개발 역사가 있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새로운 우주 헬스케어 개발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행사 마지막에 보령은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2년 9월 12일 라이스대에서 한 연설이 담긴 동영상을 소개했다. “어떤 사람들은 왜 하필 달에 가느냐고 묻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도 말했을 겁니다. 왜 가장 높은 산에 오르려고 하는가. 왜 35년 전에 대서양 횡단 비행을 했는가.”
결국 미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다는 말이다. 김정균 보령 이사회 의장은 “왜 보령이 우주에 눈을 돌리느냐고 묻는데 사람들이 우주로 가니 그곳에서도 우리가 잘하는 건강을 챙기겠다는 것”이라며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CIS 챌린지로 모아 우주 공간에서 인간의 활동을 자유롭게 해나가는 일을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김정균 의장은
김승호 보령제약 창업주의 손자이자 김은선 보령 회장의 장남이다. 미국 미시건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군학사장교로 중위 전역하고 회계법인인 삼정KPMG에서 일하다가 2014년 보령제약에 전무로 입사했다. 보령제약 상무와 지주사인 보령홀딩스 경영기획실장, 경영총괄임원을 거쳐 2019년 보령홀딩스 대표이사에 올랐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보령제약의 사명을 보령으로 바꾸고 대표이사가 됐다. 회사는 성장, 투자 기회를 제약 영역에서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 전반으로 확대하기 위해 사명을 바꿨다고 밝혔다. 평소 주변의 의견을 잘 듣는다는 평을 받는다. 2019년 우주 헬스케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는 거의 독학으로 국내 대표적인 우주 전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여섯 살 아들, 네 살 딸과 우주 관련 정보를 같이 찾아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